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저자는 2017년 말, 최상위권 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공고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학벌, 지역에 대한 것을 배제하고 실력만을 보기 위한 채용인데 그 공기업은 공고 마지막에 '학력사항에 관한 증빙서류'를 넣을 것을 명시했으며 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탈락 사유가 된다고도 명시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학교 이름을 적지 말라고 해놓고,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첨부하라고?
이게 무슨 블라인드 채용인가?
참고로 2017년 10월에 진행된 블라인드 채용 공고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문제는 이게 한 두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1월 29일,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 비리 특별점검을 한 결과 1190곳의 80%에서 4788건이 적발되었다. 아직 전수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기관도 있으며, 조사하지도 않은 기관도 있는데 이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최근에 구입한 국사(한국사) 교과서를 펼쳐서 고려사 부분을 보니 '음서'제도와 '음봉'제도가 고려와 조선조에 있었지만 조선이 멸망하면서 사라졌다고 교과서에는 적혀있다.
하지만 음서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니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아니 조선 초기에는 한명회같이 음서제로 급제하면 멸시라도 당했지, 이 음서제는 부모의 백이 좋아야 하니 흙수저 입장에선, 공정한 사회 입장에선 더 질이 나쁘다.
2013년에는 강원랜드가 95%에 달하는 493명을 백으로 취업시킨 사건이 일어나더니 이후에는 신의 직장인 은행권에서 VIP의 자녀를 쏙쏙 솔라 음서 채용시킨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런 정황은 꾸준히 경고되었다. KDI 김영철 연구위원이 쓴 ‘구직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의존도 추정(2011)’에 의하면 무려 채용의 61.5%가 인맥을 통해 채용된다고 말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 박사과정의 오성재 씨가 쓴 '한국의 소득 기회 불평등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소득은 노력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 학력에 따라 좌우된다고도 한다. 이 연구에서는 기회 불평등이 2001년에 10%에서 2014년엔 40%로 증가했다는 이야기까지 적혀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커녕, 살충제가 듬뿍 쳐진 것이 지금 사회가 아닐까?
고려, 조선조의 음서제 도야 제도로 만들어진 거라고 하지, 도덕성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공기관과 금융회사조차 습관적으로 연줄 채용을 하는 현 상황은 한국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려가 완전히 음서 때문에 망한 나라, 과거시험도 끼리끼리 해먹던 나라라면 조선은 이런 고려의 안티 체제를 선포한 탓인지 초창기에는 음서제도로 급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선 중기까지, 후기에 안동 김씨의 세도가가 권력을 틀어쥐고 왕권마저 컨트롤하는 상황이 되자, 음서는 나라의 권력을 흔들 수 있다는 상징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1894년에 일어난 갑오개혁의 시발점은 역시 같은해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다. 조병갑의 획기적인 수탈이 원인이 되어 벌어진 동학농민운동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개혁세력을 이겨낼 길이 없던 고종은 청나라의 군대, 즉 외세를 끌어들여서 자국의 민족을 제압하는 역사상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바보짓 1위를 당당히 실천했고 이를 빌미 삼아 일본군대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 본격적인 내정간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갑오개혁은 청나라, 일본 그리고 얼지 않는 항구가 갖고 싶은 러시아의 삼국간섭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갑오개혁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저자는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의 뜻을 계승한 측면이 있기에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갑오개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차별금지였다. 음서제의 근간이 되었던 '문벌'과 백성을 신분으로 차별하는 '반상 제도(班常制度)를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계승했으며 이 정신은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껏 근대사회에 들어섰는데 그렇게 힘들에 얻어낸 기회균등의 원칙을 발로 차 버린 행위는 칭찬받기 어렵다. 더 나아가면 경제활성화 악화에 기여하며 출산율에도 영향을 주는 악습이라 할 수 있다. 비중은 7%대로 작지만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비중은 2016년까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블라인드 채용에 중소기업 경영자, 인사담당자 그리고 일부 사람 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강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인데 이는 둘째치고 인사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는 사람을 통한 채용은 벗어날 수 없는 유혹이다.
우선 중소기업 입장에선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사업장 80%는 전체 평균임금 이하를 지급하고, 11.8%는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지급하는지라 중소기업에 가려는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동생, 친구를 데려다 쓴다. [통계 출처 : 국회 예산정책처(2016)]
중소기업의 입장이 아니라도 기존의 채용시스템에서 '기업의 인재상에 맞고, 해당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으며 구성원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은 보통 난제가 아니므로 가급적 인맥에 의한 채용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정말 알짜배기 포지션은 '인맥'을 통해서 1차적으로 공개되고 이렇게도 못 찾으면 헤드헌터 그래도 안되면 정식으로 공고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연줄 채용과 역량 채용이 섞여버리는 일이 많다. 분명히 어떤 포지션을 채용할 때는 역량을 먼저 봐야 하는데 사람을 잘 못 채용하면 인사담당자와 부서 담당자의 책임이 되니까 역량보다는 검증된 사람을 채용하려는 것이다.
사기업에게 공정성을 들이미는 것이 약간 이상할 수는 있으나 이는 채용시장에서 노력해온 사람들의 공정성을 해치는 길이므로 보완이 필요하다. 현직자가 안전한 대안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 채용제도의 개선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역량과 연줄은 다르다, 정말 다르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지원자의 배경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었지만 위의 공기업 사례도 그렇고 정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먼 듯하다.
우선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 블라인드 채용이 정부가 세운 기획인데 저렇게 뒤로 서류를 요구하는 일도 있으며 설령 블라인드 채용을 지키려고 해도 기존에 학교와 성적으로 사람을 뽑는 관행에 익숙하다 보니 다른 방법을 쓰기도 어렵다. 학교와 성적, 어학으로 사람에 대한 호감을 갖고 진행하던 채용에 익숙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라고 하면 당연히 난감하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바빠질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에 맞는 취지의 채용 툴을 개발하는 것, 연줄 부정채용을 막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그리고 그 인식을 갖추는 것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노력한 만큼은 보상받는 사회가 되어야 더 발전하지 않겠는가?
부모 백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뻔한 세상에서 누가 노력하겠는가?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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