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와 함께하는 일상 탐구기

범준에 물리다 - 김범준

by 레토

양자역학에서 스파이더맨까지 물리가 쉬워지는 마법같은 과학책

물리학으로 풀어보는 흥미로운 세상 이야기


과학의 눈으로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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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시청하던 EBS '취미는 과학'을 통해 김범준 교수를 처음 접했다. 이후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은 이미 'BODA' 채널을 통해 교수님을 알고 있었다. 작년에 국립부산과학관에서 직접 강연을 들을 기회까지 생기면서 각종 매체에서 교수님을 볼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 채널명과 동일한 신간 『범준에 물리다』라는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양자역학에서 스파이더맨까지 물리가 쉬워지는 마법 같은 과학책이라는 부제처럼 일상과 과학을 유쾌하게 이어 주는 책이었다. 전자레인지의 원리나 과자 봉지 톱날의 비밀 같은 일상의 소소한 과학부터 히어로 영화 속 설정과 초고층 건물의 구조적 비밀까지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분석한다. 복잡한 수식 없이도 우리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물리 법칙들을 알려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한층 넓혀주는 친절한 과학 안내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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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

전자기파는 ‘전기’, ‘자기’, ‘파동’의 서로 다른 세 개념이 모여 한 덩어리가 된 단어다. 앞에서 다룬 전기와 자기를 합해서 ‘전자기’라고 부르니, 전자기파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파동’만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파동은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주위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한 지점의 무언가(매질)의 진동이 에너지를 가지고 주위로 전달되는 현상이다.

p.82

전자레인지는 분명히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전자기기다. 그래서 건강에 민감한 사람 중 일부는 전자레인지에서 전자기파가 나온다며 스위치를 넣고 타이머에서 ‘땡’ 소리가 날 때까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는 한다.

그러나 전자레인지가 만드는 2.4Hz 정도의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 안에서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거의 차단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를 보면 사방은 금속으로 막혀 있고, 음식을 넣고 빼는 문에 난 투명 유리 창문에는 가는 철망이 있다. 이 철망은 전자기파가 도체를 잘 통과하지 못하는 특성을 이용해 전자레인지 안 전자기파가 바깥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전자레인지를 돌릴 때마다 전자기파가 무섭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p.85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자면 인체에 치명적일까?

현대 우리가 일상생활에 쓰고 있는 전자기기 중에서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기기는 스마트폰이다.

또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자면 전자기파 때문에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다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발암 확률을 높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서 이런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확실한 것은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에너지가 적다. 전자레인지의 전자기파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면 스마트폰의 전자기파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p.89

물리학자가 알려주는 전자레인지 사용 꿀팁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기 위해서는 전자기파로 물 분자의 회전 운동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딱딱한 고체 상태인 얼음의 물 분자는 2.4Hz 정도인 전자레인지의 전자기파로는 회전 운동을 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2.4Hz 정도의 전자기파를 내보내는 전자레인지로는 딱딱한 얼음에 있는 물 분자의 회전 운동을 유도하기 어려워 냉동 피자를 쉽게 데울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이 물리다

부끄럽지만 전공이 물리다. 물리학과를 졸업했기에 물리와 친하다고 해야 하는데, 살면서 어째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 선택과목으로 처음에 '화학' 반에 들어갔다. 선택지는 화학이 세 개 반, 생물도 세 개 반, 물리가 한 반 이렇게 있었다. 지금 보니 여고에 물리반이 있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주변에 친했던 친구들이 다 화학반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용감하게 화학으로 갔으나 CHO가 돌고 도는 벤젠과 에탄올 탄소화합물을 하던 도중 화학반을 혼자 뛰쳐나왔다. C2H5, C6H12O6 등 왜 저렇게 저런 개수로 서로 만나는지 알 수 없는 정체들을 무조건 외워둬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고역스러웠다.


그렇게 탈출한 화학반을 뒤로 하고 나왔지만, 외우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에게는 물리반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리가 너무 좋고 재미있었다. 외우지 않아도 이해되는 물리의 세상. 교내 경시대회도 나가 상도 타고 물리 공부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러나 거기까지. 대학에서 만난 물리의 세상은 내가 알고 있던 물리 세상의 100배, 아니 1,000배는 넘었다. 그러나 이제 고2 때처럼 탈출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이어온 물리와의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김범준 교수님의 책을 보면서 왜 나는 물리 공부를 그렇게 하면서 이런 호기심을 가져 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니 우주니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눈앞에 매일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부터 물리 범벅인데.


전자기파는 전기와 자기의 진동이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동 현상이다. 우리는 흔히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을 걱정하지만, 내부 금속망이 파동을 차단하므로 안심해도 된다. 스마트폰 또한 전자레인지보다 에너지가 훨씬 적어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한편, 전자레인지는 물 분자를 회전시켜 열을 내는데 고체인 얼음은 분자가 고정되어 회전이 어렵기에 냉동식품이 잘 데워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물리학은 일상 여기저기 없는 곳이 없었다. 피자 한 조각 데우는데도 물리적 원리를 이용한다면 더 쫄깃하게 데울 수 있는데. 이제는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라는 벽을 넘어 눈앞의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로서 물리를 바라봐도 될 것 같다.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물리를 향한 진짜 호기심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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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7

스포츠에서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중 어느 쪽이 유리한 지 알아보자.

