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회사답게 행동합시다
1. 2018년 9월 13일, 직장인들의 뒷담화 전문 사이트인 '블라인드(Blind)'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즉 담배피우는 시간만큼 추가 근무하라는 이야기죠.
우선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담배 피우는 시간은 생산성에 확실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우선 담배를 피우면 기본 20~30분은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더욱 문제는 이렇게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업무회의가 제법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담배 안 피우는 사람도, 업무에서 왕따 안 당하려면 커피 하나 뽑아 들고 쫒아가야 합니다. 이러니 기업 입장에서 비효율적이라 생각하죠.
그런데 저 조치는 여러모로 문제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4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시간 4시간 초과 시 30분, 8시간 근무 시 1시간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렇게 흡연시간이 발생만 하면 제제를 가하고, 추가 근무시간으로 이행하는 조치는 현행 근로기준법 위반입니다. 저 8시간 근무 시 1시간은 50분 근무 시 10분 휴식이라는 원칙하에 만들어졌습니다. 저런 걸 안 만들면 실제로 쉬지도 못하게 하고 노동시키는 사업주가 있었으니까요..
개중에는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점심시간으로 1시간을 제공하니,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의 사업체는 점심시간을 아예 근로시간으로 산정하지 않습니다. 이 1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한 휴식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8시간 근로 시 줘야 하는 법정 휴식시간 1시간이 점심시간이라면 실제 근로시간은 7시간이죠? 그렇다면 회사의 근무시간은 9시부터 5시까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9시부터 6시까지 혹은 10시부터 7시까지 근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저 1시간은 8시간 근무 시 부과되는 1시간이 아닙니다.
2. 이 문제는 단순히 법적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회사가 이런 제도를 만든 이유는 아마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기 위한 조치일 텐데 당연히 이 제도엔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기존의 업무가 제조업, 그것도 직공이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라면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생산성 하락으로 직결되는 게 사실입니다. 담배 피우는 시간 동안 노동을 못하니까요.
하지만 화이트 컬러의 업무는 휴식시간과 생산성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합니다.
게임 제작은 무슨 인형 눈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일인데 보통 창의성은 뇌가 평상시와는 다른 루틴으로 일할 때 생깁니다. 그래서 꼭 담배가 생산성과는 무관한 것도 아니죠. 정말 크런치 모드 들어가면 철야가 일상인데 저럴 때는 담배나 에너지 음료가 없음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조차 없어요. 졸면서 걸어 다니는데요.
결정적으로 특성상 사업부문이 아니면 부가 아니라 실장이 관리하는 '실'로 퉁치는 회사가 많습니다. 특히 게임회사 중에는 돈이 안 되는 QA, QC, LQA, 고객 서비스 센터를 하나의 실로 만들어서 실장이 관리하게 한 곳도 있는데요, 이 규모가 무려 60~100여 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아마 이 사람들의 보고를 일일이 받으면 사실상 실장 및 중간관리자는 일 포기하라는 소리입니다.
즉 실장이나 관리자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압박하게 될 텐데, 그러면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이런 위험성이 있는데 그런 보상책이 없이, 근로기준법도 무시해가면서 연장근무를 시킨다니 당연히 직원들이 분노하지요. 하다못해 시범운영이라도 해봤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 제도는 생산성 향상은 커녕 오히려 떨어뜨리고
사기마저 꺾을 소지가 충분합니다.
만약 이런 제도를 운영하려고 했으면 긍정적인 유인책도 같이 나왔어야 합니다. 지정시간 이상 야근 및 주말출근, 크런치 모드에 대한 정당한 보수 지급, 연차 미사용시 보상제도가 같이 나왔어야 하는데 이건 쏙 빼먹고 일 안 한 만큼 빼먹겠다는 제안만 들고 오니 분노할 수밖에요.
결국 기사(링크)에 따르면 공지 이후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알게 되어 수정 중이라고 합니다.
