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배하는 대립과 공명

보이지 않는 질서- 뤼디거 달케

by 레토

Die Schicksalsgesetze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는 왜 전쟁을 일으키고, 선을 원하는 정치가들은 왜 악의 일부가 되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손, 대립·공명·의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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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를 집어 든 이유는 책의 표지를 감산 띠지에 적힌 문장 때문이었다. “평화를 말하는 종교는 왜 전쟁을 일으키고, 선을 외치는 정치는 왜 악이 되는가?” 세상은 늘 선을 말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처럼 보일 때가 많기에 그 모순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 안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 선과 악의 구조를 차분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가 외면해 온 감정과 욕망, 인정하지 않았던 어두운 면이 어떻게 사회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지를 ‘대립’과 ‘공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읽는 내내 어렵고 낯설었지만 그만큼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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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미국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비롯해 그를 따르는 호전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테러를 최소 다섯 배나 증가시켰다. 우리가 맞서 싸우는 문제는 대부분 싸움을 통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증가한다. 대립의 법칙을 전혀 모르는 단순한 기분파들의 희망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세계에서 현실의 한 극을 제거하려는 자는 모르는 사이에 극을 더 강화한다. 다시 말해 제거를 꾀한 사람은 극을 그림자로 만들어 한층 더 위험한 영역으로 멀어 넣는다. 우리는 그것을 ‘악’으로 부른다.


p.88

대립의 세계에서 만물이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특히 빛과 성스러운 것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우두운 법이다. 오로지 좋게만 보이는 것이 특히 더 그림자를 의심하게 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존 F. 케네디는 재임 시절 영감 넘치는 말을 남겨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지만,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 쿠바 위기로 인해 자칫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다. 리처드 닉슨은 불명예와 치욕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전쟁 찬성론자였는데도 베트남에 평화를 가져왔고, 중국과의 냉전 시대를 종식했다.


자기 안의 어둠을 인정하는 용기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는 왜 전쟁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이 이 책을 이끌었다. 선을 말하는 사람들이 왜 가장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 모순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그 이유를 ‘대립의 법칙’에서 찾는다.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지 않을수록 그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고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악’이며 그 악과 싸운다는 명분 아래 폭력은 정당화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자신을 스스로 선하다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잔혹함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평화를 외치던 지도자는 전쟁을 일으키고, 정의를 말하던 정치가는 폭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결점 많고 비판받던 인물들이 오히려 전쟁을 끝내는 역설도 생긴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했다. 악을 없애려 들수록 악은 커지고, 선을 주장할수록 폭력은 정당화된다는 것. 결국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의가 아니라 자기 안의 어둠을 인정하는 용기였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묻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자주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순간, 나 역시 또 하나의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되짚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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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고통은 불만과 공명해서 생겨난다. 반대로 만족과 공명을 이루면 서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따라서 아주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누이처럼 점점 닮아가는 노부부도 많다. 또 맹인과 안내견 사이의 공명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개와 개 주인이 서로 비슷하고 분위기가 일치하는 것도 놀라운데 이 또한 공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p.150

결국 우리는 현실을 보는 게 아니라 눈과 뇌를 매개로 세계에 상상을 투입해 해석한다. 생각할 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일어난다.


p.163

나는 명상 수행에서 내면의 웃음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활용했고, 그것이 이 책으로 발전했다. ‘내면의 웃음’이야말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p.188

이처럼 세상 곳곳에서 위계질서라면 우리는 이것에 주목하는 게 좋다. 따라서 대안이 없고, 자연에 의해 이미 주어진 위계질서라면 우리는 이것에 주목하는 게 좋다. 소우주에 해당하는 육체와 대우주 세계에도 존재하는 위계질서를 위반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육체의 한 기관이나 조직의 세포가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길로 들어설 경우 그것을 ‘암’이라고 부른다. 한 국가의 개개인이 테러리스트처럼 위계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예속되기를 거부하면 대개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 또한 육체의 암이나 다름없다.


p.212

우리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듣고 몹시 놀란다. 이는 단순히 무서운 회오리가 생성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분이 전체를 나타낸다는 ‘파르스프로토토 법칙’으로 알려진 비술 철학에 다가가는 길이 새로이 열린다는 뜻이다.


세상을 보는 렌즈 '공명'의 법칙

원래 공명이란 비슷한 성질·주파수·상태를 가진 것끼리 서로 영향을 주며 반응하는 현상을 뜻하는 과학적 용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읽으며 이 개념이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설명하는 말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책에서 말하는 공명은 내가 가진 상태가 현실을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즉, 내가 가 불안하면 불안을 자극하는 일이 생기고, 분노를 품고 있으면 분노를 불러오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만족과 수용의 상태에 있을 때는 그에 맞는 얼굴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사실 이 관점은 꽤 불편할 수 있다. 삶이 힘든 이유를 환경이나 타인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무너지지 않지만, 누군가는 심하게 흔들린다. 그 차이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의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책은 우리가 현실을 각자의 인식과 감정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내가 마주하는 세계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내 내면이 투영된 결과인 셈이다.


이 책이 말하는 공명은 운명론이 아닌 책임론에 가까웠다. 내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밖이 아니라 나 자신에 있다는 말이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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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9

장이론에서 본보기와 상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증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스위스에서 나온 증거였다. 스위스에서는 1년 동안 모든 분야에서 자살에 관한 언급을 피했다. 자살에 관해 쥐 죽은 듯 침묵한 것이다. 그 결과 그해 자살률이 90퍼센트 감소했다. 이어 기존의 일상적인 보도 정책으로 되돌아가자, 자살률도 다시 증가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빈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70퍼센트 감소했다. 이는 본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p.279

한번 만들어진 장과 의례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도로 교통에서도 볼 수 있다. 좌측 운행을 하는 영국의 시스템이 더 좋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수백 번 넘게 경험한 터라 그걸 말하는 게 입이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도 원활한 교통을 위해 화전 교차로를 도입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린다. 어떤 일은 왼손으로 하는 게 더 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교통부 정치가들은 좌측 운행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마치 기존 교통 체계에 존재하는 장을 파괴하는 게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장(Field)에 서 있는가?

『보이지 않는 질서』에서 마주한 ‘장(Field)’이라는 개념.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나 흐름쯤으로 이해하고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달케가 말하는 장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한 사회에 축적된 생각과 행동 그리고 반복된 선택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질서였다. 작가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선택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그 과정을 통과하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힘차게 빠져나오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 차이는 어쩌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오래 머물러 온 감정의 방향이나 익숙해진 사고의 틀, 즉 ‘장’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다고 믿는 현실이 사실이 주관적 해석의 결과라면 자유의지 역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형성된 장 안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선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인지의 중요성을 가져온다. 장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지하고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다른 선택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으로 반응하던 자리에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그곳에서 ‘지금 나는 어떤 장(Field)에 서 있는가?’를 묻을 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는 변화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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