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코스모스 Part3. 7부에서 9부까지 - 칼세이건

by 레토

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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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는 한 번에 읽기에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조금씩 나누어 읽다 보니 어느새 3주 차가 되었다.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만나고 있는 이 책은 단순한 우주 이야기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별을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루에 한두 장씩 잠깐이라도 마음을 비워 이 책을 펼쳐보고 있다. 칼 세이건의 문장은 과학책이지만 어딘가 시 같고 때로는 삶의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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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7장부터 9장은 우리가 지식을 쌓는 존재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존재로 한걸음 옮겨가는 구간으로 다가왔다. 7장은 인간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품은 첫 질문을, 8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려는 상상력을, 9장은 별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다시 생명의 순환을 보여 준다. 우주를 이해하려던 시선이 어느새 우리의 소중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코스모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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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p.329

반짝거리는 별들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빛’, 그 정도는 나도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떠돌아다니는 작은 등? 무슨 이유로 떠돌아 다니지? 나는 별들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가진 독특함이 완전히 잊혀지고 아주 평범한 것으로 취급받는 별들의 신세가 불쌍해 보였던 것이다.


p.339

보츠와나 공화국 칼라히리 사막에 사는 쿵족도 은하수를 그들 나름대로 설명할 줄 안다. 그들이 사는 위도에서는 은하수가 사람의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다. 그들은 하늘이 거대한 짐승이고 우리는 그 짐승 뱃속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 위의 은하수는 그 짐승의 등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하수를 “밤의 등뼈”라고 부른다.


p.342

그러다가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의 진원지는 사모스 섬이었다. 배들의 왕래가 활발한 무역의 중심지에서 모든 것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고의 혁명을 통해서 사람들은 혼돈에서 질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p.357

데모크리토스가 만들어 낸 ‘원자’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자를 수 없다.’라는 뜻이다. ‘원자는 궁극의 입자로서, 원자를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려는 시도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뜻이 이 한 단어에 담겨 있다.


p.360

아낙사고라스는 기원전 450년경 아테네에서 활약했던 이오니아 출신의 실험가였다. 그의 삶은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태양, 달, 하늘에 관한 탐구”라고 답했다.


p.363

파타고라스는 지구가 공과 같이 둥글다고 추론한 역사상 첫 번째 인물이었다. 달이나 태양의 유사성에서 주목했거나, 아니면 월식이 일어날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원형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추론을 했을 것이다. 또는 사모스 섬을 떠나는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부분이 돛대라는 점도 지구가 구형이라는 추론의 근거가 됐을 것이다.


그리소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도 바로 피타고라스였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천체”, 즉 코스모스로 봄으로써 우주를 인간의 이해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p.370

고대 과학의 쇠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오니아 중상주의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노예경제의 발전도 동반했다.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육체노동에 있었다. 육체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한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노동이었다.


p.375

지구가 하나의 행성이며 지구인은 우주 시민이라는 생각은 피타고라스 이후 3세기가 지난 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아리스타코스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오니아의 마지막 과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월식 중에 달의 표면에 드리워지는 지구의 그림자를 보고 태양은 지구보다 훨씬 크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옳게 추론했다.


p.384

태양이라는 이름의 그 별은 은하의 변방, 두 개의 나선 팔 사이에 잊혀진 듯이 버려져 있다. 태양이 속해 있는 은하라는 것도 뭐 그리 대단한 존재도 못 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주의 후미진 구석을 차지하고 겨우 십여 개의 구성원을 거느린, 작은 은하군의 그저 그렇고 그런 ‘식구’일 뿐이다. 그런데 그 우주에는 지구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의 은하들이 널려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으로

우리는 왜 별을 바라볼까? 세이건은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부터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신화의 시대를 지나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그 시간, 그것이 바로 과학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과학의 쇠퇴 이유도 함께 보여 주었다. 실험이 육체노동으로 폄하되고 지적 탐구가 실용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평가되기 시작했을 때 과학은 조용히 사라져갔다.


