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우선순위를 재정립했을 뿐

김종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by 레토


'포기'가 아닌 '버렸다'라는 표현을 선택한 이유는

'더 원하는 삶을 위해 우선순위에 적혀있지 않은 것을 버려서'다.

‘포기’가 아닌 ‘버렸다’ 이 문구를 전날 밤 읽고 다음 날 한 시간가량 운전하며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남편과 꼬박 한 시간을 이 구절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크게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작가님 책의 이 구절을 읽고 마음에 큰 짐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나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고 누군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가장 젊고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갈래? 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늘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그 시절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보다 더 잘 열심히 살아낼 수 없다고 생각될 만큼 나에겐 뿌듯하지만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삶의 뒤로 30대가 되고 한 가정 속에서 아이의 엄마, 남편의 아내로만 살아가게 된 지금이 가끔은 울컥하고 서럽기도 했다.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하던 일을 다시 하지 말고 집에서 아이와 남편에게만 집중하라고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아직 고맙게도 일에 복귀하라고 너무 아깝다고 조언과 때로는 무서운 미래를 암시하며 충고도 해주고 있다. 내가 좋아서 이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으며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으나 나에겐 한 아이를 키우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안정감을 최우선시하며 한 가정을 가꾸고 우리 집의 재정 상태를 꼼꼼히 관리하는 일, 그리고 오직 나를 위한 공부, 나만의 책을 읽는 시간 등 나에겐 살아온 시간 중 지금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내가 가끔 울컥한 이유는 내가 하던 나의 과거 일을 ‘포기’했다고 생각해서였나보다. 그렇기에 더 잘 해내야 한다는 내가 나에게 준 중압감. 작가님의 책 속에 ‘그럴 필요 없다’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닌 지금의 내 삶의 우선순위에 아래 있는 것을 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말이 앞서는 사람은 자기 말을

삶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더욱 시끄럽게 외치는 것이다.

나도 원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나는 이렇게 할 거야’ 또는 ‘나는 이렇게 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쓰고 난 뒤 나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거나 중단할 일들이 생길 경우, 나에게 크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제일 먼저 끝을 내지 못한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고 ‘뭐 한다더니 잘 되어가고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 생기면 덜컥 죄짓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내 주변에 그런 행동들을 자주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에 대해 말없이 조금씩 실망감이 쌓여갔고 무엇이 되었든 또 말을 앞세우는 행동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대하지 않게 됨을 느꼈다. 이런 경험이 쌓여가며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어느 해부터 한 해를 시작할 때 일 년 단위의 목표를 세우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일 년 열두 달이 지나면 한꺼번에 나의 일 년 간의 노력의 흔적들과 기록을 SNS에 남겨둔다. 이때 가장 뿌듯하고 나를 가장 칭찬해 주고 토닥여 주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상쾌한 기분으로 또 다음 해의 목표를 당당하게 세우며 한해를 준비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상 계획형이라 체크리스트를 항상 달고 사는 편이다. 내가 하루를 잘 살아낸다는 것은 꼭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잘 놀고 잘 쉬는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하루를 완성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만 하고 공부만 했다고 그날이 엄청 뿌듯하므로 행복하다 볼 수 없고, 마냥 놀고 쉬기만 했다고 그날이 기분 좋게 행복하다 볼 수도 없다.


내가 하기 싫든 하고 싶어 하는 일이던 해야 할 일들 모두 개운하게 끝내고 놀고 쉬는 시간은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겠으나 그 반대의 상황엔 놀아도 쉬어도 마음에 묵직한 짐 하나를 품고 하루를 지내는 것이었다. 똑같은 시간을 쓰는 데 있어 둘은 큰 차이가 있었다. 아이에게도 꼭 지키도록 하는 원칙 하나가 바로 ‘할 일을 먼저 다 끝내고 신나게 놀자’이다.


나에게 있어 철학책은

생각이 아프기 전에 맞는 예방접종이자 아플 때 맞는 링거액과도 같다.

니체의 철학책을 좋아해서 주로 철학책을 잘 읽는 편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책은 김종원 작가님 덕분에 처음 접해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은 레벨링을 해주면서 읽는 편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너무 많은 라벨이 붙어있었다. 누군가와 나의 철학적 가치관을 함께 나누고 공감을 서로 주고받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님이 마치 내 앞에서 강연을 해주시는 기분으로 다가왔다. 점차 나이가 들고 어른의 어른이 되어가면서 남편과 이런 대화를 많이 하게 되는데 함께 공유하고 싶은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내게도 필요하지만, 아이에게도 건네고 싶은 조언들도 많이 있었다. 김종원 작가님의 ‘지성의 세계로 가는’ 첫 번째 문 괴테편, 세 번째 쇼펜하우어, 네 번째 니체 편 등 총 30권으로 구성될 계획의 <세계철학전집>은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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