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작...
남편은 늘 그랬다.
나의 불임 판정에도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긴 한숨과 잦은 짜증만이 대답이었다.
태어나 처음 맞이한 절망.
나도 한동안 방황했다.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쯤에서 정리해야 하나.’
하지만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긍정 회로가 나를 붙잡았다.
‘인생은 연극이야.
넌 무대에서 불임 여성의 역할을 맡은 거야.
삼고초려 끝에 임신과 출산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거지….’
첫 발걸음, 시험관 시술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나는 우연히 시험관 성공률이 높다는 병원 인근에 살고 있었다.
지금은 젊은 부부도 흔히 찾지만
그때의 ‘시험관’이라는 단어는
생명과 고귀함이 충돌하는 낯선 어휘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불임 시술,
맞은편은 출산 병원.
과정과 결과가 도로 하나를 두고 갈라져 있는 풍경이
마치 남과 북 같았다.
결심까지의 먼 길
‘시험관 시술을 하자’는 말을
나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200만 원이라는 비용은
남편의 끝없는 짜증과 조리돌림을 불러올게 뻔했다.
어렵게 말을 꺼내도
남편은 늘 그렇듯 묵묵부답.
숙고의 시간이 아닌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침묵.
몇 번을 되뇌다 결국 “아, 몰라”라는 말로 끝났다.
그 말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그럼 시작해 볼게”라며
첫 시술을 결정했다.
시험관 대기실의 공기
시험관 시술은
정자와 난자를 결합해 수정체를 만들고,
이를 자궁에 이식한 뒤 2주 후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한다.
내 불임 원인은 자궁벽이 얇아 착상이 안 되는 것.
다행히 난자는 건강했고, 매번 충분히 채취되었다.
첫 시술의 긴장보다
더 힘들었던 건 대기실 풍경이었다.
불임 병원에는 웃는 사람이 없다.
햇살이 쏟아져도
대기실의 표정은 잿빛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대기자들을 볼 때면
질투와 상처가 뒤엉킨 삐뚤어진 시선이
나도 모르게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나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얼마나 상처가 될지 모르는 일인데.’
첫 시술과 작은 희망
난자 채취는 마취 후 순식간에 끝났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숫자 3도 세기 전에 잠이 들었다.
특별히 더 건강한 수정체를 이식할 때는
마취도 필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짧은 순간에 끝났다.
첫 시술은 자신이 있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불행은 한 번이면 족하다.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일상을 살자.’
그때 남편은 장례식장에 갔다.
생명을 기다리며 죽음을 배웅하는 일이
걸렸지만,
‘유난 떨지 말자’며 마음을 눌렀다.
잠깐의 고마움
그날 남편은 처음으로 과일을 사 왔다.
“이식 후 2주 동안 과일이 좋다”는
내 말 한마디를 기억한 듯했다.
현관을 두고 과일을 건네던 남편의 표정엔
그동안의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이번엔 꼭 될 거야.
내 사주에 자식이 있다고 했으니까.”
들뜬 그의 말이
아직도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 들뜸을 끝내 재생시키지 못했으니….
첫 실패와 또 다른 도전
첫 시술은 실패였다.
전화를 끊으며 나는 담담한 척 말했다.
“원래 처음엔 다 실패한대.
2~3번은 기본이래.
통계는 30%지만 실제로는 10%도 안 된다더라.”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음엔 되겠지.”
그 한마디가 그토록 어려웠을까.
가을빛 대기실
두 번째 시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계절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대기실로 스며드는 햇살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작은 뒤통수를
무심히 따라가던 내 시선이
서서히 불편함과 질투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