친정 엄마의 울분
찜질방에서 맞은 새벽, 해운대 바닷가에 서니 햇빛이 유난히 찬란했다.
나는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고 있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침을 맞는다.
쫓겨날 때 이번만큼은 다시 고개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빈손으로 남겨진 아이가 걱정됐다.
그래도 돌아가기엔, 다시 폭력 앞에 무릎 꿇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본다.
동해의 파도는 삶을 품어주는 듯했는데, 해운대의 파도는 나를 자꾸만 밀어낸다.
허기조차 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생각했다.
“갈 곳은 엄마의 집뿐이다.”
엄마의 집으로
결혼 후 철저히 단절했던 친구들을 찾을 수도 없었다.
해운대에 눌러앉자니, 언젠가 남편에게 빌미가 될 게 뻔했다.
결국 나는 기차에 올랐다. 덜컹이는 소리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가 얼마나 놀라실까…”
그러나 다른 선택은 없었다.
역에서 내려 친정집으로 향하는 길,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저 멀리 노란색 3층 집이 보였다.
아빠가 직접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시며 “이게 우리 집이다”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병환으로 병원에 계시고, 그 집을 홀로 지키는 건 엄마뿐이었다.
그 집에, 나는 ‘가출’이라는 오물을 묻히며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엄마와 마주하다
집에 닿을 즈음, 엄마가 밖으로 나오셨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놀란 듯 눈을 비비며 되묻는다.
“어머, 네가 웬일이야? 놀러 온 거야? 준이는? 김서방은…?”
그러다 곧 시선이 캐리어에 닿는다.
눈치 빠른 엄마는 금세 미소로 바꾸며 말했다.
“배고프겠다. 밥 먹자. 마침 혼자 먹으려니 허전했는데…”
말없이 내 캐리어를 챙겨 집으로 들어가셨다.
뒤돌아선 엄마의 뒷모습이 속삭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했으면 집을 나왔을까…”
엄마의 밥상, 그리고 자책
엄마는 수북이 밥을 올려 주시고, 반찬을 계속 얹어주셨다.
나는 꿀꺽 삼키며 눈물이 목구멍에 걸리는 걸 느꼈다.
“엄마, 나 배불러. 그만…”
'싫다, 먹어라'를 반복하다가 결국 붉어진 얼굴빛을 본 엄마는 숟가락을 멈추셨다.
이부자리를 펴 주신 엄마의 손길에 어린 시절의 온기가 느껴졌다.
천장의 벽지, 오래된 장롱, 아빠가 손수 바르신 자취들이 나를 감싸왔다.
나는 속으로 자책했다.
“그날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준이는 지금 엄마를 찾고 있을 텐데…”
아이를 남겨두고 집을 나온 나는 결국 엄마를 찾고,
집을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는 홀로 남았다.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엄마의 울분
새벽,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했으면 집에 왔을까… 혼자 끙끙대다 가방을 쌌을까…”
나는 화장실에 가려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울분은 병원에 계신 아빠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 가장 못난 딸이 된 듯했다.
엄마의 울분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왜 끝내 걱정덩어리, 폐만 끼치는 자식이 되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