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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Apr 03. 2018

그 도깨비가 도깨비가 아니다

역사 컨설팅

* 역사 컨설팅이 추가 원고를 포함하여 2018년 10월에 출간 예정입니다. 마무리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타지에서 만난 익숙한 도깨비


2006년, 난생처음으로 일본 도쿄에 간 저자는 여유시간을 빌어 일본의 헌책 메카인 진보쵸(神保町)의 칸다 고서가로 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 간 일본에서 대체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드는 이 여행에서 저자는 머리를 타이슨에게 얻어맞는 것 같은 강력한 충격을 느꼈다.


저자가 초등학교 때 읽었던 동화책이 있었다. 도깨비가 쌍둥이 소녀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내용이었는데 그 동화책에서 봤던 삽화가 일본의 동화책에 실려있는 것이었다. 


붉은 피부에, 철퇴를 손에 들고 눈은 부라리부라리한 뿔 달린 도깨비. 문제는 당시 저자가 있던 땅은 일본이고 읽은 동화는 당연히 한국에서 읽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일어 그 책의 일러스트를 폰카로 찍은 후 귀국 후에 대형서점에 가서 어린이 동화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랍게도 (다 큰 어른이 웬 동화책을?, 그 책을 읽은 게 거의 20여 년 전이 었을 텐데?) 그 책과 같은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유심히 살펴본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판의 일러스트에는 일본판에 있던 글자를 지운 흔적이 남아있었고, 표지에는 출판사명을 화이트칠로 지운 흔적이 보였다. 


그렇다. 그 책은 일본 동화책의 삽화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저자가 어렸을 때 본 도깨비 그림은 일본의 도깨비였다. 그런데 읽은 책의 배경에는 기와집도 나오고 한복도 나오고 색동옷도 나온다. 즉 한국이었다. 뭐가 이상하다 싶어 고전 중의 고전 도깨비감투도 찾아봤다. 그런데 거기 도깨비도 붉은 피부에 뿔 달린 녀석이었다.

우리가 아는 도깨비는 사실 일본의 귀신이었던 것일까?


그러니까 바로 이런 도깨비 [출처 : 국가정보기록원]


도깨비 신상조회


요즘에는 저작권의 칼바람이 매서우니 대놓고는 못하지만 예전에는 일본의 책을 무단으로 출판하거나, 일본의 영문소설 번역본을 들여와서 일본어 번역이 가능한 사람에게 맡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본 책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무단 전재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저자에게 일본의 도깨비를 몰래몰래 들여다가 쓰는 바람에 한국인들이 일본 도깨비에 익숙해졌다는 시나리오는 꽤 설득력이 있다.


이렇게 출신이 불분명한 도깨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최근에 유행하는 종교의 교주인 '구글 신'님에게 빌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출처 : 구글검색]

구글 검색 결과를 보면 아시겠지만, 역시 뿔이 달리고 부릅뜬 눈에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손에는 철퇴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아는 도깨비가 아니다



일본의 도깨비, 한국의 도깨비


최근에 일본어 교과서로 배우는 전래동화라는 책들이 많이 나온다. 한 페이지에는 일본 교과서 원문이, 다른 페이지에는 한글 해석과 해설이 실린 책인데 이 책들 가만히 보면 희한하다. 우리가 잘 아는 '혹부리 영감님'이라던가 '은혜 갚은 학' 같은 것이 버젓이 실려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 동화가 너무 좋아서 일본이 가져다 쓴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한 동화란 말인가? 것도 아니면 몰래 베낀 걸까?


이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식민교육의 일환이라는 설이다. 지식채널 e에서는 일본이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內鮮一體), 즉  식민지 교육을 할 때 이런 동화들을 교과서에 실었다고 한다. 문화적인 동질성을 갖추기 위해, 일본인의 지배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원래 식민지 융화정책은 열강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고, 우리나라도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의 지시로 1910년도부터 '황국신민화' 정책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런 노선에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다. 계기는 1937년에 조선 총독으로 미나미 지로(南 次郎)가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할 것을 지시한다.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므로 조선인도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사실 말 그대로였다면 덜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동일한 대우를 해준다면 의무도 같이 수행해야 하니까. 하지만 미나미가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한 이유는 이런 중용 정책 때문이 아니었다. 오로지 수탈하기 위한 핑계였다.

즉 일본을 위해 조선이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미나미는 의무만을 내세울 뿐 권리는 주지 않았다. 참정권이라던가 일본인이 누리는 권리는 일체 배재당했고 조선인은 줄기차게 수탈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창씨개명이라던가 징병 같은 것만 선물 받았다. 