얼마 전에 블랙홀에 관련된 강연을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블랙홀 연구는 실제로 어떤 활용도가 있나요?”라고 질문했고 교수님께서는 “솔직하게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이어 맥스웰이 전자기파를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시 사람들은 “그건 어디에 쓰이나요?”라고 물었고 맥스웰은 “이번 발견은 실용적 용도는 없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어떤가. 전자기파가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다. 스마트폰, 통신, 의료, 교통까지. 모든 것이 그의 발견 위에 서 있다. 헤르츠의 실험이 불씨를 이어받았지만, 맥스웰의 ‘쓸모없던 발견’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과학은 사실 언제나 ‘쓸모없음’에서 출발한다. 순수한 궁금증,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망, 이유도 모른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고대 이오니아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의 가치는 경제적 효용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끈질긴 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는 그 본질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자연과학이야말로 문명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등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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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p.397

공간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시간적으로 과거를 보지 않으면 공간적으로 멀리 볼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공감적으로 몰리 떨어져 있는 천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면, 시간적으로 그 천체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빛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별 사이는 텅 비어 있고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M31에서 보는 빛이 지구를 향해 출발했을 당시 지구에는 인간이 단 한명도 없었다. 우리 조상들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p.398

지구에서 여태껏 발사된 물체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빨리 움직이는 것이 두 대의 보이저 우주선이다. 지금의 광속의 약 1만분의 1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광속에 버금가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까? 빛이, 그리고 광속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빛보다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오기나 할 것일까?


p.399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베른슈타인이 쓴 『대중을 위한 자연과학』라는 제목의 책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의 책은 첫 페이지부터 전선을 지나는 전기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빛의 놀라운 속도를 설명하고 있었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 책을 읽고, 만약 빛의 파동을 타고 여행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p.405

상대성 이론 이전 시대에는 빛이 공간에 충만한, ‘에테르’라고 불리던 특별한 매질을 통하여 전파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험을 통하여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실험이 바로 유명한 마이컬슨-몰리 실험이다.


p.408

광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여행을 하면 당신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지만, 당신의 친구나 친척 들은 여전히 늙어 간다. 당신이 상대론적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몇십 년씩 늙어 있겠지만, 당신은 전혀 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로장수의 영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이 지연된다. 그 까닭에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은 늙지 않으면서 다른 별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학적인 의미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는 것이 실제로 실현 가능한 일일까?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가 아닌 항성계로의 이주가 과연 가능할까?

p.417

우주여행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주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이다. 우리는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함으로써 공간 속을 빨리 움직여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어떠할까?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과거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역사책을 다시 쓰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상대론적 우주선을 이용하면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물리학자들이 많다.


p.428

별, 행성과 같은 세계 또한 우리 인간들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어서 사라진다. 인간 수명이 수십 년 정도인 데 비하여, 태양의 수명은 인간의 수억 배나 된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간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가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현대 지구인은 2,500년 전 신비주의와 대결해야 했던 이오니아 학자들이 경험한 바와 비슷할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가 세상을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그 영향이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전파되어 결국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나와 남편에게 영화 <인터스텔라>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다. 상상 속에만 있던 세계가 눈앞에서 실제처럼 펼쳐질 때 느껴지는 전율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카메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들. 시간의 왜곡과 중력의 굴절이 스크린 속에서 현실처럼 구현되는 그 장면들은 과학이 딱딱한 공식을 넘어 인간의 상상력에 닿게 되는 지점을 보여 주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디즈니 영화 <토이스토리> 속의 한 캐릭터가 따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우주’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에 끌리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물리를 선택하며 처음 들었던 ‘쌍둥이 역설’이 그랬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우주선 속에서의 나이는 다르다고? 믿기 어려웠지만 교과서 속 문제를 풀며 인간이 만든 우주선이 가지기에 불가능한 0.8c라는 속도를 상상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마 가장 많이 쓴 알파벳이 ‘c’였을 것이다. 빛의 속도. 그것은 단순한 상수가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경계선이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8장은 빛의 속도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별을 바라볼 때 사실은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빛의 유한한 속도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얽힘은 단순히 물리의 개념을 넘어 인간 존재의 방식에까지 닿아 있다. 우주에 비해 인간의 수명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공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질문이다. 빛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그보다 멀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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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p.432

