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거면 그런 영업 할 사람 뽑든가

전에도 말했듯 우리 회사 규모는 아주 작다. 5인 이하의 소기업, 여러가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피해가는 작은 회사다.


그런 작은 회사의 작년 매출은 수십억 대였다. 그 매출 대부분은 내가 만든 계약이었다. 이 회사에서 영업은 나 혼자니까. 즉, 나 혼자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나에게 올해 목표가 나왔다. 작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매출.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계산해봤다.


인원 그대로.

마케팅 그대로.

서비스 구조 그대로.

근데 매출 목표는 두 배.


사장한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제가 다 해야 하는 거죠?”

"그럼, 우리 회사에 영업이 자기 혼잔데."


속으로 스친 한 문장. 여기 오래 못다니겠다.


사실 최근 영업 실적이 좋지 않다. 경쟁사가 짜놓은 대기업과 대형 연구소 충성고객 카르텔에 의해 우리 고객들도 간섭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을 놓친 게 3건이 넘는다. 당연히 회사에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장 눈치도 엄청 보인다.


사장이 나에게 목표를 던지고 며칠 뒤, 이번에는 사장이 내 영업 스타일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방식으로는 재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한 영업이 쉬운 영업이야. 가격으로 밀어붙이는게 제일 쉬운 영업이라고.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는 재미가 없어요."


사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결국 술도 마시고 관계도 만들고 접대도 하고. 그래야 진짜 영업이라는 것이다.


자기 때는 다 그렇게 했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랑 옛날에 같이 일한 어떤 사람은 고객 회사 앞에서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서 팔 붙잡고 술 한번만 마시자고 한 사람도 있고, 고객 앞에서 아들이 아프다며 울면서 이번 한번만 장비 사달라고 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영업은 어쨌든 파는 놈이 장땡이야. 경쟁사 욕할 거 하나도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이 굳었다. 입도 닫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어. 깊게 한번 생각해 봐야할거야.”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은 딱 하나였다.


그럴 거면 그런 영업 할 사람 뽑든가 씨발.


나는 그런 영업이 싫다.

술 영업. 선을 넘는 접대. 리베이트.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판이라는 걸 안다.


도덕적인 이유도 있다. 와이프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해서까지 돈 벌고 싶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면, 돈이 남아도 내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나는 그런 쪽으로 영업을 할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영업했다.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고, 가격으로 밀어붙이고, 일단 장비를 설치해 판을 넓히는 방식.


우리는 시장 바닥에서 올라가는 중이고 아직 덜 깔렸다고 생각했다.

먼저 깔아야 한다. 마진은 그 다음이다. 그게 내 전략이었고, 또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 방식으로 작년 매출을 만들었다. 나름 마진도 나쁘지 않게 남겼다. 이제는 업계에 회사 이름과 함께 내 이름도 알려지고 있다. 우리 회사 사장의 이름보다, 내 이름이 훨씬 널리 퍼졌다.


우리 고객들은 사장에게 내 칭찬을 많이 했고, 나를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고, 나한테 잘해주라고 사장에게 말하는 고객도 있었다. 나는 이정도면 내 방식에 대한 증명이 어느정도 검증되었고, 회사도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회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이었다.


“이제는 가격 말고, 관계로 먹고 들어가라.”


정확하게는


"니 방식 말고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매출 올려라."


이거였다.


나는 머리로 이해는 했다.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막말로, 백만원 짜리 룸싸롱 데려가서 도우미 부르고 몇십만원짜리 양주 따라주고 천만원 뒷돈 찔러줘서 10억원 벌 수 있으면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은 아니었다. 하고싶지도 않고, 나로서는 할수도 없는 방식이다. 난 그런 곳에 가본적이 아예 없으니까.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장은 자기 이야기를 다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회사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사장은 깊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정말 깊게 생각하고 있다.


내 영업 방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여기서 언제 나갈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