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는 표준에 있다
현재 화웨이는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비록 3개월 유예지만 구글에게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죠. 화웨이의 점유율이 꽤 높은 일본에서는 파나소닉의 거래 중단 통보에 이어 일본의 통신 3사가 화웨이 제품의 유통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하더니 급기야 영국 ARM (사실상 일본기업) 이 거래를 중단할 계획이라는 내부 문서가 공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화웨이가 세계 시장에 제품을 낼 수 없는 환경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다고 화웨이가 망하진 않을 거다, 트럼프가 헛수고를 한다고 합니다. 맞아요. 이런다고 화웨이가 망하지는 않습니다. 화웨이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만 살아도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시장 덕분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화웨이에 대한 전방위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현재 세계 공산품의 중심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있습니다. 뭘 뜯어봐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적혀있어요. 혹자는 이걸 이유로 세계는 중국을 대체할 수 없으니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건 너무 좁게 본 시야 같아요. 요즘 세대는 몰라도 우리 세대에게는 메이드 앤 재팬이 상당히 익숙합니다. 일본은 기술의 대명사, 뭘 사도 본전 치기는 한다는 당연한 믿음이 있죠. 그런데 말이죠, 저보다 더 윗세대는 이를 달리 기억해요. 일본 제품은 싸고 좋다는 인식이요.
기술은 좋아도 인건비가 비싼 일본도 싸고 품질 좋아서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이미 과거죠. 왜냐하면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바통을 한국이 이어받았죠 그리고 중국이 이어받았고요. 중국이 현재 무역의 중심에 서려면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계속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죠. 아무리 통제국가라도 지지율을 위해서는 임금을 올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중국의 제조품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져 가게 되죠.
그래서 현재 베트남, 동남아시아, 인도, 스리랑카, 북한이 줄 서 있는 겁니다. 차세대 세계의 공장, 차세대 경제발전 꿈나무를 노리고 말이죠.
자 그럼 이렇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국의 동아줄은 뭘까요? 바로 표준입니다.
일본은 이를 먼저 깨달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앞장서서 표준기술을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 판매하려고 하죠. 하지만 잘 안됐습니다. 일본이라는 독특한 환경에만 적합할 뿐 세계시장의 기술, 환경, 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일본의 표준은 세계시장에서 잇단 고배를 마시게 되죠 (물론 이 배경에는 미국, 중국의 방해도 있었습니다만). 한 예로 일본의 HD 송출기술은 화질 등에서 우위를 차지함에도 세계는 고사하고 멕시코에 겨우 파는데 그쳤습니다. 이는 전 세계에 중요한 교훈을 줬죠.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표준에서 밀리면 경쟁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표준이 국가의 먹거리가 됩니다.
이미 표준 중심의 시장은 80년대부터 성립했습니다. MS-DOS가 그 주인공이죠. 한번 이렇게 자리 잡으면 그 뒤에는 돈이 줄지어 나옵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윈도즈라는 표준으로 세계를 장악하는 황제가 되어 천문학적인 돈과 영향력을 얻었죠.
다른 기업들도 이 표준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구글이 괜히 하드웨어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를 (처음에) 공짜로 뿌렸을까요? 소니가 블루투스용 음악 코덱인 LDAC의 사용권을 왜 구글에게 공짜로 증정했을까요? 플레이스테이션은 왜 수십 년간 구축된 SDK를 버리고 경쟁사가 쓰는 X86 기반으로 선회한 걸까요? 다 표준싸움의 결과입니다.
표준은 정말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 표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로열티가 꾸준히 들어오고, 그 표준이 만든 돈밭에 참여자가 몰려오게 됩니다. 이렇게 다들 퀄컴의 꿈을 꿉니다.
앞으로는 표준이 무역 중심에 서게 됩니다. 아니 이미 섰습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칼을 빼 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이라도 불균형적 무역관계를 깨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중국과의 무역관계는 엄청날 정도로 중국에게 유리합니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법적 분쟁이 있겠죠. 그런데 이 분쟁 자체가 편파적입니다. 보통 우리가 타국과 거래를 할 때 계약서에는 <분쟁 시 제3국 법원에서 다툼>이라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보통은 싱가포르 법원이죠. 이해당사자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자는 것입니다. 물론 국제역학에서 완전한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은 살짝 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다릅니다. 계약에 <분쟁 시 중국의 기업 소재지 지방법원에서 다툼>이라고 할 것을 강제합니다. 싫으면 마라 식입니다.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중국에서 지방 판사의 임명권은 법원이 아닌 도지사가 갖고 있습니다. 그 도지사는 공산당이 임명하고요, 도지사의 임기는 지자체의 실적에 따라 갈립니다. 그래서 기업이 손해 보는 판결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진출하는 타국 기업은 혼자서 기업을 설립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중국기업과 합자하는 형식으로 세워야 하며 기술자료도 다 제공해야 해요.
