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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Apr 10. 2019

일본화폐도안, 한국인인 나는 불편하다

역사 리더십 경영

1. 현재 일본의 화폐가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기존 1만엔권
바뀔 예정의 신권

기존 구권이 초상화 형식이라면 신권은 사진을 그대로 활용한 권종입니다. 


1만엔권은 정한론을 주장한 일본 교육철학의 아버지인 후쿠자와 유키치에서 일본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낸 시부사와 에이이치(渋沢栄一), 5천엔권은 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에서 일본 쓰다주쿠 대학의 창립자인 여성교육자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천엔권은 세균학자인 노구치 히데오에서 의학자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로 바뀌지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발표에 따르면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에 맞춰 바꾼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이 새로운 지폐, 특히 가장 논란이 많은 1만엔 권에 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2. 현재 일본의 여러가지 매체에서는 이 새로운 인물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근거로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일본의 제국주의 진출에 반대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들지요. 


과연 그럴까요?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사이타마 출신의, 어떻게보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죠슈, 사츠마 지역의 세력과는 동떨어진 지역 사람입니다. 물론 메이지 유신에 참가하려고는 했지만 가족의 만류로 단념한 후 유럽 유학길에 오르죠. 이후 귀국한 그는 유럽의 선진 금융시스템을 배워옵니다.


이후 일본에서 여러가지 사업들을 하는데 그 사업들이 하나하나 굵직합니다. 그는 일본 최초의 신식은행인 제1 국립은행을 설립하고 초대 총재가 되는데 이는 현재 그 유명한 미즈호 은행이죠. 그 외에도 도쿄 가스,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도쿄증권거래소, 태평양 시멘트, 게이한 전기 철도, 삿포로 홀딩스 (삿포로 맷주) 등 현재 일본에서도 최상위권에 달하는 알짜기업을 비롯 500여개의 기업을 설립한 일본 자본주의 시스템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스템을 자기 입맛에 맞춰 굴릴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 정확히 말하면 시부사와 일족은 각 기업체에서 2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기업경영의 공정성을 보호하려고 한거죠. 죽을때까지 이를 지켜낸 끝에 일본 자본가중에선 유일하게 자작작위를 하사받습니다. 


이후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등의 여러가지 활동 덕분에 1928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죠. 여기까지 하면 참 미담일겁니다. 도덕적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니 이것보다 이상적인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이것 뿐이면 한국이 시끌벅적할 이유가 없을겁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지폐 모델이 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3.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한 조선 침탈의 선봉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시스템을 일본에 도입하면서 이를 테스트하고 일본에 맞게 운용하는 모든 마스터 플랜을 세운 사람이죠. 이런 마스터 플랜에는 제국주의 열풍에 참여하는 것, 일본만의 제국주의를 만드는 것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로 옆 나라, 배타고 40분이면 건너가는 조선은 대륙으로 나아가서 중국과 러시아로 뻗어나가는 요충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고종이 조심스러웠다는 거죠. 고종은 현명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영악하지도 않았습니다. 열강의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열강이 인간미를 갖고 자신들을 대해줄거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혹은 생각하려 한거겠죠.


하지만 단 한가지 뛰어난게 있었으니 바로 권력욕입니다. 그는 권력을 위한 일이면 굉장히 적극적이고 기민한 사람이 되었죠.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민중의 목소리를 듣는 공화정을 만들라는 동학농민혁명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서 재빠르게 제압했으며,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공화정을 도입하려고 하자 재빨리 그를 내쫓아 버립니다. 이렇듯 그는 권력에선 누구보다 기민한 사람이었죠.


덕분에 일본이 여러가지로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고종이 잘 물려고 들지를 않는겁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조선을 예속하려고 하죠. 강제로 채권을 빌리게 한것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것도 이 연장선이었습니다.


이 일환으로 일본은 조선이 아니라 러일전쟁을 위해 경부선 철도를 놓습니다. 그리고 이 차관을 전부 조선에게 달아놓지요.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이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 경성전기의 주인인 시부사와 에이이치였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4. 이렇게 알짜배기를 맛보던 시부사와는 더 큰 야망을 갖습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킨 시점, 시부사와는 절친이기도 했던 이토에게 이제 조선에 중앙은행을 세워야 한다고 건의합니다.


말이야 조선인도 이제 현대적인 경제시스템을 누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달랐죠. 그의 목적은 


일본 제일은행을 조선 중앙은행으로 만드는 것


이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은 돈을 찍어내는 능력과 권한입니다. 이에 따라서 물가가 바뀌고 금리가 바뀌고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사람은 물론 경제주체의 행동이 모두 예속됩니다. 


이를 흔쾌히 허락한 이토, 덕분에 시부사와는 꿈에 그리던 조선금융시스템 설계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 부산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일본화폐는 일본이 아니라 바로 조선에서 쓰인 화폐입니다. 시부사와는 대한제국을 압박해서 이 1원뿐만이 아니라 5원, 10원에도 자기 얼굴을 새겨넣습니다. 이렇게 경술국치도 당하지 않은 조선은 일본경제인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를 쓰는 치욕을 당하게 된거죠.


다만 모든 것이 시부사와의 마음대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이토는 화폐주조권, 경제시스템 구축이라는 가장 중요한 권력을 시부사와에게 모두 넘겨줄 생각은 없었던거죠. 이토는 한국은행 (지금의 한국은행과는 다른 일본이 만든 한국 은행)을 설립, 이를 중앙은행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시부사와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죠.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신명호, 역사의 아침) 를 보시면 이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5. 뭐 일본의 입장에서야 잃어버린 20년 탈출, 경제대국 부활이 거대 목표니만큼 시부사와를 상징으로 새길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이건 치욕입니다. 1907년 시부사와가 새겨진 돈을 손에 든 조선인의 치욕을 그대로 안겨주는 거죠.


본인들도 우리가 안중근, 유관순, 안창호, 김구 선생을 화폐 도안에 올릴때마다 이웃국가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외교압박을 하면서 이러면 어쩌자는 걸까요? 제국주의가 그립다고 대놓고 말하는 일본이 저는 불편합니다.


이런 과정을 알기에 시부사와가 들어간 1만엔 권이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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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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