애플파이를 만드는 데에는 밀가루, 사과, 설탕 조금, 비전의 양념 조금 그리고 오븐의 열이 필요하다. 파이의 재료는 모조리 설탕이니, 물이니 하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원자들은 모두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별이 우주의 부엌인 셈이다. 이 부엌 안에서 수소를 재료로 하여 온갖 종류의 무거운 원소라는 요리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수소 원자는 코스모스가 비롯된 저 거대한 폭발 속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애플파이를 맨 처음부터 만들려면, 이렇게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p.447

별들에게도 인간처럼 부모가 있고 그들의 세계에도 세대가 있는 셈이다. 먼저 태어난 별의 죽음이 새로운 별의 탄생을 가져오니까 하는 말이다.


p.452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후 어느 날 지구는 최후의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태양은 점점 더 붉게 변하면서 팽창하고 지구에서는 남·북 양극 지방조차 땀이 뻘뻘 흘러내리는 더운 날씨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해안 지대는 바닷속으로 점점 더 잠겨 들어간다.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므로 대기 중에는 수증기의 함량이 증가하고 구름의 양이 많아진다. 이 구름 덕에 태양의 빛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그 덕택에 최후 심판의 날이 도래하는 것을 잠시 늦출 수야 있겠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최후의 순간은 면할 길이 없다. 지구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태양은 자신의 진화 과정을 어김없이 밟아 간다. 바다가 끓어 올라 물이 모두 증발하고 그다음 대기마저 완전히 증발하여 사라지면,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이 행성 지구를 뒤덮는다.


p.458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우너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됐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들의 화학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이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유전의 관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고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하기도 한다. 우주선은 초신성에서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 거의 광속으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들을 뜻한다.


p.476

아인슈타인의 비유를 더 밀고 나가면, ‘블랙홀은 공간에 패인 바닥 없는 보조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밖에서 봤을 때 당신이 다 빠져 들어가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강력한 중력장에서는 기계적, 생물학적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빠져 들어가고 있는 당신의 세계에서는 모든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벌레가 사과에 침입하여 과육을 갉아먹고 나방이 돼서 빠져나가면 사과에 벌레의 입구와 출구를 연결하는 터널이 뚫린다. 벌레 구멍, 즉 웜홀은 사과에 뚫려 있는 입구와 출구에 해당한다. 존재를 증명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벌레 구멍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룬다.

그 구멍들을 연결하는 ‘우주 지하철’을 타고 여행할 수는 없을까? 블랙홀이 우주의 아득한 과거, 또는 먼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자녀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태양을 숭배한 것은 그들이 바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숭배의 대상은 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이 태양과 별들을 우러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다. 천문학 연구는 바로 이러한 경외감에서 시작되었다.


별의 기억으로 살아간다

블랙홀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화이트홀의 가능성이 열려 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블랙홀의 반대편 어딘가로 물질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그 시절의 과학을 조금 더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그 후 웜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쩌면 우주에 진짜 터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측 장비가 정밀해질수록 그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주의 신비는 더 멀리 달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과목 중에 생물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물리가 아닌 생물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엄마한테 더 많이 물어보고 엄마도 나한테 해줄 말이 많을 텐데….”이후 어쩌다 보니 생물을 전공한 고등학교 친구를 아들과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로 아이는 이모와 둘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알 수 없는 용어들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물리니 생물이니 하는 영역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모든 과학은, 아니 모든 학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세상은 어디에서 왔는가’ 칼 세이건은 그 답을 별 속에서 찾는다. 별이 자신의 생을 태워 만들어 낸 원소들이 모여 지구가 되고 그 위에서 생명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별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다시 우주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결국 별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달라질 뿐이었다. 아이에게 생물을, 나에게 물리를 가르쳐준 세상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별이 곧 생명의 근원이고, 모든 존재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뿌리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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