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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Jun 05. 2019

육아 휴직했다가 잘린 남자

변화의 앞에 서는 건 언제나 어렵다

육아 휴직하자마자 잘린 남자 (닛케이 비즈니스: 일본어)


최근, 아주 최근에 일본에서 육아휴직 관련으로 재미있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현재 일본의 회사들은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육아휴직, 근로환경개선을 억지로 하고 있는데, 이게 억지로 한 것인 데다 잘 바뀌지도 않는 일본 기업이다 보니 충돌이 많지요. 결국 이 충돌이 대폭발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1. 동경에 사는 40대 맞벌이 부부가 출산


2. 남자가 다니는 대기업은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한 상황. 그리고 이 남자는 창립이래 첫 육아휴직. 기간은 2019년 3월 말~4월 중순으로 주말 포함해서 4주. 이 과정에서 아내의 케어는 물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 근처에 대출받아 새집까지 구매. 


3. 4월 22일 월요일, 남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자 직속 상사는 5월 16일 자로 칸사이 지사로 이동을 명령. 도쿄에서 칸사이는 초고속 열차 노조미로도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이며 이 경우 일반적으로 출퇴근 항공기를 제공함. 


4. 하지만 회사는 교통비 지원은 일절 없으니 전근을 받아들이고 이사 갈 것을 통보. 


5. 남자는 인사명령은 거부할 수 없으니 최소한 6월 말까지 시간을 달라고 하나 상사는 당장 전근 갈 것을 명함. 심지어 법적으로 남아있는 30일의 연차 사용도 거부.


6. 남자는 회사 인사팀, 노조에 이를 상의했으나 양쪽은 이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함. 결국 남자는 6월 말에 퇴사할 것을 밝히지만 회사는 5월 31일 자로 퇴사를 명함 (참고로 일본에서도 노동법 위반사항). 이렇게 남자는 애 딸린 백수가 됨.


7. 이에 분노한 부인이 이 사건을 트위터에 올림. 순식간에 화제를 모아 100만 리트윗 달성. 

회사는 밝히지 않았지만 회사의 광고 멘트를 달아서 누구나 이 회사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음 


8. 그 회사의 정체는 동경증시 1부 상장사인 대기업 화학 제조업체 카네카. 이후 닛케이비즈니스가 이를 취재, 하지만 홍보팀은 오리발, 오히려 홈페이지에 회사 홍보에서 육아휴직, 사원복지 항목을 날려버림. 이를 지적받자 홈페이지 리뉴얼이며 이번 사태 때문은 아니라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오리발을 날림. 


9. 당시 카네카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었음. 각종 선진복지를 도입, 우수한 인재의 입사를 유도하고 이를 알리는 광고 카피를 도입해서 소비자 대상의 이미지 개선을 하고 있었음. 


그 내용이란 학으로 원을 어주는 회사 (ガクでガイヲをナエル会社)

앞글자를 따서 카네카(カ)


이후 인터넷에서 카네카에 비난의 목소리가 올랐으며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  



2부


1. 닛케이 비즈니스는 이후 회사와 퇴사자를 동시에 취재 시작함. 하지만 회사는 그런 사람이 다녔는지 알 수 없다면서 오리발을 내밀며 애기같이 굼. 


2. 이에 열 받은 닛케이 비즈니스는 심층취재, 교차 취재를 통해 일부 사항을 밝혀냄.

이 일은 육아휴직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상사의 독단이었으나, 이것이 일본 특유의 문화로 인해 회사가 보호하는 형식이 되어버린 것. 이것을 홍보팀, 인사팀이 무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짐.


3. 이로 인해 추가 취재가 계속 이뤄지는 중 (이후 엮어서 설명)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나?


회사 인사팀은 육아휴직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고 실제로 저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자 굉장히 반가워했다고 합니다. 만든 제도가 빛을 보고, 이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죠. 


하지만 구세대인 상사는 이를 거부합니다. 이는 일본 기업들의 전형적인 특색이죠. 일본 회사는 글로벌 탑티어의 회사라고 해도 놀랄 정도로 구식인 회사가 많습니다. 기껏 전자장부를 도입해놓고선 수기로 장부를 다시 쓰는 회사라던가 여사원이 인격을 갖춘 직원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고 성희롱을 던져대는 사람들이 2019년에도 터져 나오지요. 그러니 저 상사가 구시대의 가치를 회사의 인사규칙까지 어겨가며 밀어붙인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그게 일본 사회니까요.


그리고 회사는 이런 사원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이게 희한해요. 일본 기업은 한번 외부 충격이 오면 설령 그 충격이 회사 내의 암적 존재를 걸러내기 위한 것임에도 상관없이 충격을 배제하고 그 암적 존재를 보호합니다. 암과 함께 살기 위해 고집하는 인간 같달까요? 현재 회사 홍보팀, 인사팀은 물론 직원을 보호하는 노조까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전방위로 뛰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에서 육아휴직 관련 내용을 삭제해버립니다. 그래서 현재 홈페이지에선 더 이상 볼 수 없죠.


앞으로의 향방은?

우선 이를 예측하려면 일본의 현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일본은 시장에 돈이 안 돌아요. 젊은이들은 돈이 없고 나이 든 사람들에게만 돈이 몰려있는데 이 사람들은 수입이 없으니까 지출을 안 하고 연금만 타서 생활하고 저축하는 판입니다. 여기에 일할 인구 부족 + 태생적으로 외국인을 배제하는 문화까지 겹쳐서 전반적인 생산성에 문제가 있죠.


이에 아베 정부는 일자리 늘리기, 근무환경개선, 육아환경 개선을 위해 다방면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아베 정권 초창기부터 이뤄졌는데 그때는 기업들이 아베의 임금인상 요청을 '회사 형편이 나쁘다'면서 거부한 경험이 있지요.


이런 아픈 경험이 있기에 아베 정부는 일자리 늘리기, 근무환경개선, 육아환경 개선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가지로 아베 총리가 정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돼요. 우선 아베 지지율은 의외로 20~30대가 많습니다. 60대 이상은 줄어가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 20대... 지지율이 굉장합니다. 20대 남성의 아베 지지율은 70% 이상이에요. 그렇다면 아베는 당연히 젊은이들이 좋아할 정책을 세울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육아휴직 제도 도입하라고 정부가 압력을 넣는 건데, 


육아휴직이 정부방침인데 이걸 일개 회사원이 거부했으니
 주가가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저기 퇴직한 사람은 안됐지만 일본 사회에선 엄청 고생할 겁니다. 일본 사회는 저렇게 퇴사한 사람을 절대 받아주려고 하지 않아요. 그가 옳다는 걸 알지만 동시에 사회의 평화를 깬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배제하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그가 용기를 내줬기에 일본의 육아휴직제도 도입은 박차를 가하게 될 걸로 보입니다. 언제나 사회변화에는 이런 충돌과 진통이 있기 마련이죠. 


다만 그럼에도 부러운 것은 언론의 태도입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기업의 일이 있는데 나를 위해 동료를 버린 이기주의, 요즘 사람들의 책임감의 문제로 몰고 갔을게 뻔하거든요. 적어도 일본 사회는 그 단계는 벗어났다는 이야기니 부럽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도 승진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신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용기와 미래를 응원합니다.


이메일: inswrite@gmail.com

브런치: https://brunch.co.kr/@hdyoon

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PS : 의외로 육아휴직이 잘 이뤄지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도 1.6대로 출산율이 안 좋거든요. 그래서 당이 강압적으로 출산휴가를 하게 만들고, 이를 안 지키는 기업은 직접 부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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