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감정 어휘력 - 김종원
아이의 감정은 선명하게 밝혀 주고 부모의 말은 풍성해지는 102가지 마음의 언어
“감정 어휘를 아는 아이는 기분 따라 생동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짜증 나” 혹은 “몰라”라는 말로 모든 감정을 뭉뚱그릴 때가 있다.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김종원 작가님의 『부모의 감정 어휘력』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아이가 느끼는 복잡한 속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정의해 주고 있다. 단순히 말을 예쁘게 하는 기술을 넘어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느림’을 ‘신중함’으로 바꿔 불러주는 한 끗 차이가 아이의 자존감을 만든다.
상황별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 어휘가 사전처럼 정리되어 있고 추가로 필사 페이지도 있어 부모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에도 좋다. 특히 나처럼 사춘기를 앞두고 자기 성찰이 깊어지는 초등 고학년 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와 더 깊이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화나고 불편한 기분을 정확히 이해하게 해주는 감정 어휘
p.96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어떤 문제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먼저 괴로운 감정을 느낍니다.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과 직면해야만 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p.97
답답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불편한 상태’로 취급되기 쉽지만, 사실 답답함은 괴로운 마음을 이겨 내기 위해 분투할 때 만나는 가장 지적인 감정입니다. “아, 정말 답답하다! 이제 거의 답을 찾은 것 같은데….”와 같이,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답답한 감정을 자주 느낍니다.
p.99
“풀리지 않는 답답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거야.”
p.120
무서움은 ‘겁’의 감정에 가깝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대상 또는 사건의 위험에 겁을 먹은 것이죠. 어두운 골목에서 큰 소리가 나고, 낯선 개가 갑자기 달려들면 우리는 무서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두려움에는 이런 무서움의 감정과 함께 기본적으로 불안감이 깔려 있습니다.
p.121
두려움은 단순히 무언가에 겁을 먹고 무서움을 느끼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감정입니다.
p.122
아이가 두려움을 느낄 때, 그 감정 아레에 숨어 있는 걱정과 불안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주세요. 아이는 단지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답답함이라는 이름의 지적 성장통
나는 원래 ‘나쁜 감정’에 많이 약한 편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스스로 판단할 때 나는 많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부정적 감정을 늘 피해야 할 상태라고만 여겨왔다. 그런데 이런 화나고 불편한 마음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답답함’을 괴로운 마음을 이겨 내기 위해 분투할 때 만나는 가장 지적인 감정이라 정의한 대목이 참 신선했다. 무언가 풀리지 않아 쩔쩔매는 아이의 모습이 정체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답을 찾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머리를 쓰는 상태라는 해석은 부모인 내가 가져야 할 인내심을 알려 주었다. 또한 ‘무서움’과 ‘두려움’의 미세한 차이를 짚어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눈앞의 위험에 반응하는 본능적인 무서움과 달리 그 아래 불안과 걱정이 깔린 두려움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고차원적인 본능이라는 해석. 이는 아이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을 단순히 “겁내지 마!”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자기 보호의 의지를 읽어줘야 함을 뜻했다.
최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부쩍 자기 생각이 더 많아진 아들을 보면 이런 감정 어휘의 필요성이 더 느껴진다. 새로운 환경이나 관계 앞에서 아이가 머뭇거릴 때, 이것은 단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중하게 살피는 두려움의 과정이었다. 아이의 감정 아래 숨은 불안을 정확한 단어로 정의해 주는 것은, 어쩌면 정답이 없는 육아와 교육의 세계에서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안내가 아닐까 싶다. 답답한 시간을 견뎌내면 결국 원하는 답을 찾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인 나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어둡게 가라앉은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감정 어휘
p.230
‘심심하다’라는 말과 ‘지루하다’라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심심하다는 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뚜렷한 계획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지루하다는 건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 일이 지속한 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같은 수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거나 같은 게임을 여러 번 하면 아이들은 ‘이거 언제 끝나?’라고 하기도 하죠. 여기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심심함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 단계라고 볼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아요. 심심하다는 말은 아이에게 창조성을, 지루하다는 말은 인내심을 가르칠 수 있는 표현입니다.
p.232
아이가 심심하다고 말할 때마다 다른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주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심심한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p.233
“어떤 일이든 오랫동안 반복하면 지루한 감정을 느끼게 돼. 그런데 그걸 이겨 내고 계속하면 조금 더 깊이 배울 수 있게 되는 거야.”
