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를 먼저 경험한 바둑계 사람들의 인터뷰집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by 레토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20251125_121500.jpg
20251125_121453.jpg

얼마 전 국회도서관에서 김상욱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중 AI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화면에 장강명 작가님의『먼저 온 미래』라는 책을 띄워주셨다. AI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을 바꾸고 있으며 AI가 가져올 미래를 가장 먼저 겪은 곳이 바로 바둑계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 이 책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인터뷰집이다. 전·현직 프로기사 약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인터뷰하고 쓴 글이다. 예상보다 훨씬 더 생생한 바둑계 현장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작가님은 AI 이전과 이후 바둑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 질문했다. “AI는 당신의 일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선택했나요?” 기자 출신 소설가이자 사회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 온 장강명 작가는 이들의 경험을 예리한 시선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태도로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보고서처럼 읽혔다.



20251125_121606.jpg
20251125_121556.jpg

p.12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1국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이 9단의 불계패였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의 승리를 달착륙에 비유했고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한국 바둑계는 공황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p.17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벌인 ‘구길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결과는 알파고의 4대1 승리였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거둔 승리는 인간이 알파고를 사대로 마지막으로 거둔 승리가 되었다.


p.20

얼마 지나자 정상급 기사 중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기사들은 AI 포석을 열심히 공부하고 초반 30~50수가량을 암기해서 뒀다. 모든 기사가 바둑을 비슷하게 두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p.21

2019년 말 이세돌 9단이 프로바둑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은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사실 이게 예술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종의 게임이 된 거 같다. 그런 점이 굉장히 아쉽다.”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바둑은 둘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작품이 되겠나. 제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더 이상은 하기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p.25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들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 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것. 그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 ‘공존’을 강요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달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인공지능은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와는 다르다.


p.61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AI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 일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이 은퇴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알파고와 대국할 때 딸을 대국장에 데려왔는데 딸 앞에서 당한 패배라서 더욱 아픔이 컸고, 그게 은퇴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 9단은 '딸 바보 아빠'로 이름나 있기도 하다. 만 9세였던 그의 딸은 이 9단이 알파고에 3연속으로 패하고 4국에 임하려 할 때 “아빠, 가지 마”라고 말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도 예전에는 “세상에서 최고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인공지능에게는 “아무리 잘 둬도 못 이길 것 같은” 것을 은퇴 이유로 꼽았다.


알파고와의 대국 8년 뒤 이세돌 9단은 구글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은퇴 이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알파고가 나오기 전의 기본와 지금의 기보는 완전 다릅니다. 예전 기보는 역사적인 가치 외에는 없는 거예요. 인공지능의 기보가 내용상으로 휠씬 더 위거든요. 인공지능의 기보를 보면서 '이건 이렇게 뒤야 되는구나, 여기서는 이렇게 둬야 되는구나' 배워야 하는 거예요.


구글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세돌 9단은 '다시 태어나도 바들을 둘 생각이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바둑을 배울 수는 있어요. 즐기면서 그렇게 할 수는 있는데 만약에 '바둑 프로가 될 거나' 그렇게 물으시면 생각이 다릅니다.


이세돌 9단의 인터뷰

2016년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이세돌 9단은 바둑의 본질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인간이 수십 년 쌓아온 감각과 창의성을 단숨에 뛰어넘는 AI 앞에서 그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는 자신의 신념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바둑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믿어 왔지만, AI가 등장한 뒤에는 그 작품성이 사라지고 전략적 계산 게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대국 이후 정상급 기사들조차 AI 포석을 30~50수까지 암기하며 따라가는 시대가 되었고, 그는 이런 변화를 ‘넘을 수 없는 절대 장벽’이라고 표현했다. 딸이 보는 앞에서 연패한 경험 또한 그의 마음을 깊이 무너뜨렸다. 결국 그는 ‘다시 태어나면 바둑은 즐길 수 있지만 프로기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AI가 바둑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했음을 인정했다.