3. 다만 담배를 피우는 시간과 생산성에 대해 기업이 고민하는 것은 맞는 일이죠. 사실 일하면서 담배 피운답시고 20~30분씩 비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이것을 처벌로 누르는 건 적합지 않습니다. 실제로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회사들도 너무 담배를 오래 피워서 업무공백이 생기면 '주의'를 주는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어설픈 조치로 눌렀다가 생산성이 하락한 사례가 한 두건이 아니거든요. 아마 위의 회사도 사기가 많이 다운되었을 겁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죠. 일본 현지의 기업은 근무시간을 칼같이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흡연에 대해선 별 제재를 가하지 않았는데 이유인 즉 갑자기 일본 기업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어설프게 통제했다가 생산성이 떨어지고 심하면 핵심인재가 이탈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일본은 물론 한국기업도 90~2000년대에 저렇게 해봤다가 역효과만 난 걸 아니까 안 하는 겁니다.
4. 제가 하는 일 중 하나가 HRD사례를 연구하고 리포트하는 일인데, 대부분의 기업 사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긍정적인 행동은 포상으로 강화하고
부정적인 행동은 긍정적인 행동을 포상함으로써 제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비흡연자가 흡연자보다 노동을 많이 했다는 것을 인정, 그만큼 휴가를 더 주는 제도를 도입 중입니다.
다만 포상 강화는 굉장히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시스템이 없으면 역효과가 나요. 예를 들어 회사에 도시락을 준다고 치죠. 그런데 여러 종류의 도시락을 주문했다면 좋은 도시락을 차지하는 사람은 관련부서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점심시간이 아닌 오전 업무시간에 도시락을 탄 사람들이고, 정시에 도시락을 가져간 사람은 밥 못 먹습니다.
이는 실제로 모기업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화가 난 대표님은 도시락 제도를 없앴는데, 이로 인해 사기가 팍 떨어졌음이 매출로 나타났죠.
긍정적인 행동에 상을 주려면 시스템부터 만들고 시범 운영해봐야 합니다.
제도만 도입하면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5. 다만 방법은 바보같아도 심정은 이해한다고 했죠?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근무시간 자리 이탈에 민감해지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훗날 다시 정리하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생산성 향상은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는 모 중견기업은 회장님이 밤 11시면 다시 회사로 와서 전 층을 훑으며 야근하는 사람을 체크하는데요, 이때 남아있으면 실적이 나빠도 승진하고, 퇴근했으면 제 아무리 대활약을 해도 연봉 동결에 승진에서 밀린다고 합니다.
이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어차피 11시 이전에 퇴근은 못하니까. 저녁은 반주 걸치면서 마시고, 사우나도 한번 때려주고 10시 즈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커피 한잔 하면서 인터넷 좀 뒤지다가 10시 반쯤에 일하는 척하겠죠.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서열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높으신 분의 마인드가 A로 정해지면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아랫사람들은 A로 맞춰서 행동하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선진 시스템이 도입되어도 윗분들이 야근을 좋아하고 추가 근무하는 사람만 높게 평가하면 집중근무 및 생산성 향상은 물 건너갑니다.
아무리 최신 시스템이라도 리더의 사고가
새마을 운동 시절에 머물러 있으면 소용없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상사들은 부하가 일을 일찍 끝내면 일을 더 줍니다. 일 더하기 일은 중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죠?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눈치껏 설렁설렁 일하는 방법을 궁리합니다.
6. 우리도 결과적으로는 <근무시간은 줄이고, 대신 집중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연구는 꼭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한 최선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흡연자의 경우 휴가를 더 주거나 우대하는 형식으로 그 행동을 강화하라.
보장된 휴식시간 (4시간 기준 30분)의 흡연은 터치하지 말아라.
금연을 성공한 직원을 우대하되 다시 흡연하면 그에 대한 페널티를 부여하라. 왜냐하면 의지가 강하거나 체질이 특이한 사람은 금연 성과급 타기 위해 금연과 흡연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흡연하면서 20~40분씩 자리를 비우는 사람은 근무태도 불량으로 경고하라. 담배에 혐의를 돌리면 자기 잘못을 흡연에게 떠 넘기고 개선하지 않는다.
어떠세요. 동의하시는지요? 아니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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