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투성이 지구에서 나만의 패각 찾기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 신이인

by 레토

문학동네 시인선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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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는 평범한 일상 아래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건드리고 있다. 시인은 사회의 기준 밖에 있는 이들을 외계인의 시선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에게 시 쓰기란 스스로에게 구멍을 내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구멍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완벽하고 무해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는 대신 자신의 못나고 못된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나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노력한다. 낙원에서 추방된 감각을 담아낸 이 시집은 우리를 낯선 해방감으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외계인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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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2

벗어나기

주워지는 법을 알고 있는

모양과 무늬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을 주우려는

빛과 손

그리고

딱딱한 소라게가

껍데기 없이도 딱딱한 소라게가

오로지 원할 뿐인 패각을 입고

어둠만을 밟으러 다니는 해안

당신이 모른다면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당신 마음을 알지 못하고

늦게까지 서성인다면

부서진 술병과 악기 파편

떨어진 어린애 신발이

미세하게 움직이며

헤이

이것이 나의 마음이었다네

내가 고를 수 있는

나의 집이었다네

잠시나마 반짝이는 것을 볼 수도 있었겠으나

당신이 옳고 깨끗하다면

내가 아니기에 내가 좋아할 지경이라면

푸른 플라스틱 통과 집게를 가져와

근사한 당신 자신만의 경관에서 헛것으로 흔들렸을 뿐인

쓰레기들을 골라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두렵고 화나고 슬프게

잠겨 있었다

(아무도 주워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며)


버려진 것들의 유일한 거처

언젠가 본 영상 속 소라게 한 마리가 떠올랐다. 고동 껍데기 대신 인간이 버린 푸른 플라스틱 조각을 집으로 삼아 기어가던 위태로운 모습은 신이인의 시 「벗어나기」와 겹쳐졌다. 누군가에게는 치워야 할 쓰레기에 불과할지라도 소라게에게 그 플라스틱은 연약한 제 몸을 지켜줄 유일한 패각이자 절실한 생존의 집인 듯 했다.

시 속 화자 역시 소라게처럼 어둠이 깔린 해안을 서성인다. 그가 주워 든 부서진 술병이나 악기 파편, 떨어진 어린애 신발은 세상의 눈에는 볼품없는 오물이지만 화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이자 집이 되었다. 갈등은 스스로 옳고 깨끗하다고 믿을 때 시작되지 않을까? 자신의 완벽한 경관을 위해 그 파편들을 쓰레기라 부르며 골라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장 진실한 마음이 타인에 의해 지워져야 할 쓰레기로 규정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요동친다. 플라스틱 조각을 집으로 삼은 소라게처럼 우리 또한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낡고 뒤틀린 무언가를 다들 하나씩 필사적으로 움켜쥐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부서진 조각일지라도, 그것은 누군가 인생을 걸고 고른 단 하나의 세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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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외계인의 시

이상한 말을 많이 했는데 왜 함께 있어주었나

혼자 남게 되자 나는 무릎을 안고

소리 내어 물어보았다.

누구라도 있을 때는 부끄러워 묻지 못했다

이 질문이 헛되지 않으려면 나라도 대답해야 하나

여기 혼잣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간이입니다

그렇기에 아무것에나 아무 말을 막 갖다붙인다 합니다

친구나

애인이라고 불리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파프리카는 어색한 여름의 이름

커튼 주름은

매력 없고 친숙한 여상의 여인

너는 자신의 비밀번호가 지구에서 잊히길 바라는

책 모형의 금고

옛날에

가짜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어요

글이라고는 한 줄고 적히지 않은 얄팍한 속임수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 장 두 장……

글씨가 나타나는 그것은 평생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넉넉한 침구였지요

거기에 싸여 잠들고 울고 해저로 가라앉던 날들이 두터워

질수록 얼마나 안락했는지 모릅니다

바다거북, 영원하고 튼튼한 이해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미잘,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봉쇄된 채 남았습니다만

