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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Dec 10. 2018

넷플릭스에서 눈을 돌리지 마라

변화를 무시한 자가 도태된다

1. 최근 넷플릭스 근황이라는 게시물이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드라마 제작사가 넷플릭스, 국내 지상파에 시나리오를 보여줌

지상파는 1/2 정도의 제작비를 지원해주고 나머진 제작사가 부담, 시나리오에 칼을 댐

넷플릭스는 전액 지원, 시나리오는 통과된 시점에서 일절 수정 없음

심지어 전액 지원금액이 제작사가 제시한 금액보다 많음

이러자 기존에는 지상파로 시나리오 들고 가던 회사들이 죄다 넷플릭스로 몰려감


일단 관련 일 하는 사람에게 문의해보니 사실로 봐도 좋다고 하네요. 즉 넷플릭스가 기존의 드라마 제작 관행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 책 <조선 리더십 경영>에선 변화에 눈을 돌리지 않다가 결국 변화의 흐름에서 밀려난 고종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는 몇 번이나 변화할 수 있었고 성공을 거머쥘 수 있었는데 자기가 유리한 환경이 변하는 것이 싫어서, 왕이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기 싫다며 청나라라는 외세까지 끌어들여 탄압하는 등, 바보짓만 합니다. 덕분에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일본이 군대를 보내는 명분이 생겼고, 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독살(당했다고 추정되는)된 왕이죠.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12월 7일 방영분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님이 하신 거예요. 강화도에서 이뤄진 일본과 신헌의 협상을 든 거죠. 물론 실제 조선의 알쓸신잡의 내용처럼 대일본제국의 <대> 자 가지고 싸울 정도로 조잡하지는 않았습니다. 신헌은 나름대로 의지를 갖고 조약을 체결하려고 했죠. 하지만 결국 협상은 체결되었습니다. 이 배경에는 고종의 입김이 강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세상의 변화에 무심한 덕분에 그는 변화에서 밀려나 버린 거죠.


만약 그때 변화하려고 했다면 조선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강화도 조약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을사조약, 경술국치는 당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물론 역사에는 if는 없습니다만.


사실 제 선견지명을 자랑하려고 쓴 글입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현재 한류의 첨병인 한국의 드라마 제작 시장이 고종과 비슷한 꼴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재 한국의 지상파의 드라마 제작 - 넷플릭스 갈등은 실은 일본에서 전초전을 끝낸 사건입니다. <조선 리더십 경영>에서 다룬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이죠. (관계자라)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현재 한국의 드라마 시장이 점점 넷플릭스의 주도하에 흘러갈 조짐을 보인다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넷플릭스의 손아귀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3. 어떻게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넷플릭스만을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이 배경을 이해하려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수익구조, 시장형태를 봐야 합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은 제작사가 만들어서 계약된 방송국, 채널에 납품하는 형식입니다. 이때 방영해서 나온 광고비는 전부 방송사가 챙기는 구조입니다. 제작사가 갖는 돈은 오로지 제작비인데 이 액수가 턱도 없이 적습니다. 애초에 처음 설계될 때부터 부가판권으로 이익을 챙기지 않으면 적자 나게 설계된 갑질이었어요.


그래서 제작사는 부가판권으로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죠. 그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은 애니메이션을 DVD/ 블루레이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불경기, 임금은 낮아지는데 물가는 상승하는 현상 때문에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고 덕분에 판매량이 나날이 줄어가는 점입니다.


총 24편 중 3편이 들어간 블루레이가 정가 8424엔 [출처: 아마존]

가뜩이나 비싼 일본의 블루레이, 예전에는 그래도 마니아들은 사줬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죠. 보통 2~3편 들어간 블루레이 가격이 4800~6800엔 합니다만, 사람들이 잘 안 사니까 점점 가격이 오르게 되었고 나중에는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박스세트 형태로만 팔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게 해도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온 작품이 안 팔리는 바람에 DVD/ 블루레이가 제작 취소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제 제작사들은 궁지에 몰리고 있지만 지상파는 잘 팔리는 형태의 기획만을 만들라면서 대본에 손을 대고, 실패 책임은 제작사에 물리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지요. 이 여파는 결국 제작사의 우수 인력이 업계를 떠나서 공무원이 되게 한다던가 제작사 채용공고에서 월급이 월 4만 엔 (한화 39만 원)으로 나오는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질이 낮아지게 되고, 다양성이 줄어들게 되어 안 팔리는 현상이 심화되었죠.


