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75화. 미행 속에 갇힌 삶

자유를 갈망하는 동거의 끝

by 나은

카페 창 너머로 공사가 한창이다.

한창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면, ‘임대문의’라는 플래카드에 내 번호가 펄럭였을 것이다.

지금은 다만 바라만 본다.


복용 중인 약을 바꾸자 몸이 달라졌다.

에어로빅 50분 수업, 예전에는 무기력에 눌려 3~4번은 앉아 쉬어야 했지만 요즘은 물 마실 때 빼고는 쉬지 않고 뛴다.

몸은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눌려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순간, 답답함이 몰려온다.

거실에 떡하니 앉아 있는 남편을 지나 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며칠 전, 병원에 가던 길에 그는 나를 미행했다.

순간, 사람들 앞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 돌아갈까 고민했다.

가방 안 휴대폰은 예약 시간을 넘겼다고 진료 안내가 계속 울렸지만 차마 받지 못했다.

아닌 척했지만, 내 의식 밑바닥에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밥도 따로 먹는다.

처음엔 밥상을 차리며 일부러 그릇을 세게 내려놓거나, 욕을 중얼거리던 남편의 모습에 위축되었다.


아이를 통해 귀가 시간을 묻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무시해, 무시해 버려”라고 다짐하지만, 결국 몇 시에 들어올 거라고 답해버린다.


아이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핑계지만, 실은 공포 때문이었다.


예전엔 외출했던 남편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불안했다.

“집 정리해야 하나? 잔소리 듣지 않을까?”

쓸데없는 조바심을 부리며 벌떡 일어나던 내 모습이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의 불편한 동거는 나를 피곤에 찌들게 한다.”


잠을 자도 피곤하고, 자다가 깨기를 반복한다.

밤마다 신에게 빌고 싶다.

“제발, 저 이혼 좀 시켜주세요.

제발 따로 살게 해 주세요.

정말 안 보고 싶어요.”


남편은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나를 감시하고, 미행하고, 여전히 비난을 쏟아낸다.

그의 뇌 구조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이 굴레에서 벗어나 더 빨리 이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혼 소송을 하면 볼꼴 못 볼꼴 다 겪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막장 중의 막장이 될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숨 막히는 간섭에서 벗어나, 내 의지대로 사는 삶.

방 한 칸도 좋고, 교복처럼 한 벌로 살아도 괜찮다.

아이와 둘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은 가지 않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보고 싶을 뿐이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 이불을 끌어당기며 잠에서 깼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와 있고, 곧 아이가 좋아하는 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연말엔 아이가 원하는 3단 케이크를 사서, 새 안식처에서 새해를 계획하고 싶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혹여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다.

자신의 삶이 극한이라고 느낄지라도,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굴곡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나 역시 위로받고 싶다.

동병상련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지만, 최소한 “너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로는 될 수 있다.


그 병원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어색함,

스스로를 루저라 되뇌며 버텨온 지난 날들,

이제는 정화시키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날의 병원으로 돌아간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정리하기 위해서.

사는 것 같이 살기위해서...


작가의 이전글불임 74화. 몰카범의 변명은 더 비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