한국 KOTRA, 일본 JETRO의 분쟁사례집에는 이런 특수성 때문에 기술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공장과 설비도 두고 철수해야 했던 기업들의 눈물 나는 스토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기업들은 중국에서 입김이 센 기업과 합자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업계 지적재산권 문제를 들 수 있죠. 보통은 중국의 책임이 아주 명백해도 한국 기업이 중국 법원에 소송을 걸면 100% 집니다. 하지만 중국의 합자회사와 같이 소송을 걸면 조금 확률이 올라가죠. 그런데 중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와 같이 협업한 회사는 법리대로 승소할 수 있습니다.
왜 중국은 이런 불합리한 경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걸까요?
자국이 통제하기 좋은 시장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표준은 이 통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기술과 표준은 양날의 검입니다. 본인이 잡으면 황금의 돈줄이지만 다른 사람이 잡으면 나를 말려 죽이는 사슬이 되지요. 예를 들어 퀄컴을 들 수 있습니다. 삼성, 애플등이 아야소리도 못하고 로열티를 바치고 있지요. 핸드폰이 존재하는한 퀄컴은 다른 사람위에서 영원히 군림할 수 있습니다.
이런게 중국에겐 마음에 안 듭니다. 중국은 자국의 모든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일당 독재체제 국가입니다. 모든 경제, 사회, 문화를 컨트롤하고 있지요. 그런데 만약 하나의 외국 독점 기술이 중국의 표준기술로 자리 잡으면 그 기술에 종속되어 버립니다. 다른 국가니까 말도 안 듣고, 이걸 잘못 베꼈다간 국제 분쟁에서 패배하겠죠. 그래서 중국이 말로는 시장을 개방하겠다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겁니다.
중국은 빼앗은 기술을 불평등 규제로 보호해가면서
자국 경제를 컨트롤하는 시스템이 이미 정착해버린 나라입니다.
이를 토대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트럼프의 입장이 이해가 갑니다.
혹자는 미국은 5G 장비 자체를 팔지 않는다. 화웨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짧은 생각이에요.
만약 한국의 삼성, 프랑스의 알카텔, 일본 NEC가 미국에 5G 장비를 납품한다? 이건 미국에 별 문제가 아닙니다.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어요. 만약 이들 기업이 미국 시장을 독점한 후, 사용료 10배~ 요런 소리하면 바로 무역이니 국방이니로 살짝 두들겨주면 됩니다. 그럼 국가차원에서 자국 기업이 정신 들게 해 줍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게 안됩니다. 아직은 미국에 비해 기초기술도 부족하고 표준기술도 부족해요. 하지만 성장하는 세계 2위의 패권 국가입니다. 게다가 미국 등 다른 나라가 개발한 기술을 멋대로 베껴서 연구개발한 후 성장하고 있어요.
이런 기업이 미국의 5G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미국에게는 끔찍한 시나리오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야 5G가 핸드폰 통신기술이지 알고 보면 인공지능, 가상현실, 무인자동차, 홈오토메이션을 총괄하는 핵심기술이에요. 즉 미래 먹거리를 좌우하는 표준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절대 중국에 내줄 수 없는 겁니다. 이건 한국이 일본 NEC의 통신장비를 고려대상에 넣지 않는 것과도 비슷한 논리입니다.
게다가 군사방면으로 가면 더 심각해집니다. 미국이 무기 수출과 전쟁으로 먹고 사는 나라지만, 아무리 궁해도 중국, 러시아 등의 국가에 무기를 팔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5G 기술은 밀리터리 4.0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로봇, 인공지능 전투원을 전쟁에 내보내어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차세대 프로젝트. 그런데 이런 국방이라는 목숨줄을 중국의 표준이 장악하게 할 수 있겠어요?
목숨줄을 경쟁국에 내어주는 나라는 없습니다.
트럼프, 아니 미국은 중국에게 통제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건 다음 세 가지입니다.
화웨이 배척: 미국 통신 시장, 나아가서 미래 첨단 산업의 세계 표준이라는 타이틀은 줄 수 없습니다.
중국 규제 철폐: 그동안 립서비스로만 외치던 시장개방을 제발 하라는 소리죠. 보호장치, 중국기업이 미국 기업 기술을 빼갔을 때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합니다. 이는 중국시장에 진출한 다른 나라에게도 도움이 되는 조치겠죠. 조약에는 최혜국 대우라는 것이 있어서...
표준종속에서 벗어나는 것: 단순히 차세대 먹거리만이 아니라 국방까지 위협하므로.
이 세 가지가 해결되지 않는 한 트럼프의 공세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5G 장비를 밀어붙이진 않지만 이와 연계된 인공지능, 가상현실, 무인자동차에 국가경제의 미래를 걸고 있거든요.
즉 이 싸움은 신기술 시장에서 살아남는 표준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화웨이를 꺾어야 합니다. 미국의 미래가 걸린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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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새삼 미국의 무서움을 느낍니다. 일본이야 미국의 딸랑이였지만 영국까지 쥐고 흔들다니...
PS2 : 일본이 괜히 딸랑이 짓을 한건 아닐 테고 뭔가 카드를 받았을 텐데 혹시 그게 일본 군대 부활 = 전쟁 가능한 국가 = 평화헌법 폐지는 아니겠죠? 한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로 이쪽입니다.
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