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직원 한명과 점심을 먹는데, 그 친구가 불쑥 이런 질문을 했다.
“팀장님, 애 낳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저는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려고 생각중이긴 한데, 도저히 상상이 잘 안가요.”
나한테는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솔직히 나에게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하면 밤새도록 떠들 수도 있다.
“그냥 전부 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첫째는 달려올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보통 TV를 보고 있거나 태블릿을 가지고 놀고 있으면 바로 안달려오고, 책을 읽거나 동생과 놀고 있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중이면 달려온다. 호감의 순서가 분명한 녀석이다.
둘째는 일단 무조건 달려온다. 비슷하게, TV를 보고 있으면 중문을 열어주고 하이파이브만 하고 다시 달려서 돌아가고, 아니면 나한테 안긴다. 이건 패턴이다.
첫째도 둘째도 아들인데, 둘째가 이제 만 네 살이다. 얘가 요즘 크레인에 꽂혀 있다. 크레인, 포크레인, 아무튼 이런 류의 장난감이나 자동차는 다 좋아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포크레인이 보이면 '포크레인이야!'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요즘은 뽀로로 슈퍼영웅 나오는 걸 보고 “슈퍼파워”라는 말도 많이 쓴다. 망토도 좋아하고, 뭐든 자기가 해야 하는 녀석이다.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엄마를 치료해줄게요!"
이러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서 가져온다. 열이 안나도, 일단 물수건부터 가져온다.
우리 집은 수건함이 욕실 밖에 있다. 그래서 내가 샤워하고 나서 문을 빼꼼 열고
“누가 아빠 수건 가져다 줄래요?”
라고 물으면 둘째가
“슈퍼파워! 난 크레인이야.”
이러면서 수건을 들고 온다. 슈퍼파워를 발휘하는 크레인처럼. 게다가 둘째는 아들인데도 목소리가 엄청 애교 넘치고 귀엽기 때문에 듣고 있으면 저항없이 웃음이 터진다.
첫째는 조금 다르다. 만 5세, 한국나이로 7세인데 첫째는 말을 엄청 예쁘게 한다. 둘째가 귀여움으로 나를 녹인다면, 첫째는 기특함과 감동으로 나를 녹인다. 딱 장남 스타일이다.
"아빠, 전에 세부 가서 너무 행복했어요. 여행을 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실제로 첫째가 한 말이다. 이러니 내가 안녹아내릴수가 있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그 순간에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짜증나는 일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받았을 텐데 그건 뒤로 밀린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그 모든 걸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예전에는 당연히 내 기준으로 살았다. 내가 잘되면 좋았고 내가 편하면 좋았다. 내가 너무 힘들면 포기했다.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지금도 예전에비해 크게 성숙해지진 않았다. 내가 좀 더 성숙해졌다면 회사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고 이런 힘든 시기에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회사는 힘들고 가끔은 다 때려치고 싶다.
근데 하나 바뀐 건 있다. 기준이다.
지금은 애가 좋으면 좋다. 그걸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모든 것이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 된다.
“애 낳으면 내 삶이 없어진다.”
나는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다. 아이가 내 삶인데, 왜 내 삶이 없어졌다는 걸까. 내 삶은 모양과 형태를 바꿨을지언정, 없어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내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들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그게 불행한 건가? 아이들이 행복해하는게 나의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인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좋다고 달려오고 나는 그걸 보고 좋아한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심지어는 너무 예뻐서 화가 날 정도여서 '으어어어어!'하고 이상한 소리를 지른다. 그런 나를 보면서 와이프가 혀를 차곤 하지만, 좋은데 어쩌라고.
가족이 내 삶인데
왜 내 삶이 없어진다는 건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