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68화. 질린다, 남편의 무개념

끝없는 간섭과 집착, 역주행하는 남편의 민낯

by 나은

아침에 1시간가량 운동을 한다.

격렬한 에어로빅, 그중에서도 나는 더 크게 뛰고, 더 높이 점프한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언니들의 함성, 구령 소리에 마음이 들뜨고 정신이 깨어난다.


한동안은 기운이 빠져 수업 도중 자주 쉬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조차 싫어 수건으로 닦아대며 동작이 약해졌다.

‘갱년기인가 보다…’ 스스로 결론 지었지만, 우울증 약을 바꾸고부터 다시 활기가 돌았다.





불안과 약, 그리고 나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은 후 동네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말 못 한 고통을 풀어내니 그제야 조금 숨이 트였다.


약을 먹기 전 나는 집을 나서기도 힘들었다.

“가스 밸브는? 전기 코드는?”

스스로에게 구호를 외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도, ‘혹시나’ 하는 불안에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머릿속에선 펑! 터지는 폭발 장면이 자동 재생되곤 했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서 그런 불안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엔 무기력과 나른함이 찾아왔다.

불안과 무기력 사이를 오가는 삶, 그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오늘의 마주침


운동을 마치고 예약한 병원으로 향하던 길.

집 앞 담배 피우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남편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오토바이 사고로 흉터 남은 종아리를 아대로 감추고, 어울리지 않는 가방을 멘 채. 숨으려 했지만 숨을 수 없는, 꼴사나운 모습 그대로였다.


눈이 마주쳤다.

‘재수 없다, 저 눈빛.’





끝없는 간섭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남편이 뛰어왔다.

“너 지금 어디 가냐? 왜 병원에 가는데?”

“내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인데?”


우린 지금 이혼 소송 중이다.

대화도 끊겼다.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쫓아와 간섭하는가.


“지금 피부과 가는 거 아니야? 뭐 하려고?”

“내가 피부과를 가든, 뭘 하든 왜 네가 참견이야.”


그의 눈은 점점 찢겨 올라갔다.

사람들 앞에서라면 언제든 목소리를 높이고 억누르려 했던 그 본능. 남을 지배하려는 습성.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그는 다시 외쳤다.

“적당히 해라! 은행 돈 함부로 손대지 마라!”





질린다, 정말 질린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깨닫는다.

결혼 생활 내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눈 감고 귀 막았던 나.

하지만 이제 장막이 걷히고 실체가 보인다.


분별없는 측은지심은 더 이상 없다.

연민조차 바싹 말라버린 땅처럼 갈라졌다.


질린다.

질리게 한다.

무개념의 그가 나를 질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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