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영업과 품의를 결정하는 영업

나는 길거리 B2C 영업과 B2B 기술영업 양쪽을 모두 경험해 보았다.


길거리 영업, 또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후원받는 방문판매 방식의 영업과 기술영업은 B2C와 B2B의 양 끝단에 있는 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후원을 받는 영업은 1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마음을 열어야 했다. 먼저 지나가는 시민에게 스티커를 붙여달라 요청하고, 스티커를 붙인 시민에게 1분만 이야기를 들어달라 요청하고, 이야기를 들어 준 시민에게 월 정기후원을 요청하는, 그리고 그 시민이 그 자리에서 펜을 들고 사인을 하는 그런 영업이다.


지나가는 시민에게 웃으며(Smile), 눈을 맞추며(Eye contact), 열정을 전달해(Enthusiasm) 걸음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1~2분짜리 짧은 피치로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단체를 소개하고, 후원 대상들이 처한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그 문제를 우리 단체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설명하고, 이런 해결책을 위해 후원해줄 것을 요청한다.


정해진 구역 내에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방문후원도 많이 받았다. 들어가서 가게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잠깐만 설명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사장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고 설명해보라고 하면 설명한다.


한번은 술집 같은 곳을 들어갔었다. 가게 주인이 여자 사장이었는데,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며 밀어내는 사장에게 알겠다고, 그래도 사업 번창하시라고 인사를 했더니 갑자기 활짝 웃으며 "어머, 감사해요." 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인사를 꾸벅 해준 사장도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정형화된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그자리에서 바로바로 나온다. 그날 내가 몇개의 후원을 받았는지가 내 수익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영업은 스티커를 붙일 때는 처음 3초, 설명을 들어달라고 할때는 스티커를 붙이는 10초, 그리고 후원을 해달라고 할때는 1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마음을 열고 설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설명의 논리성, 정합성보다는 설명하는 사람의 태도, 열정, 바디랭귀지 등의 비언어적 요소가 훨씬 중요한 영업이었다. 후원서를 보여줄 때 한발 물러서며 잠깐 침묵하고, 펜을 쥐어주는 행동촉구나, 거절 시 재설득하는 핸들링 등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충동을 일으키는 그런 영업이었다.


그런 만큼 B2C 영업은 거절도 매우 강력하다. 길거리 영업은 물론 내가 대표하는 그 단체의 후원을 거절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나를 거절한 것과 같다. 나를 파는 일이니까.


길거리에서 영업을 하면 직접적으로 거절하는 건 매우 정중한 표현이다.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그런 사람들인 이 악물고 무시한다는 것을 티를 내는 것이 보인다), 경멸하거나 혹은 여성 영업사원들의 경우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지금 하고 있는 기술영업은 완전히 다르다. B2B 영업에서 콜드콜을 했을 때의 거절은 B2C 영업에 비하면 거절하는 사람들이 천사같이 느껴질 정도다. '제가 바빠서,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이번 제안은 가격이 안맞아서, 아무래도 회사 규모가 작아서...' 같은 이유를 설명해주는 걸 듣고 있으면 이렇게 친절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러한 난관을 뚫고 실무진의 마음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 장비를 산다는 보장이 없다. B2C 영업과 다르게 B2B 영업은 집단지성에 의해 결정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실무진 뿐만 아니라 실무담당자가 그 윗선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명분, 무기를 영업사원이 만들어 그 사람에게 쥐어줘야 한다.


보통 팀장급, 혹은 그 윗선에서 보는 내용은 가격, 성능, 하자보증기간, 납품실적 등이다. 이건 실무진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실무진은 여기에 덧붙여 서비스 대응능력과 편의기능을 추가적으로 보는 편이다.


또한 실무부서의 윗선과 구매팀은 보는 관점이 또 다르다. 구매팀은 여기에 가격 네고 폭, 대금지급조건(선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지, 최대한 늦게 지급이 가능한지 등) 등을 추가로 또 본다.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설득할 수 있는 과정을 사전에 설계해야만 입찰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자가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나와 함께 해외 제조사 공장까지 사전 견학하고 장비수준과 제조사 레벨이 아주 훌륭하다며 우리 장비를 사겠다고 이야기 한 실무자가 윗선의 반대로 다른 장비를 산 경우도 있다. 결국 그 사람은 윗선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장비를 사야할만한 이유까지는 없었던 셈이다.


바꿔말하면, 나는 그 사람이 윗선을 설득할만한 무기를 그 사람의 손에 쥐어주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B2C 영업과 B2B 영업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 지갑을 열게하는 영업이고, 후자는 한 집단의 구조를 모두 설득시키는 영업이다.


그런데 이 판이하게 달라보이는 두가지 영업의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바로, 꾸준함과 인내를 가지고 버티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길거리 영업도 그랬다. 길거리 영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스킬도 중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정한 시간까지 끝까지 필드에 남아 계속 사람을 붙잡는 사람이었다. 매일 한 시간 더 버틴 사람이 장기적으로 보면 하루 평균 한 개, 두 개를 더 했다. 그렇게 쌓인 과정과 결과들은 한 달, 1년 뒤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곤 했다.


지금 하는 기술영업도 비슷하다. 당연히 처음에는 우리 장비를 거절했던 고객들이 있다. 몇 번을 찾아가도 다른 장비를 선택했던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그때 내 감정이 상했다고 그들과의 연락을 끊었으면 지금의 소중한 고객들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와 가장 오래 가는 사람들은 처음에 모두 나를 거절했던 사람들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나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실적, 장비 신뢰도, 옵션을 거절한 것이었다. 즉, 나를 거절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계속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찾아간 고객들 중 하나 둘 씩 마음을 열고, 다시 우리 장비를 검토하고, 결국 구매한 고객들이 늘어났다.


결국 그렇게 버텨서 다시 간 사람이 남는다.


길거리 영업과 기술영업은 완전히 다른 게임처럼 보이지만, 결론은 같다.


버티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나는 아직도 그 게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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