양배추로 유명한 작화 붕괴

이렇게 된다면 하다못해 작품이라도 많이 봐야 다른 부가판권을 밀 텐데 방송사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용 작품을 어린이가 볼 수 없는 시간대에 배치한다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칼질도 많이 해서 제대로 보여줄 수 없죠. 


여기 반항하면 대형 기획사, 방송사 특유의 갑질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서 교토 애니메이션이 만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엔드리스 에이트>라는 작품은 방송사가 압력을 행사해서 방영된 것을 계속 방영하는 형식으로 만드는 바람에 제작사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팬층이 무너졌죠. <케모노 프렌즈>라는 초인기 작품을 만든 팀은 아예 판권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실업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퍼블리서가 갑이고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을인 시장, 갑자기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변화의 물결이 몰려옵니다. 


4. 기존 방송사가 지역 시장의 광고로 수익을 올린다면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 작품을 배포하고 이를 위해 가입한 전 세계 가입자의 회비가 수익모델입니다. 즉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고, 수익체제가 잡혀있는 것이죠.


넷플릭스는 이 일본 시장을 현명하게 공략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기존의 사업자와 다른 노선으로 작품을 추구하던 업체를 공략한 것이지요. 그중 하나가 <교토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회사는 원래 라이트 노벨이라는 소설을 기가 막히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던 회사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장인정신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각본을 멋대로 바꾸려는 가도카와라는 대기업에게 미운털이 박혀있었던 것이죠. 이에 넷플릭스는 일본 시장의 첫 공략 대상으로 이 회사를 골랐습니다. 왜냐하면 아쉬운 게 없는 회사는 기득권에게 반발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바이올렛 에버가든>
<출처: 바이올렛 에버가든>

보통은 제작사가 원하는 제작비의 1/2~1/3만 지급하는 것이 기존 일본 지상파의 관행이었지만 넷플릭스는 원하는 제작비를 전부 지불하는 것도 모자라서 2 쿨을 제작하기 위한 지원자금, 기획 자금까지 지급했습니다. 일종의 투자인 셈이죠. 


이런 사례가 보이자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용기를 내어 (지상파, 거대 배급사의 눈총을 무릅쓰고)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오리지널 작품이 확인된 것만 12개에 넷플릭스 동시 방영 작품은 30개를 넘어가고 있지요. 즉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넷플릭스만 가입하면 속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에 관한 역사적 내용은 <조선 리더십 경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5. 위의 넷플릭스 근황이라는 글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채용공고로 미뤄볼 때 싱가포르 지사에서 처리되던 업무가 한국으로 이관되고, 이런 드라마/ 예능 콘텐츠를 심사하는 인력이 채용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났던 투자가 지금 한국에서도 시작되었죠.


<출처: 킹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은 제작사가 원하던 제작비 이상을 지원받은 작품입니다. 2부 제작을 위한 비용까지 받았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지상파도 제작비 깎기로 유명한데 이렇게 킹덤의 사례가 있다면 앞으로 좋은 시나리오가 넷플릭스로 몰려갈 겁니다. 



6. 물론 일본에서 지상파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죠. 하지만 콘솔 게임 유저로써 30여 년간이나 플랫폼 산업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이게 마냥 낙관적인 상황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플랫폼의 진짜 힘은 규모에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미스터 션샤인>의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함으로써 그 힘을 보여줬습니다. 그다음은 킹덤이고요. 그 이전에는 <비밀의 숲>, <나의 아저씨> 등 여러 작품의 방영권을 획득했죠. 그리고 다른 지상파 작품 중에서도 괜찮은 것이 있으면 방영권을 사 들일 겁니다.


이렇게 모인 작품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가입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사들이 우수한 시나리오를 넷플릭스에 들고 갈 이유가 됩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언젠가 드라마 제작 시장의 권력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인지 방송사는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을 망친다며 규제를 만들어 줄 것을 원합니다만 이건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기존의 규제도 무리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판에 추가 규제를 만들 수 있는지도 문제고, 만약 넷플릭스에 잘못 칼댔다가는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넷플릭스가 위협이 될 거라고 판단한다면 남이 규제해주기만 바라지 말고 제작비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새로 개발하거나 수익모델을 만드시기를 권합니다. 정말로 우수한 각본이 넷플릭스나 TvN에 몰려가는 상황을 맞고 싶지 않으시다면요. 


변화에서 눈을 돌리는 순간 변화에서 도태됩니다.


이메일: inswrite@gmail.com


이 글 쓰고 넷플릭스는 작품들이 시시하다는 메일을 많이 받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잘 몰라서 그렇지 명작도 많아요 <출처: 캐슬배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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