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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준호 Jul 09. 2021

멀어지는 고리처럼 우린 점점 죽어가

하재연, "우주적인안녕"

하재연, "우주적인안녕"

행성의 고리


나의 삶 이전에 결정된
내 인생의 장면들


묵음으로 지나가는
느린 유리 속
뒷모습
비어 있는 이름 몇 개


너의 정면을
보지 못하는 나의 흰 눈동자


우리는 어디선가 이어져 있겠지
찌그러진 타원의 바깥들에 매달려
계속해서 바깥이 되어가고 있겠지


검은 우주처럼


끝없이 돌면서 팽창하면서


-


탄생의 파노라마


"죽음에만 파노라마가 있더냐?

 탄생에도 파노라마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내 삶이 시작되기 이전에 결정된 것들.

그리고 그것이 내 눈앞에 흘러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어?

태어나는 순간,

압도적으로 짜릿한 순간,

정면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무언가 느껴지는 순간.

 깨달음과 동시에 태어날 줄 누가 알겠어?

다만, 그 순간 최초의 선물이자 죄악인 기억 속에

얽매일 뿐 인 거지."


하재연 시인이 팽창하는 우주에 대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한다.


내 삶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정말 어느 한순간에 그런 정보들이

내 뇌 속에 저장됐었다면?

나는 망각을 신의 선물로 생각했을 것 같다.

나의 삶 이전에 결정된 내 인생의 장면들,

소리 없이 지나가는 유리 속 뒷모습.

꾸물거리는 태반 속에서

비어 있는 이름 몇 개 중 하나가 될 운명.

태어남과 동시에 죽어갈 것이고 사회 속에
서 정해진 법칙대로 살아갈 운명.


 태어나기 전을 생각해보면, 정말 몇 가지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만 같다.

하재연 시인도 그걸 알고 있었던 걸까?


위와 같은 생각들은 아쉽게도 사연에서

조금은 반전된다.

우리는 어디선가 이어져 있겠지.

타원형의 바깥에서 더 바깥이 되어가겠지.

팽창하는 우주처럼, 차가운 토성의 고리처럼.

손과 손에 붉은 실로 연을 맺어준다던

월하노인의 존재를 기대하는 것일까,

어딘가 이어졌지만 그런데도 멀어지는 나와 당신. 이렇게 보면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 장면과

비어 있는 이름 몇 개, 묵음으로 지나가는 유리 속 뒷모습은 당신과 나의 인연 그리고 당신의

스쳐 감이라 생각할 수 있다.

팽창하는 우주 속처럼 그사이가 속절없이 멀어지고 흘러가지만, 언젠간 연이 닿겠지.

체념처럼 다가오는 문체, 토성의 고리처럼 싸늘하다.


 더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 두 주제를 모두 담고 있는 우주적인 시인지도 모른다.

1부의 과학적인 접근은 끝나지 않고

4부의 끝에서 다시 반짝인다.

하재연 시인의 세계는 얼음처럼
차갑고 심해 속의 싸늘함을 닮았다.

동시에 원초적인 슬픔과 그리움을 담아낸다.

감성적인 시니컬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우주로 넓힌 가장 바깥쪽의 세계관에서
태초의 태어남과 운명,

나아가 미시적인 세포들의 시냅스 작용 과정을 짜릿하게 연출한다.

그래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고

시어들을 사랑하게 된다.

시집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장식하는 ‘그것’과 ‘행성의 고리’를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섞여 있다.

 
미연의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피날레.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운명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탄생이 짜릿한 만큼

죽음의 안녕도 빛나면 좋겠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은 이는 언젠가 망각된다. 역설적인 탄생의 파노라마가 다시 한번

죽음의 침묵을 일깨워준다.

그 속에 인연의 흔적을 담아낸 점이 흥미롭게 읽혔다.

 
"멀어지는 고리처럼 우린 점점 죽어가.

언젠가 만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만나지 못할 인연들도 있겠지.

수천 번의 글귀보다 단 한 번의 떨림이 뇌리에 박히겠지만,

만나지 못한 인연들도 분명히 있겠지.


너를 정면으로 보지 못했음에 억겁의 피눈물을 토해내. 얼굴이라도 마주쳤다면 느꼈을까?

너를 만날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을까?

 차라리 망각이 작용하면 좋겠어.

레테의 강물을 온몸에 부어버리고 싶어.

 그렇지만 이 순간에도 바깥이 되어버리고 마는

우리가 참 야속하다.

동시에 서로의 사회에서 우주와 과학과 운명과 사회학과 법칙들을 익히고 응용하며 살아가는 우리.


 너의 삶은 어때?

너를 내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

벌써 네 세계로 떠나버린 건 아닐까?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라도 어둠 속의 빛을 보내주면 좋으련만.

 네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나.
그런 너에게 보내는 내 마지막.

우주적인 안녕.

우주적인 안녕!