야구에서는 작전의 유연성과 승률을 고려래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적절하게 조합하다 보니 이처럼 일반인과 다른 왼손/오른손 비율을 가진 야구팀이 만들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야구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한 것은 왼손잡이가 운동 신경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오른손잡이보다 드물기 때문이다.

p.160

운동선수의 희소성 때문에 스포츠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이유 말고, 왼손잡이가 정말로 유리한 스포츠 종목이 있다. 바로 배드민턴이다. 배드민턴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한 이유는 경기에 사용하는 셔틀콕 모양에서 나온다.

문제는 이 깃털의 방향 때문에 왼손잡이 선수가 라켓으로 셔틀콕을 치면 회전 운동이 덜 일어난다는 것이다. 왼손잡이 선수가 라켓으로 배드민턴 셔틀콕을 강하게 쳐서 움직이기 시작한 셔틀콕은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관련된 운동에너지와 셔틀콕의 회전에 관련된 회전운동에너지를 갖게 된다.

p.162

배드민턴에서 셔틀콕의 속도는 오른손잡이가 쳤을 때보다 왼손잡이가 쳤을 때 더 빠르다. 자료를 확인해 보니 실제로 왼손잡이 배드민턴 선수가 친 셔틀콕 속도가 오른손잡이 선수가 친 셔틀콕 속도보다 10% 정도나 더 빠르다고 한다.


야구는 확률이지만, 배드민턴은 물리다

아이가 어릴 때 “왼손잡이면 야구선수 시켜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우리 아이가 왼손잡이는 아니다. 그래서 그저 흘려들었던 말인데, 책에서 이 문장을 다시 마주하니 새삼 호기심이 생겼다. 야구에 문외한인 나를 대신해 남편은 이미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듯했지만 굳이 묻지 않으니 설명해 줄 기회도 없었던 모양이다.


책을 통해 확인한 야구의 유리함은 결국 희소성이 만든 확률의 문제였다. 하지만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었다. 왼손잡이가 물리 법칙에 따라 실질적으로 유리한 종목은 사실 배드민턴이라는 점이다. 셔틀콕 깃털 방향 때문에 발생하는 회전 운동과 병진운동의 상호작용, 그리고 에너지가 더해지거나 상쇄되는 방향성. 굳이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깔끔하게 이해되는 이런 부분이 바로 내가 물리를 좋아했던 이유다. 복잡한 수식 이전에 존재하는 이 명쾌한 이해의 즐거움이야말로 물리가 가진 진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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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8

기억에 남는 영화의 옥에 티를 더 소개해 보자. 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는 살기 어려워진 지구를 떠나 머나먼 외계 행성으로 이주 계획을 세운다. 두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수정란을 우주선에 싣고 외계로 가는 것이다. 생물학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 방법은 문제가 많다. 수정란만 외계 행성으로 보내 인류가 다시 생존을 계속 이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엄청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주변의 밀러 행성 장면이 등장한다. 밀러 행성에 착륙한 우주선이 잠시 뒤 탈출하는 장면이 있다. 밀러 행성에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해서 모선에 돌아온 동료의 몇 시간이 우주선에서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몇십 년의 시간에 해당한다는 것, 즉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효과가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내가 처음 이 장면을 보았을 때는 엄청난 시간 지연 효과가 밀러 행성의 큰 중력 때문으로 오해해서 영화의 오류라고 믿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큰 표면 중력을 가진 밀러 행성에서 작은 비행선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참에 영화를 찬찬히 보니, 밀러 행성의 표면 중력은 지구보다 조금 큰 정도라는 정보가 이미 영화에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시간 지연 효과의 근원은 밀러 행성 자체의 중력이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블랙홀 가르강튀아 때문이어야 한다. 즉, 가르강튀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아주 가까이에서 밀러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면 영화의 시간 지연 효과는 원칙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력의 소중함과 우주의 거대한 무심함

영화 <인터스텔라>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출산을 앞두고 만삭의 몸으로 남편과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그날 이후 다시 영화관을 찾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으니, 내게 이 영화는 한 시절의 경계선과도 같다. 개봉 당시 물리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과학적 논쟁이 오갔지만, 블랙홀과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팽창을 상상 너머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했다.


특히 '가르강튀아'의 압도적인 비주얼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킵 손의 이론적 계산을 바탕으로 실제 중력 렌즈 효과를 시뮬레이션하여 구현했다는 사실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집요한 디테일에 감탄하게 했다. 당시 워너브러더스 본사에서도 한국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을 보고 "한국인들은 다 물리학자인가?"라며 놀라워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그것이 놀란 감독의 팬덤 덕분인지, 혹은 우리 국민성 깊은 곳에 숨겨진 과학에 대한 열망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최근 김상욱 교수의 강연에서 아이가 교수님께 "인류의 화성 이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며 영화 《그래비티》와 《콘택트》를 언급하셨고 그 후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집에서 영화《그래비티》를 감상했다. 지구를 아주 조금만 벗어나도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중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우주는 거대하고 무심했으며, 그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끝없는 상상을 펼쳐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혹적인 공간이다. 앞으로도 이 무심한 거대함을 탐구하는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작고 소중한 존재 이유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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