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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Mar 26. 2018

왜 판타지와 사극은 밀월 관계가 되었는가

역사 컨설팅

2018년 10월, 역사컨설팅이 책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쓰겠습니다!


http://narsass.tistory.com/477


신윤복은 남자란다


꽤 오래전에 어린 조카로부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신윤복이 여자예요?> 


주변 어른들은 다들 어이없어했지만 비교적 젊은 층들은 왜 그런 질문이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방영되던 인기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문근영 분)이 여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문근영씨께는 죄송하지만 이렇게 보면 진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영씨 죄송합니다. [출처 : 바람의 화원]

90년대 말까지 만들어진 사극에 익숙한 사람에게 바람의 화원 같은 사극은 상당히 적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허준, 대장금 열풍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기존의 사극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실록/ 기록을 성실히 반영해서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태조-태종대를 그린 <용의 눈물 : 1996>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2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통 사극의 교본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성실하게 반영한 것은 둘째치고 각종 사료/ 연구자료를 철저하게 뒤져서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생활양식의 변화까지 담아낸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정통적인 사극은 과거를 현재에 완성된 형태로 가져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런 트렌드는 대왕세종, 여인천하, 태조 왕건 등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시청자들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활약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90년대까지 주류는 정통 사극이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출처 : 태양의 후예]


사극 창조의 시대


이런 분위기가 2000년도에 들어서 바뀌기 시작했다. 소위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주관이 도입된 퓨전 사극이라는 것들이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극(史劇)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런 시도는 허준에서 보였다. 다만 이때는 원전이 실록이라기보다는 고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 (1990)'이 원전이라서 퓨전이 큰 이슈는 안됐다.


이슈가 된 것은 2003년에 방영된 '대장금'이었다. 중종실록에 단 11번 언급된 장금이라는 여성, 실록 기록을 다 끌어모아도 블로그 글 한편도 못 쓸 것 같은 분량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그때 당시의 사회,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새로 구축하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가상의 드라마를 썼다. 


사극의 대부인 이병훈 PD의 도박은 대 성공, 이후 사극들은 퓨전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사극의 퓨전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실록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조직과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고, '광해 ~ 왕이 된 남자'의 광해군이나 '명성왕후',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명성황후는 아예 인물상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때로는 아예 사극을 가장한 러브스토리가 된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를 널리 알린 '해를 품은 달', 박보검 김유정이라는 배우의 환상적인 호흡이 인상적인 '구르미 그린 달빛'은 역사와 과거에서 필요한 소재만을 차용해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러브스토리이다.

확실히 재미있지만 사극으로써는 절대 추천 못할 타입의 작품 [출처 : 구르미 그린 달빛]


왜 퓨전 사극이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저자는 역사 마니아고 불멸의 이순신 같은 정통 사극을 좋아하지만 퓨전 사극을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물론 아이들이 잘못 보면 정사 이전에 퓨전에 익숙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잘 보여주지 마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왜 퓨전 사극이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주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호기심이 넘치는 저자는 광고 관련 서적, 상품 마케팅 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데 여기서 관련 자료를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상품에서 가장 소비력이 높은 소비자층은 10대 후반 ~ 20대 후반의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만혼으로 인해 30대 중반까지 늘어난 상황이지만 어쨌든 주 소비층은 여성이다. 광고를 집행할 때도 이 연령대의 구매력이 제일 높다고 판단하며 콘텐츠를 만들 때는 이 연령대의 여성이 피할 요소는 철저하게 덜어내고 만든다. 이 연령대의 여성은 


트렌드를 잘 캐치하고 이를 반영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중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퓨전 사극들이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며 강력한 여성 팬덤을 형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작사 입장에선 방송사 입장에선 부가판권으로 사업을 하기도 편하다. 


게다가 또 다른 메리트가 숨겨져 있다. 광고를 집행하는 기업도 퓨전 사극을 선호한다. 일부 상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품은 10~30대 여성이 구매한다. 농담 같은가? 실제로 닌텐도 DS같이 여성들에겐 거리가 먼 상품인 게임기조차 59%는 여성이 구매한다. 2004년 처음 출시된 후 1년 뒤의 통계에서 10~20대 여성 구매율은 무려 27%에 달한다. 


게임기조차 이런데 여성 고객을 제대로 공략한 상품의 판매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광고주들은 퓨전 사극에 광고를 하게 되고 제작사/ 방송사는 자연스럽게 퓨전 사극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퓨전 사극 전성시대가 나온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하지만 퓨전 사극의 흥행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퓨전 사극은 역사적 기본 소양이 높지 않아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문화적 컨센서스가 현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것이 아동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정확한 역사관 형성에 방해를 할 수도 있다.


것보다 중요한 것은 퓨전 사극이 워낙 인기를 끄니까 품질 미달의 사극이 난립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 옥석이 나올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너무 난립하면 시장 자체가 죽지 않겠는가.


그러자 반전의 움직임이 일었다. 이는 콘텐츠 업계의 중요한 특징인데


콘텐츠 업계의 트렌드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과거의 유행은 다시 돌고 돈다


콘텐츠에는 복고 바람이 분다. 예전에는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지만 1976년에 개봉한 '킹콩'은 1930년에 만들어진 작품의 리메이크로 어렸을 때 킹콩을 보고 자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의 고지라는 1954년에 첫 영화가 만들어지더니 2016년까지 리메이크가 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의 순환은 사극에서도 이어졌다. 대한민국에 뜬금없는 정도전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정도전 (2014)'이 그 예다. 당시 퓨전 사극만이 뜬다는 편견을 깨고 최대 시청률 19.8%라는 기염을 토했다. 


샤방샤방한 미청년은 고사하고 아저씨 배우들만 나오는 남성미 쫙 넘치는 드라마의 시청률 치고는 거의 경이적인 수치다. 여성들이 별로 안 좋아하고 사극마니아나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전투 장면이라던가 암투 장면에 힘을 잔뜩 실었는데 이 시도에 남성 시청자들이 호응해 준 것이다.

 

정통 사극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정도전 [출처 : 정도전]

정도전은 그동안 남성을 위한 드라마에 굶주려 있던 남성들과 정통 사극에 굶주려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비록 주연배우가 물의를 일으켜 다시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정통사극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마치며


결국 판타지와 사극이 손을 잡은 이유는, 퓨전 사극이 태어난 이유는 소비자의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작품이 뜰지는 모르겠다. 


'최종병기 활'같이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창작을 끼워 넣는 방향도 있겠고 '해를 품은 달'처럼 시대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가 나올 수도 있겠고 혹은 완전한 IF역사, 만약 이랬다면? 하는 작품이 태어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땐 주의해야겠지만 그래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호기심을 끌어낸다는 점에선 퓨전 사극도 환영한다. 물론 정통 사극도 많이 많이 만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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