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시미켄(しみけん)이라는 배우가 유튜브를 오픈했지요. 일본에서 유명한 AV배우라는데 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유튜브의 성과는 굉장한 모양입니다. 일주일 만에 20만 구독자라는 전무후무한 기획을 시켰고, 2일 만에 추가로 5만 명이 늘어서 25만 구독자가 되었습니다. 2019년 2월 20일 기준 단 3회 방송한 채널인데요.
왜 일본 AV배우가 한국을 노리는 걸까요?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라고 정리하면 안 되겠지요.
일본졸업의 저자인 저는 언제나 한 발 더 나아갑니다(저를 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닙니다).
2. 시미켄 TV를 보면 알게 모르게 '자본'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밝은 얼굴색은 반사판이 아닌 조명이 좋아서라고 쳐도 통역사에 사회자까지? 조금만 영상제작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이게 팀 단위로 움직이는 프로모션임을 알 수 있어요. 어쩌면 그 뒤에는 더 큰 자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정식 AV(어덜트 비디오) 시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레이마켓(Grey market)으로만 존재하죠. 정확히 말하면 일본에서 활성화된 성관련 상품은 거의 대부분 그레이마켓으로만 존재합니다. 한 예로 그라비아를 들 수 있죠. 일본에서 그라비아는 차고 넘치는 소모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 기간 낮은 급여로 활동하고 사라져 가지요.
하지만 한국에선 상황이 다릅니다. 이런 시장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자 독식하기가 쉽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반향을 얻을 정도면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일본보다 여유로운 수입을 얻을 수 있지요.
시장 자체가 완벽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획사 단위의 그라비아 수요가 이뤄지지 않는 블루오션입니다.
그리고 이는 AV라는 장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3. 일본의 AV배우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도 이 그라비아와 동일한 공식이 적용됩니다. 아니 AV시장은 그라비아보다 더 심한 무주공산입니다. 완전한 블루오션이에요. 유교적 사회가치 및 엄격한 규제 덕분에 시장이 형성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그레이마켓으로만 남아있죠. 인지도 높은 재화(인물, 상품 등)는 전부 일본 AV배우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한국은 아주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예전 같았었으면 한국 시장의 정확한 매출 규모를 알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SNS라던가 불법 다운로드 등에서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죠. 통계청, 방송통신위원회의 자료까지 취합하면 한국이 어느 정도 규모의 시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저 같은 무지렁이 기획자도 반나절이면 보고서로 만들 정도로 정보가 정확합니다.
저는 시미 켄 TV는 일본 AV산업이 한국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기업들이 이런 수법을 쓴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4. 80년대,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환상의 제품이 있었습니다. 프라모델 칸담이었습니다. 일본 반다이가 제작한 '기동전사 건담'의 콘텐츠를 허락도 안 받고 가져다 쓴 이 콘텐츠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프라모델에 익숙해지고 건담의 팬이 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런데 정작 반다이는 이를 그냥 지켜봅니다. 자그마치 10년 넘게 말이지요.
하지만 1990년도경 상황이 바뀝니다. 프라모델 문화가 형성되고, 건담 팬층이 두터워지자 반다이 법무팀이 직접 아카데미 과학에 접근한 겁니다.
반다이: 우리 제품 무단으로 베껴서 10년간 잘 팔았지? 옜다 증거
아카데미: 하와와,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거예요?
반다이: 너네 유통망 통해서 우리 정품 유통해
이렇게 반다이는 손 하나 안 대고 한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반다이의 건담 프라모델의 30%를 소화하는 거대 시장이 되어있지요. 자국 내의 로봇 프라모델 제조 메이커도 상대가 안 되는 마당에 한국기업이 상대가 되리 만무하지요.
이런 흐름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제조업에서도 이뤄지지만 그것보다는 콘텐츠 시장에서 더 두드러졌어요. 반다이가 왜 10년간이나 이를 두고 본 걸까요? 물론 90년대 버블이 무너지면서 해외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시장을 키운 겁니다. 아카데미가 자기 돈으로 베껴가며 소비자들에게 건담 프라모델을 퍼트려주고, 이를 팔 수 있는 유통망과 수요를 개발해주길 바란 거예요.
만화시장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풀어줬어요. 해적판 출간을 말없이 지켜보고, 정식 계약을 요청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싼 라이선스 비용으로 계약해줬어요.
처음에는 충돌이 많았습니다. 특히 드래곤볼은 집중 공격 대상이 되었죠. 만화에서 닌자 캐릭터가 나오면 왜색이 나온다고 난리가 났고, 기모노라도 입고 나오면 시사프로그램이 집중 폭격했습니다. 전 일본 만화에서 키스 장면이 나왔다며 공중파 9시 뉴스에서 일본 만화의 해악을 부르짖은 것을 아직도 기억해요. 연애하면 다 하는 것을...