심심함이란 창의성이 자랄 수 있는 씨앗
심심함은 아무런 계획 없이 비워진 상태로 새로운 창작이 시작되는 토양이며 지루함은 반복되는 과정을 견디며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가는 인내의 시간이다. 김종원 작가님은 아이가 심심하다고 할 때 장난감을 쥐여주는 대신 그 시간의 가치를 알려 주라고 조언했다. 여기에 지루함을 이겨 내야만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는 사실도 알려 주셨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가 한창 어릴 때 나와 아이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의 입에서 “심심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일종의 직무 유기처럼 느끼곤 했다. 스마트폰을 쥐여주기는 싫고 내 시간과 체력, 한마디로 뼈를 깎아 ‘엄마표 놀이’를 준비하고 주말이면 아이의 눈과 귀가 즐거운 곳을 찾아 헤매는 일상을 반복했다. 아이의 일분일초를 빈틈없이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믿으며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뒤 우리 아이는 엄마나 미디어 없이는 단 십 분도 스스로 시간을 쓸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성과 창의성, 회복탄력성을 교육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아이를 키웠으나 정작 그 힘들이 자라날 여백을 내가 다 메워버린 것이다. 창의성은 결핍과 심심함 속에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부지런히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가 심심하다고 말해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비워진 시간이 아이의 내면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소중한 씨앗이 될 것임을 믿고 있다. 지루함 뒤에 숨겨진 배움의 깊이를 기다려주는 인내와 함께 심심함이라는 창의성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게 기다려보는 중이다.
마음이 단단하고 다정한 아이로 자라나게 해 주는 감정 어휘
p.280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아이는 살면서 어디에서든 행복할 일을 발견합니다. 늘 밝게 웃는 잘 자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반드시 알려줘야 하는 감정 어휘입니다.
p.288
“감사하다는 말도 소중해.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 그보다 형식적이지 않고 정말 마음을 꺼내는 느낌이 들어. 쉽게 들려줄 수 없는 말이라 더 귀하지.”
p.300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일상의 작은 여유를 즐기지 못합니다. 여유가 뭔지 잘 모르니까요. 부모가 늘 바쁘고 초조한 얼굴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는 이미 삶에서 여유로움을 두려워하는 감정 회로를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무언가를 배울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야. 마음이 급해지면 보이는 게 없어서 무엇도 배울 수가 없지.”
빛나는 태양에게 여유라는 지혜를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우리 부부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부모가 되자’, ‘우리 아이는 밝은 아이, 밝게 웃고 환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라는 대화를 참 많이 하곤 했다. 나와 남편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늘 근심과 걱정이 있었는데 자라온 환경에 의해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름도 ‘태양’이라고 지었다. 정말 태양같이 환하고 밝은 아이가 와주었다. 우리 가족은 아이 덕분에 밝아졌고 웃을 일도 참 많이 생겼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며 어딘가 모르게 겁도 많고 걱정도 많고, 초조하다고 해야 할지 여유가 없는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할 일을 먼저 하고 노는 것과 함께 본인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에도 어느 정도 계획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지만 점점 본인 스스로 빡빡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왜일까? 아주 잠시 생각해 봐도 답은 금방 나왔다. 다행인 건지, 아이에 관한 어떤 고민이 생기면 그동안 관련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이유를 다른 데서 찾지 않고 부모인 나에게서 찾는 것은 익숙해졌다. 내 모습이었다. 내 모습과 점점 같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부터 바뀌기로 했다. 일상의 여유를 만들고 생각에도 여유를 만들어 ‘되는대로’라는 생각을 조금씩 키워갔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 파워 J 아니었어? 요즘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 변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여지없이 부모와 아이의 거울 관계는 통했고, 최근 들어 다시 아들도 여유롭고 밝고 장난기 많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유란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인생에서 참 길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여유를 가진다는 것도 내 삶을, 내 하루를 지혜롭게 꾸려나갈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 지혜를 아이와 함께 채워 나가보려고 한다.
책에 이런 말이 나왔다. 부모가 늘 초조한 얼굴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는 이미 삶에서 여유를 두려워하는 감정 회로를 배우게 된다고. 마음이 급해지면 살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아이는 어디에서든 행복을 발견할 줄 알기에 나는 이제 완벽한 계획 대신 스스로 만족하는 법과 함께 마음과 생각의 비어 있는 공간이 주는 평온함을 알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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