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경향신문 젠더기획-

by 레토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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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각자 다른 도시로 흩어지고 각자의 삶을 꾸리다 보니 어느새 몇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졌다. 오랜만에 다시 모였던 날, 우리는 예전처럼 수다를 떨고 웃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시간이 쌓인 만큼 서로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주기적으로 보자고 약속했다.


이어 한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만날 때마다 각자 지금의 우리에게 건네고 싶은 책을 한 권씩 들고 와서 서로 돌려보고, 다음에 만날 때 간단한 메모를 하나씩 적어 책에 붙여서 만나자.” 어느 책에서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기억났다. 20대에 만난 우리가 이제 40대가 되었고 친구의 제안을 통해 서로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내가 건네 받은 책이 바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였다.


책장을 넘기자, 내 이야기가 사연들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끝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 그 누구도 명함을 주지 않았지만, 나를 살리기 위해 매일 같이 일했던 사람.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삶과 지금의 내가 겹치며 목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이 책은 단지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집에나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던 노동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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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희자 씨를 담기에 ‘집사람’은 너무 작은 이름

직함은 없지만 가정에서 중요한 일을 해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p.76

“일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래도 내가 집에 있음으로써 가족들이 다 편한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나 그냥 노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p.92

나는 시대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집사람’으로 불리는 것에 익숙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보다는 나를 찾고 싶었던 게 강했던 것 같아요.


내 노동에 이름을 다시 붙여야 할 때

남편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자연스럽게 ‘집사람’이라고 불렀다. 나 역시 어색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봄, 아들이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왜 엄마를 집사람이라고 불러?”순간 식탁 위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질문에 나는 어느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였는데, 왜 홍시라고 하였는지 물어보시면…” 하는 그 대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이었을 뿐인데 그것을 묻는 순간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어서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엄마는 아빠를 뭐라고 불러야 해? 밖사람?”나와 아들은 웃어버렸다. 나는 그저 가볍게 분위기를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의외로 표정이 굳은 사람은 남편이었다. 본인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해 온 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무엇인가 갑자기 자각한 사람의 표정. “그러게… 그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와이프라고 하면 되려나…?”


남편은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집에서 자랐다. 명절 식사 때면 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남자들 상이 먼저 거하게 차려졌다. 여자들은 부엌 한쪽에서 대충 모여 앉아 먹었다. 제대로 차리지도 않았고 제대로 차릴 기운도 없었으며 제대로 차려봤자 설거지만 늘어나니 스스로 그렇게 해온 선택이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그 광경이 늘 불편했다고 했다. ‘남자 여자 따로 밥상 차려 먹는 모습이 세상 꼴 보기 싫은 장면’이었다고. 결혼 후 남편은 그 문화를 없애기 위해 어머니와 여러 번 부딪쳤고 끝내 없애버렸다.


누구보다 그 오래된 질서를 불편해하고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를 ‘집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니.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그조차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채. 남편이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이해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치관의 문제였다. 호칭 하나가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쳐왔던 말 속에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명함이 없었던 것이지, 일을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명함이 집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가 살아낸 시간과 지켜낸 자리 그리고 내가 감당해 낸 매일의 일상. 그 모든 것이 이름을 가져도 괜찮은 일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일을 작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려 한다. 내 삶의 노동은 분명히 견고했고 소중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을 지금부터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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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

글 쓰는 게 왜 재밌냐구요. 글쎄…좋은 건 원래 왜 좋은지 모르잖아요. 그냥 그런 것 같아요. 죽어도 안 되던 것이 어느 날 될 EO의 희열, 약간의 한계를 조금 넘어섰을 때의 마음.


p.93

60대, 나는 지금이 좋아요.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꿈틀거리는 마음이 좋아요. 글씨도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 안 해요. 쓰고 싶은 대로 그날의 마음을 담아서 써요. 요즘 내 마음을 글로 써 봤어요. 동년배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싶은 글이기도 해요. “말도 안 되게 설렘과 벅참이 찾아올 거예요. 당신에게.”


글을 쓰는 시간,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아침

글을 쓰는 게 왜 좋은지 물음에 인화정씨는 “좋은 건 원래 왜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죽어도 안 될 것 같았던 것이 어느 날 문득 완성되었을 때의 희열과 조금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느껴지는 순간의 감각.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떨림. 그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40대가 시작할 때 갑자기 인생이 겁이 났다. 갑자기 모든 게 늦어버린 것 같은 기분. 아이만 키우다 나의 30대가 몽땅 날아가 버린 느낌, 20대가 성인의 시작이라면, 그 발판을 도약 삼아 30대가 인생의 가장 핵심 시기인데 나는 멍청하게 아이만 키우다 그 시간을 날려버렸다는 허탈감과 공허함. 그런데 인화정씨는 60대가 된 지금이 좋다고 하셨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시간. 글씨를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날의 마음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는 방식. 말도 안 되게 설렘과 벅참이 찾아올 거라는 확신에 찬 추천.