하지만 한국 만화가 일본 만화에 눌려서 고사 수준이 되고, 소년소녀들이 일본 만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자 상황이 바뀝니다. 시장과 사회도 이미 익숙해져서 기모노가 아니라 일본을 무대로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게 되지요. 이렇게 되자 유명 작품은 개런티 제외하고 라이선스 비용만 10~20배로 불어났죠. 국내 출판사들이 일본 만화시장을 키워줬고 이제 소비자들이 일본 만화를 찾으니 더 이상 사정 봐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콘솔 게임도 비슷합니다. 현대를 상대하던 닌텐도가 다른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대원을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뭘까요? 사업을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시장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테스트 베드가 필요했던 겁니다.
5. 시미켄은 일본의 AV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데 이상적인 캐릭터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AV배우의 경우 그들의 상품은 성적 매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품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다면 모를까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힘들지요.
하지만 남자 배우 시미켄은 다릅니다. 우선 그는 일본에서도 화려한 입담으로 성적 매력 이외의 콘텐츠를 개발한 예능인이기도 해요. 그리고 일을 위한 자기 관리가 투철해서 한국에서도 나름의 팬층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AV산업 진출에 거부감을 줄이기에 최적의 캐릭터예요. 그리고 한국 소비자들이 마침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캐릭터(상품)이기도 합니다.
저는 시미켄이 일본의 AV산업의 지원 혹은 주도적인 프로모션에 의해 한국에 진출했다고 보며, 이미 국내에 설립된 법인이 홍보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미 구독자수가 25만을 넘을 정도로 대 성황을 보이고 있고 구독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죠. 이렇게 무장해제가 되면 아마 한국의 규제에 맞는 콘텐츠를 시작으로 천천히 들어올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6. 한국 진출은 무료 사이트와 법적 규제 때문에 나날이 수익성이 떨어지고 시장이 좁아지는 일본 AV업계에서도 최고의 대안일 거예요. 발상은 아주 좋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국 시장에 성인콘텐츠 시장을 정식으로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둘째는 이미 여러 형태로 성인콘텐츠가 진을 치고 있는데, 정부는 이 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셋째는 만약 키우지 않는다면 일본이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갈 텐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규제나 기득권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근거로 포기한 시장이 외국의 자본에 의해 잠식되는 일은 하나 둘이 아닙니다. 스마트폰만 해도 국내 기업이 못 만든 게 아닙니다. 안 만든 거죠. 이런 교착상태를 깬 것은 KT가 2009년 아이폰을 정식 수입하면서였어요.
이미 일본은 시장 진출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저작권 소송을 건 것도, 한국에 일본 AV업체의 자회사의 지사가 설립된 것도 그 일환일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 기업은 빨리 답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물쩡거리다가 해외업체에 주도권 날린 사업이 꽤 되거든요.
가장 익숙한 것은 만화겠네요. 국내 만화는 표현의 자유가 엄격했습니다. 심의기구에 원고를 제출하면 가위로 잘라서 도와지에 붙여서 돌려줬지요.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는 10권 원고가 5권으로 줄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일본 만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문제 부분을 화이트 칠하고 번역을 달리해가며 무사히 들여왔어요.
하지만 이렇다고 해결이 된 걸까 죠? 아니죠. 작품이 가진 페이소스는 그대로 남습니다. 이것이 무기가 되어 일본 만화는 한국 시장을 잠식했고 웹툰이 성장하기 전까지 기나긴 어둠 속에서 고통받습니다.
자 그럼 다시 AV시장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아마 일본은 바로 자사의 콘텐츠를 들여오진 않을 거예요. 아마 규제를 벗어나지 않는 형태의 VR 콘텐츠나 소프트한 작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겠지요. 이렇게 점점 소비자의 장벽을 깰 겁니다. 예전 드래곤볼의 닌자에 과민반응하던 사람이 시구루이를 봐도 무덤덤 해지듯이요. 뭐 이런 건 저같이 해외 콘텐츠 국내 퍼블리싱을 해본 사람에겐 일도 아니에요. 워낙 일상적인 일이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의 성인물 산업은 본의 아니게 기로에 섰으며 이미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겁니다. 만화처럼 자국 시장이 와장창 무너질리야 없겠지만 (이미 시장이라는 게 거의 없으니) 콘솔 게임 부문처럼 자국 산업은 크지 못하고 해외 제품이 99%를 장악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산업 자체를 해외 제품에게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게 과연 합리적인 결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