나는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언제나 당당하던 이세돌 9단, 그리고 ‘AI가 아무리 잘 둬도 인간을 넘을 수는 없겠지’라고 믿었던 우리의 마음이 대국이 거듭될수록 흔들렸다. 1국에서 패하자 ‘그래도 한 번쯤은 이기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판이라도 인간이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숨을 죽여야 했다. 결국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된 뒤, 충격은 바둑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바둑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곧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 즉, 깊이 사고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그날의 공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인간만의 특징’을 다시 묻게 하는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20251125_121613.jpg
20251125_121638.jpg

p.68

이다혜 5단은 인공지능의 바둑을 현대미술에, 젊은 초일류 기사들을 큐레이터에 비유했다. 그녀는 “걔들이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까 패턴 같은 걸 인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다혜 9단이 말한 ‘젊은 초인류 기사’의 대표 주자는 신진서 9단이다. 2025년 현재 자타공인 세계 최강자로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의 뒤를 이어 바둑 황제의 길을 걷는 중이다. 지금까지 세계 대회에서 8회 우승했고 한국 대회에서는 30회 넘게 우승했다. 이 젊은 챔피언에게는 ‘만인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있다.


하지만 신진서 9단에게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같은 선배 기사들과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신 9단은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으로 공부하면서 “특히 포석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복기할 때도 유용해서 훌륭한 복기 선생님이 생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우리 세대에서는 많이 노력해도 AI를 이기는 것은 무리”라거나 “AI가 제시하는 수가 독창정 부분에서 사람에 앞서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p.115

“바둑계에 인공지능이 도입돼서 가장 아쉬운 점이 뭔가요?” 나는 여러 프로기사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기풍이 사라졌다’라는 답을 가장 많이 들었다. 한국기원의 바둑 용어 사전은 기풍을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 나타나는 각 개인 특유의 방식이나 개성”이라고 설명한다. AI포석을 암기한 시가들은 초반을 모두 비슷하게 둔다. 그러므로 기사들의 개성이 사라졌고, 그것이 아쉬운 일이라는 얘기다.


p.118

“이세돌 9단에게는 ‘이세돌류’가 있었고, 이창호 9단에게는 ‘이창호류’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 기사의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감상하면서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했고 그게 문화가 되어 전 해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풍 이야기 안 하잖아요. 박정환 9단과 최철한 9단의 차이를 아세요? 신민준 9단과 강동윤 9단의 차이를 아십니까? 모르잖아요. 기사들의 기풍이 없어지니까 영웅적인 캐릭터도 만들어지지 않아요. 누구는 몇 위, 누구는 몇 위, 그런 얘기밖에 안 해요. 랭킹 10위 권에 있는 선수들인데도 차별화가 안 되니까 그냥 뭉뚱그려서 보게 돼요.” 안성문바둑전문기자


p.173

바둑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다. AI시대 이후의 세계 최강자인 신진서 9단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이 단조로워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독특했다. 그가 보기에는 초반은 바둑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진서 9단은 “바둑의 꽃은 중반”이라며 “중반이 가장 재미있고 치열해요. 초반이 어느 정도 정형화 된다 하더라도 중반은 결국 재미있는 바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바둑의 매력에 대한 감각이 변하는 중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진서 9단의 인터뷰

AI 바둑의 도입은 젊은 기사들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다혜 5단은 AI 바둑을 현대미술에, 이를 연구하는 젊은 초일류 기사들을 큐레이터에 비유했는데, 그 대표가 바로 신진서 9단이다. 그는 이전 세대와 달리 인간 사범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은 첫 번째 초일류 기사다. 신진서 9단은 인터뷰에서 “포석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며 AI를 최고의 복기 선생님이라고 말했고, “우리 세대에서는 AI를 이기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많은 프로기사가 아쉬움으로 꼽은 ‘기풍의 소멸’각 기사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사라진 현실에도 신진서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바둑의 꽃은 중반’이라며, 초반이 정형화되더라도 중반의 싸움은 여전히 깊고 치열하며 창의성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AI 시대 이후 바둑의 매력을 해석하는 감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AI가 바둑을 뒤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신진서 9단처럼 AI를 경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배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풍이 사라지고 초반이 정형화되었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그는 중반이라는 새로운 창의의 공간을 발견했다. 나 역시 변화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만 하기보다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는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AI가 이미 기준을 바꾸어 버린 시대라면, 결국 살아남는 힘은 변화를 해석하고 활용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20251125_121702.jpg
20251125_121653.jpg

p.185

AI 기술에 대한 2020년대 사람들의 거부감은 그다지 논리적 이거나 일관성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공무원이 생성형 AI를 활용 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로 인해 업무 효율이 높아져 세금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는 뉴스를 들으면 다들 환영한다. 그런데 같은 일을 화가나 영화 제작자가 하면 비판을 받는 식이다. 왜 그럴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거라는 위기감 때문일까? 그렇다면 생성형 AI가 쓴 보고서는 왜 보이콧 대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컴퓨터가 영화계 일자리를 빼앗은 것도 결코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컴퓨터그래픽이 보급되면서 영화계에서 스톱모션 기술을 비롯한 구식 특수효과 전문가들의 활동 영역이 크게 위축되지 않았던가.


