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표지를 보고 김호연 작가님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불편한 편의점』과 이 책의 표지만 보고 나는 지레짐작으로 ‘아마도 이 책은 손님들이 어느 가게에 두고 간 분실물들과, 그와 연결된 우리네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지겠구나’ 하고 혼자 단정지었던 듯하다.
책의 프롤로그나 앞부분을 조금만 읽어보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판타지 장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독서 편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름 초보 독서가의 단계를 벗어났다고 스스로 자만했던 것 같다. 만약 이 책이 내가 선호하지 않는 판타지 장르라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다면,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싫은 건 싫다고 말해도 돼.
책의 주인공 유혜원 씨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김슬아라는 친구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혜원의 초등학교 시절, 슬아와의 에피소드는 중학교 때의 기억과 겹쳐졌다.
나 역시 혜원 씨처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 친구에게 당당히 맞서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 친구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혜원이 슬아에게 속 시원하게 내뱉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나와 그 친구가 오버랩되며, 중학교 시절의 내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마흔이 된 나는 이제 관망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힘들었지만 결국 지나온 나의 몇몇 시기들이 있었다. 분명히 지나왔지만, 마음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는 시기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10대, 20대, 그리고 30대까지 사람들과의 갈등 없이 무난하게 지나온 것은 아니었다. 혜원 씨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고등학교 시절이었고, 나에게도 그랬다. 혜원에게 세정과 나연이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하루아침에 차가운 얼굴로 돌변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날벼락 같은 감정을 마주해야 했고, 묵직하고 답답한 마음을 짊어진 채 힘겹게 먼저 다가갔다.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소중하고 그리웠기에, 내가 혹시 너에게 실수한 게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눈빛은 분명했다. '만만함'이었다.
그 친구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던 것이다. 나의 외로움이.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나는, 자신의 나쁜 기분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해도 되는 사람.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는 사람. 그 친구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상처를 하나씩 얻으며 살아온 이유는, 이제는 단단하게 살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었다.
초등학교 시기까지의 나는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도 높은 아이였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결혼할 때까지, 나는 늘 나도 모르게 ‘을’이 되어버리는 인간관계 속에 있었다. 그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 바탕에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던 무렵, 변해버린 가족 분위기는 나를 ‘외로움’이라는 커다란 바구니에 넣어버렸다. 가족 안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그 외로움을 나는 친구에게서 채우고 싶어 했고, 그 절실함은 어떤 친구에게는 ‘만만한 약점’으로, 또 어떤 친구에게는 ‘헐뜯을 수 있는 단점’으로, 또 다른 친구에게는 ‘귀찮음’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분명히 나를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지금도 내 곁에 머물러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지금의 나라면, 과거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외로움을 다른 누군가에게서 채우려 하지 말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해. 그래야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어.”
그러나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남편과 아이가 함께하는 든든한 내 가족이 나의 뒤를 지켜주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덕분일지도 모른다. 살아오며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좋았겠고, 이왕이면 더 행복하게 살아왔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온 그 시절의 상처들을 이제라도 혜원 씨처럼 하나씩 토닥여주고, 아물게 해주고자 한다. 이제라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여도 좋고, 혼자서도 단단한 내가 되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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