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단절되다
두 번째도 실패였다.
난자를 새로 채취한 것도 아니니 비용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의 파장은 첫 번째보다 더 깊었다.
나는 인생에서 “실패”라는 단어를 거의 겪지 않고 살아왔다.
지구가 둥글게 돌듯, 내 삶도 모나지 않게 흘러가리라 믿었다.
그런데 첫 번째를 지나 두 번째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했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가 시작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서서히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할 말을 삼켰고, 남편은 몸짓으로 짜증을 흘렸다.
침묵은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참다못해 실없는 말을 꺼내면,
입가가 찌그러지는 그의 어이없음이 나를 질식시켰다.
다시 몸을 재정비해 세 번째 시술을 준비해야 했다.
인터넷에는 “마취 한 번에 수명이 3년은 줄어든다”,
“시험관을 여러 번 하면 제명에 못 산다”는
무의미한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그런들 멈출 수 있을까.
“될 거야. 반드시 될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어느 저녁, 동네 목욕탕.
사람이 빠진 시간,
요란한 두 여자의 대화가 뜨겁게 공기를 흔들었다.
한 명은 유명한 점술가, 다른 한 명은 그의 맹신자였다.
나는 옷을 다 입은 채, 귀가를 미루고 그들의 말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죽 애가 탔으면 처음 본 점술가를 붙잡고 이렇게 묻고 싶었을까.
“저… 임신이 될까요? 시험관이 성공할까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은 나를
점술가는 금세 알아차렸다.
“뭐가 궁금해? 걱정 마. 될 테니까. 된다니까. 기다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네… 뭐가요?”
그는 단호했다.
“본인이 바라는 거 있잖아. 그거 된다니까. 기다리라니까.”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임신… 되는 거 맞죠?”
그 말 한마디가 부정 탈까,
겨우 “아… 네.” 하고 웃어 보였다.
솜털 하나도 날려버리면 안 될 것처럼,
모든 말을 삼키며 긍정을 응시했다.
평균 세 번쯤은 시도해야 성공한다는 확률이 있지만,
내 삶에서 ‘원하는 건 언젠가 이뤄진다’는 막연한 믿음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된다잖아. 기다리라잖아.”
그 작은 확신을 붙잡고 하루를 버텼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건네자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종교로 호들갑 떨더니 이제 미신이냐.”
그 경멸 섞인 표정조차
이제는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집안에 소리가 사라졌다.
대화가 끊기고, 인기척이 사라졌다.
남편은 어느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되짚어 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떠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