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스토리 66화. 시간은 흘러간다

가을의 속삭임

by 나은

어제 내린 비가 여름을 몰아내고 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집으로 돌아온 남편 때문에 나는 유난히도 무거운 여름을 보냈다.


이 집으로 이사 오던 날, 전 세입자가 신형 에어컨을 양도하겠다고 했다.

구형 스탠드형 한 대만 있던 우리에겐 필요했지만, 남편은 “신형을 사겠다”며 거절했다.

언제나 그렇듯, 말만 남고 행동은 없었다.

결국 전 세입자의 말대로 집은 더웠다.


특히 내가 쓰는 안방은 구조상 온수를 쓰면 욕실 문부터 바닥까지 난방이 돌아갔다.

온돌 열기에 무더위까지 겹치니, 끼익 소리만 나는 최저가 선풍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나는 땀에 절어 밤새 잠들기 어려웠고, 간신히 잠들어도 열기에 놀라 깨기를 반복했다.


잠을 못 자니 살이 빠졌다. 다이어트에 식이조절과 운동도 필요하지만, 불면의 효과는 그 어떤 방법보다도 놀랍다.

낮에는 약 먹은 병아리처럼 몽롱했고, 정신이 맑지 못해 실수가 잦았다.

피로가 쌓이니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나마 오전의 에어로빅이 건강을 붙잡아줬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늘 기운차다”라고 말한다.

활기차 보인다며 웃음을 건네는 상인도 있었다.

이쯤 되면 내 쇼윈도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도 사람이다.

힘들고 지칠 때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그 후에 밀려오는 허무와 자격지심은 나를 침묵하게 한다.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

“어둠과 슬픔은 나와 상관없다.”

나의 씩씩함엔 늘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가산점이 붙는다.

그렇기에 내 호소는 남들보다 더 큰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게 싫다.


갱년기가 되니 연민을 인간관계의 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애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더 후하게 덧붙여지는 연민은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보통의 삶.’


남편이 내게 행했던 가학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입으로 꺼내는 순간, 그 시간들을 견뎌낸 내가 더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말을 한다고 믿어줄까?

'장애 아이 때문에 예민한 거지. 피해의식이 절었네.'

이런 말들이 따라붙을 게 뻔했다.


나 역시 의심했다.

지나가는 여자의 가슴에 팔꿈치를 갖다 대는 장면을 봤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거겠지?”

그러나 여자의 돌변한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사람 많은 곳, 특히 지하철에서 나는 유독 긴장한다.

빠르게 스치듯 닿는 팔꿈치, 필요 없이 과하게 오른쪽으로 쓸리는 동작, 일그러지는 피해 여성의 표정…

남편은 눈은 정면을 응시한 채, 아이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은 피해자가 ‘설마, 아이가 있는데 고의겠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게 만들었다.

횟수가 반복되면서 나는 이 ‘스토리’를 터득해 버렸다.


“헐…”

아이 좋으라고 끌고 나가는 외출길은 나에겐 고난의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쉬운 게 없을까? 도대체 왜 보통의 삶조차 나에겐 이리도 어려운 걸까?”


나는 돈도, 명예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의 아이와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


어릴 적 방영되던 드라마〈보통사람〉이 떠오른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내가 겪는 이 ‘비범한 일상’을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은 경험할까?


내 어깨 위의 삶의 무게가 남아있는 수명을 재촉한다.

아,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내 상처는, 오래된 가을의 기억을 덧내며 여전히 시리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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