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가 꽃밭이었다

길거리 영업을 하던 시절, 월에 50만원 벌면 다행일 정도로 돈을 벌지 못하니 당연히 생활비가 없었다.


와이프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카드 대출도 썼고, 장인장모님께도 몇 번 손을 벌렸다. 그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능력한 남편이자, 아들이자, 사위였다.


그러다 어느 날 와이프가 말했다. 이미 와이프가 쓸 수 있는 대출은 다 쓴 상태였고, 정말 나한테 어렵게 말한 것이었다.


“여보, 생활비도 부족하고 대출 이자 낼 돈도 없어. 자기 명의로 대출 한번 알아봐.”


그때 나는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원천징수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 것 조차도 몰랐다. 그것도 와이프가 이야기 해줘서 알았고, 다음 날 영업지원 팀에 가서 원천징수 증명서를 발급받고 그날 필드를 뛰는 대신 은행에 갔다.


오피스 근처 주거래 은행 지점으로 일단 찾아갔다. 은행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전광판에 번호가 하나씩 넘어갔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이내 곧 내 번호가 불렸다.


창구에는 으레 그렇듯 친절한 표정의 젊은 여직원이 있었다. 밝게 인사하는 직원에게 나는 조금 머쓱하게 말했다.


“대출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


신분증과 원천징수 증명서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은 내 신분증을 받아 컴퓨터에 넣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이어졌다.


잠시 뒤 직원이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고객님, 현재 신용대출은 200만 원 정도 가능하세요.”


200만 원.


그때 나는 그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얼마 정도가 나오는지, 신용대출 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아, 200만원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직원은 금리와 상환 방식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솔직히 관심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히 순진한, 직설적으로 멍청한 청년이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은 와이프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보다 조금 전, 부모님을 만난 적이 있다. 부모님 댁 근처 카페였다. 들어가자마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의 침묵 후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그 일 꼭 해야겠냐.”


당시 하고있던 길거리 영업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이제 곧 지점장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깐 나를 보시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혀를 찼다.


“한심한 녀석…”


그 말이 들렸을 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조금 화도 났다. 특히나 어머니와는 다른 일로도 많이 싸웠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내 자존심을 긁기 위해서 공격하는 말로 들렸다.


‘왜 나를 이렇게 못 믿지. 왜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지. 이렇게 좋은 회사가 별로 없는데.’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월 50만원 버는 놈 치고는 참 애사심이 넘쳐나는 마인드였다. 나는 그때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내가 옳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은행 창구에서 대출 한도 200만 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사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학원 강사 생활은 사회생활을 넓혀주지는 않는다. 학원이나 학교는 매우 좁은 사회다.

길거리 영업은,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지만 나는 사회 생활에 대한 견문이나 경험을 하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출 한도 200만원이라는 숫자는 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신용.

내 상황.

그리고 내가 서 있던 사회적 위치.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그걸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은행을 나왔다. 밖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거리였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가 지나가고, 카페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아직도 내가 잘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속된 말로, 대가리가 꽃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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