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했듯 나는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다.
그 사실을 부모님이 정확히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분명 눈치는 채셨을 것 같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월 화 목 금 주 4일 야간자율학습, 속칭 야자가 의무적이었다. 당연히 야자 감독은 선생들도 매우 싫어하는 야근인데, 그래서인지 학교측의 제안으로 야자 감독을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한 적이 있었다.
야자 감독을 학부모들이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녁 시간에 학부모들이 간식을 사 들고 교실에 들어왔다. 각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있는 반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빵 정도였던 간식이 점점 스케일이 커져서 나중에는 햄버거 세트까지 등장했다.
우리 어머니도 당연히 한 번 오셨다. 나는 어머니가 오시지 않기를 바랬지만.
우리 어머니가 사온 간식은 롯데리아 햄버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 그때 나는 그게 창피했다.
맥도날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진짜 병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병신이었다. 그게 뭐라고.
어머니가 햄버거를 꺼내 놓자 몇몇 애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00아, 잘먹을게. 고마워.”
평소에 나와 말을 섞지는 않던 애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주도적으로 따돌리던 애들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놈들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 눈치채셨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어떤 상태인지.
나는 어머니의 표정을 굳이 알고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창피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떳떳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졸업식 날도 비슷했다.
보통 졸업식이 끝나면 다들 그렇듯이 친구들끼리 사진을 찍는다.
“야 여기 와봐.”
“같이 찍자.”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기와 친한 친구, 혹은 친하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서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학교 끝나고 어디를 놀러갈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가족끼리 이미 식사장소를 잡은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누가 먼저 사진 찍자고 하는 일도 없었고 나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어머니는 멀리서 지켜보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날 일을 하느라 오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혼자 오셨던걸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내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웃고 계셨다. 그래도 웃으셨다.
나는 그날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졸업식날도 야자 감독때 처럼 어머니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더 초라해질 것 같아서.
그때 딱 한 명 어떤 여자애가 내게 와서 말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까랑까랑한 여자애였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00아 그래도 우리 2년 동안 같은 반이었잖아. 사진 한 장 찍자.”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사진을 찍었다.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데, 웃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내 졸업식에서 찍은 유일한 친구와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도 어머니가 찍어주셨다.
그 사진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장면은 아직 기억난다.
졸업식 날 교실 복도,
카메라를 들고 서 있던 어머니,
잠깐 와서 사진을 찍어주던 그 여자애.
그리고 그날 끝까지 웃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
졸업식이 끝난 뒤 나는 어머니와 어디를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특별한 대화를 했던 기억은 없다.
그래도 그때는 조금 나았다. 이미 대학 합격 발표가 난 뒤였고, OT도 다녀온 상태였다. 적어도 앞으로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빨리 모든 것이 끝나고, 대학에 진학하기만을 바랬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묻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묻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