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만 더 하죠

전에도 말했듯이 길거리 영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스티커를 붙여달라 하고 정기후원을 받는 일이었다.


오전 미팅과 피치 연습이 끝나면 혼자서 들쳐멜 수 있는 접이식 부스를 큰 부스 가방에 담고 전날 미리 정해진 팀과 함께 지정된 장소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해 부스와 이젤을 설치하고 섹터 미팅, 즉 그날 함께 뛸 사람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파이팅 하는 차례를 거친 후 일을 시작한다.


우리는 보통 그걸 “필드 나간다”, "필드 뛴다"라고 불렀다.


하루 종일 길거리에 서서 오가는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스티커를 붙이고 왜 후원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정기 후원을 요청했다.


성과 기준은 단순했다. 하루에 몇 개의 후원을 받았는가.


한 사람이 하루에 받은 후원의 갯수마다도 명칭이 있었다. 한 사람이 하루에 2개를 받았으면 벨, 3개는 공, 4개는 그냥 4공, 그리고 5개의 후원을 받으면 혼이라고 물렀다.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3개, 4개의 후원도 쉽게 받아내곤 했다. 그렇게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하이롤러"라고 불렀다. 그런 사람들 중 최정상 극소수는 하루에 10개를 찍는 날도 있었다. 그걸 우리는 “텐 쳤다”고 불렀다.


나는 교육과 팀빌딩은 잘했지만, 영업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3년 동안 하루 최고 기록이 5개였다. 그것도 딱 두 번. 대부분의 날은 0개나 1개로 끝났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선릉역 5번출구였다. 초가을이었고, 저녁이 되면 서늘해지는 그런 날씨였다.


나는 하루 종일 하나도 못 하고 있었다. 여느때와 같이. 저녁이 되자 이미 마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시계를 보니 7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원래 약속은 8시까지 필드를 뛰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미 태도가 무너질대로 무너진 나는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은 안 되는 날이었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 처럼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집에 가려고 했다.


오늘은 필드가 안좋았어, 여기를 너무 많이 나와서 섹터 피로도가 쌓였어, 선릉역은 원래 사람들이 바빠서 잘 안들어주잖아, 날씨가 쌀쌀해지니 사람들 걸음이 빨라지네 등등. 온갖 해괴한 변명을 내 속으로 쏟아냈다.


그때 같이 나간 섹터리더가 나를 붙잡았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사람이었다. 영업을 엄청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지사 500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었고, 어느 지점을 가든 이름만 대도 다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업으로만 한달 수익을 천만원을 찍던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나가면 혼 ” 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 사람이 약 1년간 일을 쉬었다가 다시 복귀한 뒤, 첫 주에만 26개를 한게 기억난다. 그것도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5개 이상을 찍어서.


신기한 건 그 사람이 영업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보통 영업 잘하는 사람들은 톤이 높거나 말 속도가 빠르거나 텐션이 기본적으로 강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달랐다.


일단 외모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체형은 좋은 편이었고, 항상 단정하고 짧게 깎은 머리를 올림머리로 하고 다녔는데, 본인 말로는 공룡 상 중에서는 가장 잘생긴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외모는 매우 호감형이었다.


목소리도 매우 좋았는데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으면서 또한 울림이 좋아서 듣는데 부담이 없었다.


톤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필드 시작 직후든, 마감 직전이든 말하는 톤이 똑같았다. 스피치 내용도 거의 그대로였다.


보통은 필드를 몇 시간 뛰어서 지치면 톤이 내려가거나 피치 내용이 짧아진다. 피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는 똑같이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몇몇 문장이 원래 피치에서 빠지거나 톤이 낮아지거나, 표정의 변화가 적어진다.


그 사람은 그런 게 없었다.


그리고 더 대단했던 건 푸쉬가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보통 마지막에 조금 밀어붙인다. 보통 클로징, 즉 후원요청 단계에서 행동촉구라고 부르는 마지막 행동을 하는데, 많은 하이롤러들이 여기서 조금 과하게 나간다. 많이 하는 행동은 보통 펜을 설명을 듣고 있는 시민의 손 쪽으로 가깝게 내밀거나, "이름부터 써주세요." 라고 강하게 밀어붙인다.


또 마음이 급해지면 보통 개인의 루틴이 깨지는데, 사실 가장 좋은 건 설명을 하다가 부스로 시민을 데려와서 부스 위에서 후원요청서를 보여주고 충분히 설명한 후에 후원을 요청하는 것이지만, 많은 하이롤러들은 시민을 세워두고 후원서를 가져와서 그자리에서 후원을 요청했다.


그 사람은 루틴이 거의 깨지지 않았다. 스티커도 굉장히 정중하게 부탁했다. 클로징도 항상 정석적으로 부스로 시민을 데려와 부스 위에서 후원서를 놓고 설명하고 푸쉬도 하지 않고 항상 후원요청서 옆에 펜을 내려놓고 한발짝 물러났다. 그런데도 결과는 제일 좋았다.


게다가 그렇게 정석적으로 하다보니 캔슬, 즉 웰컴콜 시 후원 취소가 나오는 경우도 별로 없어서 캔슬률도 가장 낮은, 정말 이상적인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나는 빵치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이미 몇 개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 가려고 하자 그 사람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리더를 줄여서 00리, 이런식으로 서로를 불렀다. 홍길동이라고 하면 길동리, 이런식으로


“00리, 한 시간만 더 하죠.”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약속한 시간이 8시였잖아요. 그때까지만 같이 해요.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그래서 나는 다시 필드에 섰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 집에 가기 전에 후원 하나를 받아냈다.


부스를 접고 돌아가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자기는 시간을 정했으면 무조건 그 시간까지 한다고. 왜냐하면 한 시간 빨리 들어가봤자 집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냥 쉬거나, 어쨌든 뭔가 생산적인 일은 잘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약속한 시간까지 한 시간을 더 뛰면 하나를 할 수도 있고, 두 개를 할 수도 있고, 하나도 못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정은 쌓인다고.


그렇게 쌓인 날들이 지금의 자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00리가 충분히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영업이 약한 건 알아요. 근데 이건 습관을 바꿈으로써 극복할 수 있어요. 결국 오늘 하나 하셨잖아요. 만약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갔으면 아무것도 못했을텐데.”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사람이었다.


얼마 전 그에게 연락이 왔다. 난 처음에는 결혼해서 연락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자기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나에게 인사 관리자로 올 생각 없냐고 물어봤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직 생각이 엄청 나는 시기는 아니었고 한창 일이 잘 될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 그날 생각을 조금 했다.


한 시간 빨리 들어가봤자 인생에 유의미한 일은 없다는 말.


생각해보면 나는 요즘도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별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한시간을 더 글을 쓰고

한시간을 남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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