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결과가 정해진 입찰이었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부터 싸늘했다.


통상적인 가격에 비해 예산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장비 입찰 공고가 나라장터에 떴다. 이걸 보고 나는 분명 이미 결과가 정해져있는 입찰인 것을 확신했다. 그 누가 들어오더라도 무조건 특정 업체가 지정될 것이다. 게다가 공고를 낸 기관은 이미 경쟁사와 아주 찐득한 관계가 있기로 업계에 소문이 난 기관이었다. 승산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입찰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 입찰이, 발표평가회가 있는 입찰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입찰의 합격여부 대신 외부 평가위원들에게 우리 회사를 홍보하는 기회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학원 강사를 했었고 꽤 인기강사였기 때문에 발표에는 자신이 있었다. 내 발표를 들은 고객이 발표는 정말 잘한다고 인정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우리도 제안을 한번 드려보겠다고 말했다. 혹시나 담당자에 따라서 실낱같은 희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역시나였다.


“굳이 오실 필요 없습니다. 제안서대로만 잘 준비해 오시면 아주 공정하게 평가가 진행될 겁니다.”


저놈의 '아주 공정하게' 라는 말을 강조하는 기관 치고 한번도 제안서대로 평가하는 기관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입찰에 들어갔다.


이미 결과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은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하는 회사인지, 같은 예산으로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누군가는 한번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표 준비를 꽤 많이 했다. 장비의 상세 스펙과 특별 옵션, 우리 장비만이 가진 구조와 운용 방식의 장점까지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제안서만 200페이지 가까이 썼으니, 얼마나 공들였는지 감이 올 것이다. 평상시 내가 나름 신경써서 내는 제안서가 보통 70페이지 정도이니, 그에 3배 가까운 양을 쓴 것이다. 물론 평가위원들이 그걸 다 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티를 내고 싶었다.


심지어 이 입찰은 내가 제안서를 모두 인쇄해서 가야만 하는 입찰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수요기관에서 평가위원들을 위한 제안서 인쇄본을 준비해야 하지만, 솔직히 이것도 갑질인 것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꺼이 가져갔다.


발표 당일, 회의실에는 내부 인원 세 명 정도가 앉아 있었고 외부 평가위원은 여섯 명 정도였다. 발표자의 위치가 문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평가위원들을 내가 지나쳐서 발표하러 가야 하는 구조였다. 벌써부터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를 안내하는 담당자가 들어가며 주의를 주었다. 발표장에서 녹음장치나 휴대폰으로 녹음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된다고. 솔직히 여러 기관에서 수차례 발표를 하면서 처음 듣는 주의사항이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 들어가 발표를 했다. 발표는 상당히 잘 했다고 생각한다. 준비한 내용은 대부분 전달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중요한건 발표가 아니었다. 솔직히 내부 인원들은 발표내용에 관심 없는게 티가 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첫 번째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이 어떻게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업이 수십억짜리인데 귀사 작년 매출이 이보다 작고, 올해도 수십억 정도라는데 한 해 매출의 절반이 넘는 예산이 걸린 사업을 이 회사가 수행해야 할 당위성이 뭡니까?”


첫번째 질문부터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이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맞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보실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계속 성장 중인 회사입니다. 예년 매출이 10억이 채 안되었을 때도 20억 규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저희는 무리한 확장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현금 흐름을 관리하면서 사업을 하나씩 쌓아가는 회사입니다.

오히려 매출이 적은 상태에서도 회사 매출규모보다 훨씬 큰 사업을 안정적으로 성공한 것이, 저희가 보다 안정적인 회사라는 점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이어 두번째 질문이 들어왔다.


“회사 규모가 작은데 노하우나 할 줄 아는 게 뭡니까?”


역시나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이다. 통상적인 질문은 회사에 대한 질문이 아닌 장비나 구조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애초에 회사 규모나 재무제표에 대한 내용은 제안요청서에 있는 정량평가 점수에 들어가지도 않는데도, 이렇게 회사 규모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이유는 뻔했다. 나는 대답했다.


“저희가 제안한 구조 자체가 저희 노하우라고 생각합니다. 대형 장비를 한 대로 운용하는 대신 두 대로 나누어 운용하면 작업 효율도 올라가고 장비 부담도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무리하게 단가를 낮춰서 들어오는 것도 아닌 것이,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희도 이정도 구성과 옵션을 넣고도 회사 이윤도 정상적으로 책정이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이정도 예산이 구축된 상태에서 이런 대형 장비를 한 대 구성으로 들어오는 업체는 대형 장비 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희가 훨씬 경험도, 사용자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마지막 질문을 한 본부장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팔짱을 낀 채였다.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무례하다는 느낌이 분명히 전해지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메인 장비도 외국에서 사오고, 서브 장비도 국내에서 사오고, 서버도 외주 맡기고, 도대체 당신네 회사가 이 사업에서 외국 제조사에 빌붙어서 하는게 뭡니까?”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 개새끼.

대놓고 떨어뜨리겠다는 거구나.


질문의 내용도 도를 넘는 무례함이었다. 작정하고 왔구나. 이래서 녹음하지 말라는 주의를 처음에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아무도 말을 보태지 않았다.


내부 인원 세 명과 외부 평가위원 여섯 명이 앉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질문이 어떤 질문인지.


그래도 나는 바로 대답했다. 조금 흥분해서 톤이 살짝 높아졌다. 마음같아서는 그런 무례한 질문이 어디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희와 경쟁하는 업체도 메인 장비는 외국에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회사도 자체 제조 공장이 없기 때문에

서브장비도, 서버도 모두 외부 업체에서 제작합니다. 그 업체나 저희나 구조적으로는 하는 일에 차이가 없습니다. 애초에 메인장비는 국내에서 제조하는 곳이 없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본부장이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고 평가위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나는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발표는 잘 했냐?"


나는 발표 때 있던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으며 속에 쌓인 이야기들을 다 토해냈다. 사장은 그냥 웃으며


"수고했어. 말 잘 했네."


라고 했다. 그렇게 그날 하루가 끝이 났다.


사실 그 입찰은 처음 전화했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게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한번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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