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중학교 때 조아라에 판타지 소설을 연재했었다. 조회수는 한 4만에서 5만 정도 나왔던 것 같다. 그 시절 기준으로 아주 낮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엄청난 수준도 아니었다.
그런데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아주 친하지는 않은 어떤 애가 쓴 소설은 조회수가 80만 정도 나왔다. 나는 그게 다른 것 보다도 너무 부러웠다.
나는 특목고를 들어갔기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은 우리 동네와는 전혀 관계 없는 아이들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그 글을 내가 쓴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대충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거짓말은 원래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몇 개가 더 있었다.
애들이 점점 눈치채기 시작했다. 쟤 말이 이상하다고. 저 새끼는 자꾸 구라 친다고.
처음에는 뒤에서 수군대며 비웃는 정도였다. 그다음에는 대놓고 조롱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애들이 아예 각을 잡고 들어왔다. 정확히 증명해보라는 식이었다.
결정적인 날이 있었다.
쉬는시간 교실에서였다. 누군가가 정말로 교실 TV를 교실 컴퓨터와 연결해서 조아라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네 글 맞으면 로그인해 봐.”
당연히 로그인은 하지 못 했다. 조회수 5만짜리 아이디는 로그인을 했으나, 아이들은 그것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실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난다.
폭소가 터졌다.
조롱도 바로 따라왔다.
나는 그때도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한게 아니라,
"이게 왜 안되지? 해킹당했나?"
이러고 있었다. 참 한심한 놈이었다.
그 순간 이후로는 변명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반에서 그냥 거짓말쟁이였다.
나는 덩치가 큰 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맞고만 다니는 타입은 아니었다. 육체적으로 계속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다. 같이 치고받고 한 적도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그냥 사이가 안 좋은 수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는 꽤 오랫동안 지옥이었다.
제일 싫었던 건 급식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바로 급식실로 가지 않았다. 조금 늦게 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급식실이 별관에 따로 있었는다.
보통 점심시간 15분이 지나면 이미 대부분의 녀석들은 다 먹고 축구나 농구를 하러 나간 뒤였다.
긴 테이블이 몇 개 비어 있었다. 나는 항상 그중 하나에 혼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누가 때리거나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아무도 같이 먹지 않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이나 영화처럼 누가 와서
“같이 먹자.”
하고 내 앞에 앉아주면 좋겠다고.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한 번은 공교롭게도 자리가 없어서 누가 앉아 있던 테이블 옆에 앉은 적이 있었다. 내가 식판을 내려놓고 앉자
그 애가 나를 보더니
“에이 씨.”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밥을 먹었다. 속으로는 욕을 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꾸역 꾸역 입에 밥을 처넣으며 체할 것 같았던 기분이 기억난다.
그런 날이 몇 번 지나고 나니 급식실 가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중에는 매점에서 빵을 사 먹었다. 급식비는 내는 채로.
빵을 사서 교실로 올라가 대충 입에 우겨넣고 책상에 엎드려 잤다.
그게 차라리 편했다.
그래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석식은 기독교 동아리 애들이랑 같이 먹었다. 저녁시간 전에 음악실에서 자체 예배를 드리고 같이 내려가 밥을 먹었다.
그 아이들은 다른 반이거나 다른 과인 애들이 많아서 내가 반에서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도 어울려줬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저녁까지 혼자 먹었으면 아마 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3이 되기 전까지는 조롱도 계속 있었다. 그러나 고3 때는 애들도 공부하느라 바빠져서 강도는 줄었다. 그래도 아예 끝난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내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내 자리가 교실 끝쪽이었는데,
갑자기 축구공이 날아와 의자에 맞았다.
잠결에 일어났다. 공이 날아온 쪽을 보니 주동자였던 놈이 서 있었다. 그 새끼가 다시 한 번 세게 찼다. 이번에는 내가 얼결에 공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대로 그놈 얼굴에 집어던졌다. 바로 달려들었다. 중간에 덩치 비슷한 놈 하나가 끼어들어서 막지 않았다면 싸움으로 번졌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주먹다짐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일 이후로는 확실히 강도가 조금 줄었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해서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는 특목고였고, 잘사는 애들이 많았다. 우리 집은 잘사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다 가지고 있던 휴대폰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게 내가 왕따당한 이유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조금 덜 아팠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전부는 아니었다. 영향이야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내가 병신이었던 거다.
특별해 보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그러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크게 들켰다.
그게 더 정확하다.
웃긴 건 내가 공부를 못하던 애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신은 거의 밑바닥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특목고는 내신 따기가 어렵고, 나는 수업시간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거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오타쿠에 가까웠으니까.
모의고사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모의고사 점수는 늘 들쭉날쭉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정말 잠이 많았다. 당시 학교는 0교시도 있었고 야자도 있었다. 타지까지 학교를 다니느라 늘 잠이 부족했다.
고3 때도 1교시부터 4교시까지는 수업이고 나발이고 계속 잤다. 모의고사를 보면 검토도 잘 안 했다. 문제 풀이만 끝나면 그냥 엎드려 잤다. 그래서 성적이 아주 안정적으로 높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수능은 달랐다. 수능은 나도 긴장하고 봤기 때문에 언어영역을 제외하고는 검토를 여러번 했던 것이 기억난다.
가채점 결과가 나오고 반 애들이 조금 놀랐던 건 기억난다.
언어 100.
수리 100.
외국어 98.
사탐 점수가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총점은 전교에서 세 번째였다. 주동자 반응은 기억이 안 난다. 그런 걸 보면 별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 담임 반응은 기억난다. 원래는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 가채점 성적을 보고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진학 상담을 하고 학교 신문에 실을 글도 부탁했다. 서울대 간 애 하나, 연세대 간 애 하나, 그리고 나. 셋이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적는 코너였다.
나는 그때도 그 장면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솔직히 기분 좋았다.
예전에는 급식실에서 혼자 밥 먹던 애였는데 갑자기 학교 신문에 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게 복수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복수심이 맞을 것이다.
나를 괴롭힌 아이들보다 월등한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간 것만큼 큰 복수는 없었을테지만, 나는 생각보다 통쾌하지 않았다. 그냥 고등학교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만 생각했다.
그때의 괴로움이 너무 커서 대학교에 가고 나서는 거짓말을 거의 안 하게 됐다. 정확히는 거짓말을 할 바에야 차라리 말을 안 하게 됐다. 지금도 비슷하다. 거짓말을 하려면 아예 안 한다. 그건 우리 사장도 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아직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상처 중 하나고, 솔직히 말하면 극복하지 못한 상처이기 때문에.
교실 TV 화면.
“그럼 로그인해 봐.”
폭소.
조롱.
늦게 가던 급식실.
아무도 없던 긴 테이블.
“에이 씨.”
그리고 달기만 하던 빵.
지금도 가끔 그 장면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아마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그 이후로
거짓말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너무 일찍, 너무 크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