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 베스트셀러를 찾게 된다. 이 책도 그렇게 발견했지만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1965년 출간 당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반전도 영웅도 없는 조용한 교수의 삶은 당시 독자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러나 수십 년 뒤 유럽에서 재발견되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용한 삶을 깊이 있게 그려낸 이 작품은 이제 20세기 미국 문학의 숨은 걸작으로 불리게 된다.
주인공은 미주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하고 우연히 접한 문학 수업을 통해 영문학에 눈뜬다. 이후 교수로 살아가며 결혼, 갈등, 사랑, 좌절을 겪는다. 이 책은 평범한 한 인생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준다.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었나?
주인공은 처음엔 공부를 농장 일처럼 해냈다. 특별한 감정 없이 책임감 있게.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물리학을 전공하며 정답과 문제 풀이에 집중했고 ‘왜 배우는가’보다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집중했다.
스토너는 문학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내면의 떨림을 경험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마음에 남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변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뭔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한때는 정말 알고 싶어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밤을 새우던 순간이 있었던가? 당신은 정말 무엇을 배우고 있었냐고 스토너가 나에게 물어오는 것 같았다.
답답한 선택들은 비난받아야 할까?
스토너는 가정 안에서 아내 이디스에게 끊임없이 소모되고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마저 서서히 멀어진다. 이디스는 겉으로는 애정과 관심을 가장하지만 실은 주인공의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전략적 침묵과 조종을 지속한다.
그레이스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며 아버지와 거리를 두게 되지만 이후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딸의 말은 그들의 오랜 단절에 작은 틈을 만든다. 이 회복의 순간은 너무 늦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는 않았다는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반면, 동료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사랑은 인생의 유일한 빛이 되었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존중했던 관계는 사회적 벽 앞에서 끝내 이별을 맞는다. 그녀를 붙잡지 않은 것은 역시 본인 다운 방식이었다.
로맥스와 워커와의 갈등은 스토너의 신념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워커의 부정직한 학문 태도를 거부하면서 로맥스와 정면 충돌하고 결국 학과 내에서 철저히 고립된다. 그는 실패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
진짜 삶이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의 삶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기에 어려운 방식이다. 더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는 태도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며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의미 없는 일상에 치여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짜 가치는 어떤 역할이 아닌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그는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고 가르쳤으며 흔들리고 버텼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다만 존재하려 했음을 받아들인다. 스토너는 시대를 관통한 이 책을 통해 삶이란 원래 치열하게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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