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조차 거래의 도구로 삼은 남자
햇살이 가득한 오후, 동네 편의점에 앉아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허물어진 빌딩 공사장 너머로 번쩍거리는 외벽이 올라가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 평범한 하루.
그러나 그 평범함은 남편 때문에 매번 산산이 부서졌다.
남편은 여전히 나를 감시했다.
아침마다 불쑥 방문을 열고 음식을 던지듯 놓고 갔고, 내가 외출하면 베란다에 서서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이혼 소송 중에도 그는 “내 집, 내 돈”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를 여전히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집착은 소름이었다.
과거의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졌다.
남편은 갑자기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했다.
헬스장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잡힌 것이다.
나는 순간,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을 수없이 상처 입히더니, 이제는 사회적 범죄자로 낙인찍히기까지 했다.
남편은 두려움에 떨며 수감될 거라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코로나 시국에 바로 수감되는 경우는 드물어.”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1000만 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럼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꺼낸 마지막 카드는 더 비열했다.
경찰 앞에서 그는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불치병 환자입니다. 아이는 중증 장애로 매달 수백만 원이 듭니다.
제 사정을 봐주십시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졸지에 불치병 환자가 되었고, 아이는 치료비로 가계가 휘청이는 불우이웃으로 전락했다.
내 입으로 말한 적 없는 단어들이 그의 입을 통해 내 인생을 덮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가장 싫은 것이 동정이었다.
가진 게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거짓 연민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 연민을 구명줄 삼아 나와 아이를 이용했다.
경찰은 나를 보며 말했다.
“힘내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꾸며진 상황에 대한 동정은 오히려 내 심장을 더 옥죄었다.
귀갓길에 남편은 달라져 있었다.
마치 세상 구원을 받은 듯 웃으며,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자평했다.
그에게 미안함은 없었다.
부끄러움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철저한 계산으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나는 절망했다.
그는 아이의 존재조차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아이의 장애를 친정 식구에게조차 숨기라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아이를 내세운 것이다.
그의 이중성, 다중성은 끝내 또 다른 범죄를 불러올 것임을, 그날 나는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