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에서 가격이 아닌 메뉴를 보게 된 순간
하루는, 내가 있는 방으로 남편이 쳐들어왔다.
대화라더니, 말은 통보였다.
“나는 이혼 안 해. 넌 이혼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나는 더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방에서 나가.”
나도 차분히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왜 이혼을 원하는지, 그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을 끝까지 짐승처럼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 억눌리지 않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싶다.
그의 악담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혼자여도 괜찮았다
떨어져 지낸 1년여의 시간을 돌아보면 아쉬울 게 없었다.
고장 난 등을 갈고, 막힌 변기를 뚫고, 수도꼭지를 주문해 직접 갈아 끼웠다.
아이에게는 말했다.
“엄마가 고쳐줄게. 대신 다음엔 휴지를 막 넣으면 안 돼.”
혼자 결정하고, 혼자 처리하고, 혼자 해결했다.
그러면서 알았다.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눈치 없는 주문, 작은 해방
좋아하는 체리를 눈치 안 보고 시켰다.
먹고 싶던 키위를 샀다.
아이와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추가하고, 밥도 시키고, 냉면도 시켰다.
주말이면 케이크를 두 개 시키고, 아이는 스무디를,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더는 “3명이서 음료 2잔, 케이크 1조각”으로 맞추지 않았다.
밥으로 배를 불리지 않았다.
추가로 주문하는 순간, 내게 세상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행복은 별거 아니었다
과거엔 늘 가격표부터 봤다.
싼 것, 또 싼 것.
외식은 5만 원을 넘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와 둘이 10만 원이 훌쩍 넘어도 괜찮다.
아이가 좋아하면, 나도 좋다.
아웃백을 가볍게 갈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사치가 아니라는 사실.
행복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내 통장에서 5만 원 하나 빼 쓰지 못하게 막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내가 번 돈을 내가 쓰는 자유가 있다.
무겁게 나를 짓눌렀던 허리띠 졸림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메뉴판은 메뉴를 보라고 있는 것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메뉴판에서 금액만 들여다보며 눈치 보는 삶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고, 아이가 원하는 걸 주문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