책 속 인물들의 사연에 나의 일상이 스며들며 겹쳐졌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먼저 양치하고 물 한 컵에 유산균 한 포를 챙겨 먹는다. 노트북을 열고, 다 읽은 책을 펼쳐 표시해 둔 부분을 필사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필사가 끝나면 다시 스위치를 전환해 엄마 모드가 되어 밤새 마른 그릇들을 제자리로 정리하고 아이의 아침 식사도 챙긴 뒤 이런저런 뒷정리를 한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30분 정도 짧게 운동을 다녀온다.


운동을 다녀온 후 씻고 나오면 커피 한 잔을 준비하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다시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귀한 시간을 만난다. 생각하고 쓰다가 멈추고 다시 고민했다가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한다. 필사해 둔 책의 문장에 기대어 서평을 쓴다. ‘서평’이라는 ‘성’을 가진 ‘에세이’라는 ‘이름’의 내 글, ‘서평에세이’가 천천히 모습을 갖추게 된다. 누가 대신 살아준 이야기가 아닌 내가 살아낸 자리에서 나온 온전한 나의 문장이다. 매일 오전 서너 시간은 내가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온전히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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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7

어느 날 그들의 노동이 사라진다면

손가락을 ‘딱’ 부딪쳐 특정 집단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우주 빌런이 대한민국에 상륙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빌런은 만 60세 이상의 여성들을 잠시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이 비탄에 빠졌을 때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이 든 여성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p.102

필수노동 세부직업별로 보자. ‘가사 및 육아 도우미’는 필수노동 8개 직업 중 60대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다. 전체 가사 및 육아 도우미의 56.3%(60대 46.5%, 70대 이상 9.8%)가 고령층 여성이었다.


p.108

그 공백은 사회를 멈춰 세우고도 남을 만큼 크지만, 그만큼 중요한 그 노동은 너무도 값싼 비용으로 유지돼왔다. 모두가 꺼리는 적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불안정한 일자리, 감염 위험, 직업을 낮잡아 보는 인식을 고령층 여성들이 감수해 온 덕에 이 사회가 유지됐다.


p.119

공부를 못 한 게 한이었던 순자 씨는 “우리 딸들 통장에 돈은 못 꽂아줘도 머리에는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세 딸에겐 “대학생이 돼라”, “일하는 여자가 돼라”고 잔소리를 했다. 딸들은 나처럼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게 순자씨의 원동력이었다.


p.127

순자씨가 공부로 우울의 시간을 통과한 것처럼 혜원씨도 글을 쓰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갔다. 서울에 새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한 혜원 씨는 여성 심리와 우울증을 다루는 독서 모음에 가입해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글감으로 떠올랐다. ‘엄마를 쓰는’ 마음은 처음엔 원망이었다가 미안함으로 뒤엉켰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 발언에 괴로워하던 자신의 모습에서 성희롱과 폭언을 일삼는 손님을 상대하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p.142

‘여성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단연하게 받아들이며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여성 일자리의 양극화, 이어진 신자유주의 분위기는 ‘엄마의 노동’을 ‘나의 노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나는 엄마와 달리 이름이 남는 일을 하겠다” 는 생각은 혜원 씨의 것만이 아니었다.


p.143

하지만 딸들의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일터에서의 자신은 ‘노동자’ 이전에 ‘여성’이었다.


p.144

1983년생 딸 4명 중 1명은 경력 단절

딸과 아들의 노동은 30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달라진다. 왜 그럴까. 일하는 여성이 더 이상 예외적이지 않은 지금도 가사와 돌봄은 여전히 여성 몫이다.


p.148

은하씨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나는 여기에 대항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고, 아니 살렸다고. 그녀의 노동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생계 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다고 말이다.”


엄마의 삶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타노스의 손가락에 의해 어느 날 이 나라에서 60세 이상의 여성들이 단숨에 사라진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병원과 요양시설, 가사와 돌봄 노동,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며 당연하게 누리는 시간의 바탕에는 고령 여성들의 노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길이 멈추는 순간 사회는 삐걱거리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정지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도와주는 일이나 부업 내지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 정도로 축소해 부르고 살아왔다. 중요한 노동이지만 싼값으로 유지되어 온 일을 그들이 감내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유지되어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딸 세대인 우리는 엄마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름이 남는 일을 하고 싶었고 스스로 경제적 주체가 되고 싶었으며 자립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사와 돌봄의 몫은 여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나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좁은 분식점을 하며 하루 종일 서서 나를 먹여 살린, 아니 목숨을 살린 엄마. 왜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에서 나를 데리고 탈출해 주지 않는지 원망스러웠던 시간들. 엄마는 본인 혼자였다면 더 빨리 빠져나왔을 거라고 자식을 데리고 나오는 건 생존이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이기에 자식을 데리고 전쟁터로 나서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딸이 시집을 가고 정말 혼자가 되었을 때, 더 깊은 어둠 속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나의 엄마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인식하게 되었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은 생계를 향한 용기는 키워주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용기는 오히려 작게 만든다. 돈을 벌어야 하고 자식 공부를 챙겨야 하고 집안일은 또 집안일대로 해내야 했던 엄마에게 지금 남은 것은 정신적 자유의 이면에 고혈압과 당뇨라는 아픈 흔적이 남았다. 그 노동은 희생이라 부르기에도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도 그 어떤 이름을 붙이기에도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된 후 이해하게 된 엄마의 삶은 작고 사소하지 않으며 묻혀도 되는 삶이 결단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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