p.187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내가 수렴채집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고집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나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 내가 수렵채집인으로서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베어 내면 화가 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생활 방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p.280

하호정 4단은 역시 프로기사인 남편 이상훈 9단과 알파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알파고 때문에 바둑 산업이 파괴되고, 프로기사의 권위가 낮아졌죠. 내가 사랑했던 바둑이 이제 왜 숫자로 평가받는 건가 하고 슬펐죠. 그런데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잖아요. 알파고가 준 충격 자체는 슬프지만 알파고가 보여준 수를 모르고 죽었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만큼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수가 많았으니까요. 우리가 알 사범님이라고 하잖아요. 그 수를 몰랐던 무지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 이야기를 해준 다음 날 하호정 4단은 내게 메시지를 보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저는 AI가 없던 시절이 훨씬 좋은 걸로 의견을 바꿀게요. 낭만의 바둑을 두던 예전이 그리워요. 전에는 어떤 새로운 수를 연구할 때 거기에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배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찾은 은 새로운 수에 환호하고 연구를 거듭하며 성장해 갔죠. 우리 인간이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 속에서 성장해 가는 낭만이 있었는데, 알파고 이 자식 이후에는 뭔가 서늘해져 버렸네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이 몸은 편해지는데 영혼은 시드는 것 같고, 지금의 바둑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해서 의견을 번복합니다.”


p.281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

2000년대 초반 구글이 내세웠던 비공식 슬로건이다. 구글 개발자들이 회의에서 제안한 문구라고 한다. 2015년 구글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모회사인 알파벳을 설립했다. 이때 공식 슬로건도 함께 선보였다.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 이듬해 구글은 알파고로 인간 기사들을 모두 초라한 존재로 만들었고, 바둑계를 근본부터 뒤흔든 뒤 떠났다. 성능이 입증된 알고리즘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러, 막대한 주가 상승효과를 누리며 이것은 옳은 일인가? 인간 기사들과 바둑계에게 구글은 사악했던 것 아닌가?


p.302

나는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 가치 있는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만 나온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기술이 가치를 왜곡하고 훼손하고 변질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길을 잃었다. 신기술이 우리를 귀찮은 잡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여가 시간을 늘려줄 거라는 작은 기대조차 품기 어려울 정도로.


하호정 4단의 인터뷰

공무원이 AI로 보고서를 작성하면 환영하면서도, 화가나 영화 제작자가 AI를 활용하면 비난하는 모순. AI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생각보다 균형 잡혀 있지 않았다. ‘AI는 선택의 문제’라는 말도 이제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내가 쓰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AI를 쓰기 시작하면 가치와 환경이 변하고 그 변화는 결국 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지나 지금의 사회는 끊임없는 변화 속에 놓여있다.


바둑계 역시 같은 혼란을 겪었다. 하호정 4단은 알파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AI가 보여준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수를 알게 된 행운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결국 ‘몸은 편해졌지만, 영혼은 시드는 느낌’이라며 AI 도입 이전의 낭만을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구글의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 라는 슬로건과 달리 알파고가 바둑계를 뒤흔든 뒤 떠난 방식은 옳은 일이었을까? 바둑계에 사악한 일은 아니었을까? 결국 기술이 가치를 이끌어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의 가치를 흔드는 시대가 되었다.


하호정 4단의 말처럼 AI가 가져온 아름다움과 동시에 빼앗아 간 낭만에 대한 그의 갈등. 나 역시 올해 초까지 가졌던 AI에 대한 불신과 비슷했다. 처음엔 할루시네이션 논란을 보며 AI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인간의 역할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런데 기술은 결국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관점을 접한 뒤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말하는 ‘휴먼 인 더 루프’ 개념을 알게 되고 기술과 인간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하호정 4단처럼 여전히 AI가 가져오는 상실이 아프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감정과 가치가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해야만 한다.



20251125_121716.jpg
20251125_121746.jpg

#먼저온미래 #장강명 #AI시대 #알파고 #이세돌 #신진서 #바둑계 #AI인터뷰

#미래사회 #기술변화 #휴먼인더루프 #생성형AI #기술과가치 #기풍소멸

#독서기록 #독서블로그 #책리뷰 #논픽션추천 #바둑이야기 #AI와인간

화요일 연재
이전 02화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