기억하고

기억을 기억하고

기억을 기억한 기억을 기억하고

기억이 견고해져서 책 없이도 책을 읽고 사람 없이도 내답을 듣는 날

수천 개의 이름으로 난 기억을 부릅니다

혼자 아는 의미를 모아 벽돌을 만들고 방을 짓고

날 넣고 문을 닫아놓았으니

거긴 알맞은 일인실이었으나

나는 매년 기다렸다고 중얼거렸어요

스르륵 뭉뚱그려지는 마음에 압정처럼 초를 꽂아 버티면서

하나 둘 셋……

나는 매년

환해가는 케이크

많고 긴 초가 비추는 것은 이렇게까지나 내 것들뿐

나 문드러졌어

보여주고 싶다……


나만의 비밀 금고, 그 속에 숨겨둔 진짜 마음

누구나 남들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가짜 책’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겉모습은 평범한 책이지만 속은 텅 비어 비밀을 숨겨두는 금고 같은 것. 신이인 시인의 「외계인의 시」는 그런 가짜 책 속에 자신만의 이상한 말과 기억을 쌓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남들이 보기엔 글자 한 줄 없는 가짜일 뿐이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울고 잠들며 자신만의 위로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가짜 책’이 있다. 지금은 없을지 모르나 살면서 한 번쯤은 만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엔 쓸모없는 물건이나 낙서 가득한 연습장, 혹은 나만 아는 비밀 폴더 같은 것들. 그 안에 남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엉뚱한 생각들을 쌓여 두는 곳. 나만의 의미를 모아 만든 그 방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일인실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방에 혼자 오래 머물다 보면 문득 외로워진다.


이 구절을 읽으며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누군가 내 망가진 마음을 알아채 주길 간절히 바랐던 기억. 외계인처럼 이상한 말을 내뱉는 것은 어쩌면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는, 나의 이 솔직하고 엉망진창인 모습까지 이해해 달라는 서툰 신호일지도 모른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진짜 ‘나’를 용기 내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오늘따라 따뜻하고도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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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스프링

너의 두 발에 집중해

바닥을 느껴

그다음

바닥을 밀어내

너와 긴밀하게 붙어 있는 지금 바로

이것을

이 바닥을 온몸으로 거부하면서 나는 튀어올랐다

잠깐이나마

바닥에 속하지 않을 수 있게

열기구처럼‘공중에

펼친 나

바닥은 다시금 우악스럽게 잡아당긴다

나는 조금 구겨졌다가

생각한다

이것이 나를 퍽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춤추고 뛰고 쓰러진다면 즐겁지

멍이 들면

자랑이지

지난봄엔 멍이 많이 든 것 같은 무늬의 개구리를 주웠다

운이 좋았지

이 도시에서 개구리를 만나다니

이래 봬도 독개구리라는 것을 한 눈에 안다

마음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만진다

손안에서

개구리가 나를 걷어차고

나는 그의 작고 유해한 발바닥을 느낀다

사랑하는 동안

잡고 있었다

눈이 퉁퉁 붓더라도

부딪치고 기를 쓰고 아파하면서

점프

이윽고

광활한

바닥이 나를 부서져라 안을 때

나는 보게 되어 있었다

잔디가 색을 바꾸는구나

연한 갈색

노르스름하고

푸르스름한 색

얼룩덜룩

멍투성이 지구를 잠시 이해하려던 시절이 지나갔다


멍투성이 무릎이 말해주는 것

이 시를 읽으면 바닥을 밀어내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스프링이 상상된다. 이 시는 바닥에 속하기 싫어 필사적으로 점프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우리는 공부나 인간관계처럼 무거운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바닥은 중력처럼 우리를 다시 잡아당긴다. 시인은 이 고통스러운 힘을 바닥이 나를 좋아하는 구나라고 엉뚱하게 생각한다. 넘어지고 구겨지는 것을 실패가 아닌 바닥과 나누는 뜨거운 포옹으로 여긴 것이다.


시인은 독개구리를 만지며 멍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고 유해한 발바닥을 느끼며 사랑을 확인한다. 아플 줄 알면서도 무언가를 꽉 쥐고 버티는 것, 눈이 퉁퉁 붓도록 부딪히는 것. 산다는 것은 그런 아픔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시를 읽으며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바닥은 딱딱했고 넘어질 때마다 무릎에는 검푸른 멍이 들었다. 그때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과 시퍼렇게 멍든 무릎 위 또 상처가 나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하지만 사실 그 딱딱한 바닥은 아이가 넘어졌을 때 아이를 받아준 유일한 곳이었다. 시인의 말처럼 바닥이 안아주었기에 다시 일어서서 점프할 수 있었다.


세상은 때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멍을 남긴다. 하지만 그 얼룩덜룩한 흔적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뜨겁게 사랑하고 노력했다는 훈장이다. 상처를 보며 속상해하기보다 ‘오늘도 바닥을 밀어내며 열심히 점프했구나’라고 다독여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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