 우주적인 안녕……."


행성의 고리에서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본 하재연이 이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


그것


그것은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느려지곤 했다.

어떤 단 하나의 생각을 떠올려야 한다는 듯이.


그의 주인은 화를 내며 기다리다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너무 오래되고 쓸모없구나.

너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데.

너의 시간은 너에게 속한 것이 아닌데.


어떤 생각은 굵게 꼬인 나무뿌리처럼
그것의 몸통을 감았다.

자라난 생각의 힘 때문에
그것은 꺼져버릴 때가 많았다.



까만 밤
우주에서 온 밤
다시 켜질 수 없을 것 같은


속에서 드디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고
밤은 끝이 났다.


한 사람이 창을 닫았고
그것은 끝의 다음에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


초미의 관심사


시를 읽으면 ‘그것’에 대한 정체가 너무나 궁금해진다. 몇 번 되새겨도 그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내가 그녀의 세계로 들어가 감춰둔 그녀의

감성인 그것을 건드려 보아야 한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같은 ‘그것’일까,

형용할 수조차 없는 무지 속의 ‘그것’ 일까.

말 그대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 안의 그것이 느려진다.

어떤 생각이 들자 그것이 느려졌다고 한다.

단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라고 꾸짖듯이.

그러자 그의 주인인 즉, 내 생각의

주인인 ‘나’는 화를 낸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자조적인 ‘한심’ 같다.

너는 오래됐다.

너에게 생각을 쏟을 에너지가 없다.

너의 시간은 또한 어차피 내 것이다.

삼 연은 하소연처럼 들린다.

느려지는 그것에게 소리치는 것 같다.

이렇게만 보면 나는 그것에 얽매어

굉장히 나약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자 시는 다음 연에서 반전된다.

어떤 생각은 그것을 이기고 심지어

그것을 꺼뜨려 버린다.

그것의 몸통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찾아온 밤.

도저히 빛이 다시 올 것이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밤이 찾아온다.


1부의 하재연 시인은 과학적인 요소들을 시 속에 잘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화성의 공전이든, 빛에 관한 연구든 말이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안녕을 외치는 그녀의 감수성을 돋보이듯 시 속에 드러난 과학적인 산물들.

멀어지는 당신 사이에 불완전한 슬픔의 증식. 플라스마- 그와 나의 소중한 추억이 반짝하고 지나가거나, (적기)

좋은 배열을 이루고 번쩍하고 새 생명을 얻고픈, 태어나는 아이들. (원소들)

감성을 움직이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던 딱딱한

과학의 생명이 내 감성 속에 움트는 모양이 제법 신선하게 다가온다. 과학이라는 껍질 아래
죽음과 안녕, 태어남과 슬픔의 영혼을 담아낸 순간의 교차. 그리고 생각들이 엉켜 그것을
움직이지 못하고 동시에 어둠에서

빛이 켜진 것처럼 그것이 움직일 때.

전자의 교차와 후자의 그것이 가진

역동적임은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하재연 시인이 도저히 머리를 굴려도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 때 ‘그것’이라는 시가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한 내 부정적인 아이러니는

창작의 숙명처럼 다가온다.

내 것임에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혹여나 그것이 튀어나와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태세(態勢).

그래서 도저히 빛을 볼 수 없던 까만 밤에서 생각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잠시나마 응원의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한 사람이 창을 닫았고, 그것은 끝의

다음에서 다시 깜빡인다.

한 사람이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혹은

이제야 닫을 용기가 나서.

그래서 그것의 입구를 닫으면,

또다시 창작의 시작점에서 깜빡인다.

때론 형용할 수조차 없는 공포의 산물이기도 하고, 무지라는 사막 속에서 겨우 찾아내야 하는

진주알 같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영원히 그것을 찾아야 한다.

화를 내고, 기다렸다가, 때론 한심하기도 한 내가 살아가려면 영원히 그것을 찾아야 한다.

너무 오래되고 쓸모없을 것이라 느껴도 찾아야 한다. 자꾸만 얄미운 감정이 드는 것은 그것은 생각조차

할 필요 없이 시간도 흐르지 않은 채 고고하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수많은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것을 끄집어낸 하재연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창작을

완성해냈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접근을 필두로 감성을 요구했지만,

다시 과학적인 분석이 튀어나오는 기현상.

이 시의 변주가 역동적이다.

익숙한 기출문제가 변형된 것처럼 신선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나의 밤 속에서 그것이 떠오르기를 함께

응원해주는 듯하다.
느려졌던 그것이 아뿔싸,

이제 나무뿌리에 감기고 말았다.

그녀는 창을 닫은 지 오래됐을 텐데

나는 이제야 뿌리에 감겼구나.

 이제 곧 밤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눈앞이 벌써 캄캄하다.

그것의 정체는 이젠 알겠지만,

어떻게 끄집어내야 하는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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