마찬가지로 교육도 민족말살정책을 위해 개편되었다(그래서 지금도 황국 식민교육에 물든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학자들은 우리는 한 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좋은 사례를 연구했고 그 사례 중의 하나가 도깨비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도깨비를 일본의 오니(鬼)로 바꿔 치는 교육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 크고, 피부가 붉고, 철퇴로 사람 두들겨 패는' 도깨비를 우리 도깨비로 여기게 되었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2018년에 만들어지는 아동 콘텐츠에 '일본의 도깨비 = 오니'가 나오게 된 것이다.



도깨비의 왜곡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한국의 도깨비와 일본의 오니와의 정확한 차이를 잘 모른다. 아니 모습도 잘 모른다. 여기에는 도깨비의 모습 자체가 정형화되지 않은 탓도 크다. 

일본 게임 데빌서머너 소울해커즈의 도깨비 [출처 : 아틀라스]

1995년 일본에서 '진 여신전생 데빌 서머너'라는 게임에서 도깨비(トケビ)라는 요괴가 나온 적이 있다. 생긴 게 강시에 도포자락 입혀놓은 것 같아서 일본 측에 문의 메일을 보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국제적으로 이메일을 보낼 방법 자체가 없어서 삭히다가 2005년, 일본에 여행 갔을 때 디자이너의 일러스트북을 구매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도깨비는 '불을 든 남자'라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요괴를 도깨비라고 통칭한다. (중략) 중국의 강시같이 하얀 얼굴을 했다고 하기에 한국 복식의 강시로 디자인했으며, 다리는 하나지만 일러스트에선 두 개로 그렸다.


출처를 보면 아마 저승사자에서 따온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깨비는 정형화된 묘사가 없다. 세종대에 발간된 ‘석보상절(釋譜詳節)'에 의하면 도깨비는 '돗'과 '아비'의 합성어로서, 돗은 불과 씨라는 뜻으로서 풍요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비'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성인 남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여기서 나온 도깨비는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아둔해서 인간에게 잘 속아 넘어간다. 다리는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것만 도깨비로 부르는 게 아니다. 위의 게임을 디자인한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가네코 가즈마(金子一馬)가 저승사자를 도깨비로 생각했듯 도깨비는 꽤 범위가 넓다.



도깨비의 모습

원래 도깨비는 풍요를 상징하는 반신적인 존재였다. 신으로 모셨다고 봐도 좋다. '연귀 취부'같이 도깨비의 모습이 어떻다고 묘사된 경우가 있으나 그 외에는 희끄무리한 도깨비라던가 털이 난 도깨비라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묘사할 뿐이다. 마치 너네들은 다 알고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 수준이다. 


그 기원 격에 해당하는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비형랑'을 들 수 있다.


비형랑은 신라 25대 진지왕의 혼이 도화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로 남자는 죽어도 똑같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사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진지왕은 너무 여자를 밝혀서 폐위된 왕이었으니까.


이 비형랑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능력이 범상치 않았다. 


비형랑은 도깨비를 시켜서 인간에게 좋은 일을 여러 가지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공포도 한 몸에 샀다. 말을 안 듣고 도망친 도깨비는 찾아서 죽여버리기도 한 것이다.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그는 도깨비라기보다는 도깨비를 부리는 반신(半神)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게임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다 [출처 : 확산성 밀리언아서]

하지만 이후 도깨비 숭배는 점점 퇴색하였고 이후 잡다한 요괴를 '오도깨비'라고 싸잡아 부른다. 그래서 이때의 도깨비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온갖 해괴한 개념'을 통칭한 것으로 보면 된다. 심지어 1970~1980년대 경제발전기에 들어온 깜짝 놀랄만한 신문물도 사람들에겐 도깨비였다. 


즉 우리의 도깨비는 대상이 아닌 개념이라고 봐도 좋겠다


도깨비, 오니


굳이 정리하자면 요괴인 도깨비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신(神)이며 개념적으로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무언가 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일본의 '오니'가 끼어들 틈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살짝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 혹부리 영감은 일본의 전래동화 こぶとりお爺さん 이 원전이다. 여기서 도깨비는 영감에게 노래 주머니인 혹을 하나 더 붙여버린다. 나름대로 교훈적인 이야기지만 제대로 따져보면 영감은 피해자다.


도깨비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혹이 노래 주머니라고 했다가 당한 일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영감은 오니로 인해 장애를 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전승의 도깨비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그 유명한 전래동화이자 고전만화읜 도깨비감투를 보면 알겠지만 그들과 엮인 어떤 것도 사람을 곯려먹긴 할지언정 괴롭히는 것이 없다. 고작해야 처녀치마에 구멍을 뚫거나 뒤에서 툭 치고 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뿐이다. 


철퇴같은 무서운 건 아예 들고다니지도 않는다.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폭력성은 도깨비와 오니(鬼)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오니가 도깨비가 된 과정도 한국문화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런 일본 오니는 이제 그만 잊자, 쉽진 않겠지만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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