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이븐하게 굽지는 못하지만

주말에 할 것도 없고 해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이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마침 립아이 스테이크 고기가 세일하길래 사 왔다. 시식코너에서 고기를 조금 구워주길래 아이들을 먹여봤더니 너무 맛있다길래 어쩔 수 없이 산 것도 있긴 하다.


사실 그 전날 텍사스 로드하우스라는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서 아이들이 너무 잘 먹었기 때문에 이 똥강아지들이 스테이크 고기를 보고 "아빠, 저거 사주세요!"라고 외쳐서 사야만 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매장에 가면 카트를 끌고 다니는데, 예전에는 둘째도 얌전하게 카트에 잘 앉아있었지만 지금은 형과 함께 카트에 매달리고 자기가 끌고 가고 난리가 난다. 한 번은 앞에서 자기가 카트를 끌고 가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진 적도 있는데, 그래도 고쳐지지를 않는다.


나는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비주얼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맛에만 치중하는 타입인데 그래도 맛은 나오긴 한다.


그런데 어릴 때 우리집은 소고기보단 아무래도 삼겹살 같은 돼지고기 위주로 많이 먹기도 했고, 나도 차돌박이같은 기름기가 많은 소고기를 먹으면 잘 체하는 편이다 보니 소고기는 잘 못굽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결혼 후 처가댁이 주로 소고기를 드시다보니 굽는 스킬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본격적인 스테이크는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해서 성공률이 복불복이긴 한데, 어떻게든 맛있게 구워주고 싶어서 제미나이한테 고기 굽는 법을 물어봤다.


굽기 직전 소금을 뿌리고 기름을 팬에 넉넉히, 거의 찰랑거릴 정도로 붓고 강불로 팬에서 연기가 날 때 까지 가열.

고기를 올리고 1분간 굽고. 그리고 뒤집어서 다시 1분간 강불로 구워준 뒤 중불로 내려서 반복적으로 3~4회정도 한 면당 1분씩 총 3~4분 반복.

그리고 꺼내서 호일로 덮어 5분간 레스팅.


고든 램지에 빙의해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팬을 달구고 고기를 올렸지만, 나의 저렴한 스킬로는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내가 뭐 안성재 셰프도 아니고 고기를 이븐하게 굽지 못해 꺼내서 잘라보고 덜 익은 걸 확인하고 한번 더 팬에 넣고 익혀야만 했다. 그래도 두번째 익히고 나서는 나름대로 먹을만은 했다. 물론 전날 먹은 스테이크에 비하면 질기기도 하고 어딘가 푸석한 느낌도 났다.


우아한 미슐랭 3스타 식당이 아닌 장난감이 널려있는 우리집 식탁에서 멋진 셰프가 아닌 기술영업하는 회사원 아빠는 고급지게 칼로 썰지 않고 최대한 실용적으로 가위로 쓱쓱 잘라서 아이들 입에 넣어줬다.


첫째가 입에 넣고 조금 씹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쌍 따봉을 날려준다.


"아빠, 진짜 너무 맛있어요!"


까다로운 둘째 녀석도 입에 넣더니 뜨거웠는지 뱉으려고 했으나 다시 입을 닫고 먹는다. 이녀석이 뱉지 않고 먹는다는 건 맛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더 쥬세여~."


순간, 방금까지 나를 짓누르던 회사 가기 싫다는 무거운 피로감이, 당장이라도 퇴사하고 애들도 양가 부모님 댁에 맡기고 와이프랑 같이 일본으로 여행이나 가고 싶다는 그 미칠것 같은 간절함이,


그냥 한 방에 싹 날아갔다.


내가 왜 그 더러운 입찰 비리 앞에서도 억지로 웃었는지.

왜 퇴근하고 뼈가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쉬지 않고 글을 쓰고 투자를 위해 AI를 돌리고 있었는지.

굳이 멀리서 답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정답은 지금 내 눈앞에 앉아 내가 구워준 어설픈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고기 좀 이븐하게 굽지 못하면 어떠냐.


미슐랭 3스타의 완벽한 요리가 아니면 또 어떠냐.


내 새끼는 맛있게 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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