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시리즈. 81화. 남편의 외박

대놓고—잠꼬대로 나온 이름

by 나은

집 안의 정적


어느 순간부터 집 안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이상하리만치 고요가 거실을 메웠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남편의 외박은 이미 길어져 있었다.


건축 일을 하던 그는 공사 현장이 서울 인근이라면 왕복 네 시간이 걸려도 꼭 집으로 돌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다.


스키장을 다니는 겨울이 왔는데도 함께 가자는 말이 없었다.

어디를 가든 나를 데리고 다니길 좋아하던 그가, 단 한 번도 함께하자 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아


그즈음 나도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인기가 있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기로 했다.

“쉬운 시험이 아니야”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임신에만 매달리던 초췌한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박문각 학원에 처음 들어섰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다양한 연령대, 감히 상상 못 했던 책 두께.

그나마 다행인 건 과락이 40점, 객관식 시험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도시락을 싸 들고, 기계처럼 공부에 몰두했다.




마지막 선물


어느 저녁, 남편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는 10만 원과 ‘생일 축하한다’는 짧은 편지.

그것이 내가 자발적으로 받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생일 다음 날, 나는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했고

남편은 또다시 현장을 핑계로 집에 오지 않았다.

수강생들과 생맥주를 나누며 남편에게서 받은 돈으로 술값을 계산했다.

그때 받은 편지를 자랑했지만,

그것이 남편에게서 받은 마지막 호의가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그것은 호의가 아니었다.

자신의 다른 짓거리를 감추려 던진 싸구려 대가였을 뿐.




고요한 집, 공허한 밤


전셋집 만료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며 첫눈을 혼자 맞았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TV를 보다,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술도 마시지 않던 나는 그 자유의 시간을 누리지도 못한 채 공허하게 시간을 죽였다.


남편은 “친정에라도 가서 놀다 와”라고 했지만

나는 미안해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그만큼 위축되어 있었던 것일까.




스며드는 이름


이사 얘기를 하던 날, 남편이 드물게 집에 와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대화는 마치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듯, 한쪽 세상에서만 오갔다.”

낯선 여자의 이름이 스치듯 들렸다.

귀를 스치던 그 이름의 어감이 이상하게 거슬렸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의 잠꼬대가 방을 가르며 흘러나왔다.

나는 잠에서 깨는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을 정확히 들었다.


뱉고 스스로 놀란 듯, 남편은 잠에서 깨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 태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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