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어서 찬란한 나의 슬램덩크

우리 집에 슬램덩크 애장판 전권이 있다. 당근으로 와이프에게 허락받고 산 애장품이다. 지금도 가끔 한 권씩 꺼내 본다.


슬램덩크는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만화는 진짜 청춘이다. OST도 박상민 버전보단 비디오판 OST인 『너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어』와 2기 엔딩곡이자 정대만 주제가인 『세상이 끝날때까지는』을 좋아한다.


몇년 전 나온 슬램덩크 더 퍼스트도 와이프와 함께 봤었는데, 역시나 남자의 만화였다.


슬램덩크는 고등학교 때 처음 봤다. 그때도 미친듯이 재미있었다. 그때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화책도 빌려줬는데, 정주행만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아마 고등학교때는 실제로 하는 농구에도 미쳐있어서 더 그렇게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체육관에서 농구하지 않았다. 운동장 한쪽에 아스팔트 코트가 있었고, 코트 라인이 있긴 한데 거의 지워지다시피 한 바닥에 골대만 있었다.


골대는 한 네 개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보통 농구를 하면 항상 반코트였다. 농구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많았고 골대는 부족했는데, 거기서 풀코드를 하면 욕 먹기 딱 좋았으니까.


보통 3대3이나 4대4. 아무래도 4대 4가 많았다. 한명이라도 더 많이 했어야 했으니까.


점심시간에도 농구했고 석식시간에도 농구했다. 밥은 최대한 빨리 먹고 뛰어갔다. 늦으면 코트를 뺏기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밥을 먹지 않고 우선 농구부터 한 뒤 밥을 먹으러 가곤 했었다.


경기 룰은 항상 7점 내기 밀어내기였다. 지는 팀이 내려간다. 파울에 대한 규정은 명확하지 않았고, 대충 우기면 끝인, 그런 경기였다.


내 포지션은 보통 센터였다. 내 키가 184센티인데, 우리학교에서 그 정도면 센터였다. 학년에서 가장 큰 녀석이 186정도 되었으니까. 그 친구 별명은 야오밍이었다. 생긴것도 비슷했었고.


내 역할은 간단했다. 리바운드와 몸싸움, 그리고 골밑 슛. 중거리에서 슛하면 욕먹었다.


한 번은 친구가 쏘던 슛을 블로킹하고 그 공을 그대로 잡았다.

순간 욕심이 생겼다. 혼자 드리블을 치고 뛰어가서 그대로 필살 레이업을 올렸다. 노골이었다. 뒤에서 바로 소리가 나왔다.


“야이 병신새끼야, 센터가 레이업을 왜 해!”


리바운드하다가 농구공이 약지 손가락에 걸려 손가락이 퉁퉁 부은 적은 셀 수도 없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계속 농구를 했다. 진짜 젊은 날이었다.


또 한번은 선생님들과 농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체육선생님과 리바운드를 하다가 부딫혔는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키가 180이 넘고 몸무게도 이미 80이 넘던 나로서는 솔직히 만만하게 봤던 체육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단단함에 그대로 아스팔트로 떨어졌다.


그때 우리학교 중국어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이 침을 놓을줄 아셨는데 허리가 많이 놀랐는지 근육이 막 꿈틀꿈틀 했었다.


슬램덩크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슬램덩크에는 명장면이 많다. 정대만의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도 있고 산왕전 마지막 1분의 대사 없는 그 숨막히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산왕전의 데드볼 장면이다. 정대만이 놓친 공을 강백호가 살리려고 "비켜, 정대만!"이라고 외치며 점프하는 장면.


그 모습을 보며 채치수가 예전에 채소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


"지금은 초보자지만 언젠가는 농구부의 구세주가 될지도 몰라. 이름은 백호라고 해."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다.


슬램덩크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정대만이었다. 아마 대한민국 남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리바운드하고 몸싸움하는 센터였다. 키도 정대만이랑 똑같은데.


슬램덩크는 나에게 청춘의 상징이다. 젊음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 수 있는 나이다.


왜 강백호는 선수생명이 걸려있는 부상을 입고서도, 산왕전에서 그토록 불태웠을까. 그때는 이해가 되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그런 말을 했다. 자기가 슬램덩크 2를 그리기 어려운 이유가, 그때는 자기도 젊은 혈기로 그렸었지만 지금 보면 왜 그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뜨거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그 감성으로 그릴 수가 없다고.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가 오고 있지만, 그래도 슬램덩크를 읽으며 그때의 그 마음을 더듬어 보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 시절의 뜨거운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아직도 철없이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현실이라는 닻이 묵직하게 나를 붙잡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차라리 그렇게 남기를 바란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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