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노리는 것은 지금 정부이다
1. 조선의 문인이자 의병장이었던 강항은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격분하여 분쟁이 일어나면 그 구적(仇敵)을 찔러 죽이고 자기 배를 가르거나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다운 대장부'라고 감탄하지요.
그 자손은 '너는 대장부의 후손이라'라고 하여 지위 높은 사람과 혼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 일본 역사, 세계사를 고루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 전쟁하는 걸 가만히 보면 치킨게임을 너무 잘합니다. 2차 대전 때 미국과 싸우던 일본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조직합니다. 미국의 함선을 자폭공격으로 타격하자는 무모한 전략. 이 과정에서 전투기 조종사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시간, 전투기 조종사를 통한 폭격 공격은 완전히 배제됩니다. 하지만 가미가제는 별 효용이 없었고 덕분에 후반부에는 일본의 방공망은 다 뚫려버리고 말죠. 덕분에 일본 본토는 미국의 군사시설 폭격에 무방비가 되죠.
이 폭격을 막기 위해 창조한 전략은 다름이 아니라 군사시설을 민가 근처에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결호 작전(決号作戦)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호 작전은 다른 말로 1억 총 옥쇄라고도 합니다. 일본에 있는 국민이 모두 죽을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운다고 하는 거죠. 결국 예상외의 저항에 부딪힌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실전 투입을 지시합니다. 이렇게 원폭이 투하되죠.
일본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이 사람들 적에게 궁지에 몰린다면 목숨을 바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정상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들에게 해가 되는데도 굳이 목숨을 바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차 대전 때 한 파일럿은 가미가제 대신 자신이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했음에도 거부당합니다. 상부의 명령이니 가미가제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성향이 오래전부터 형성된 일본의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강항이 말한 내용, 구적에 대한 복수, 그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인정받는 내용은 강항이 접한 에도시대가 아니라 전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이었습니다.
이게 보복 아니면 뭐가 보복이냐, 일본 기자들도 항변하다 (중앙일보)
일본 언론은 정부에 대해 잘 항변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방침을 그대로 실행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는 미디어법의 영향도 있고, 강자에 따르는 성향도 있을 겁니다. 결국 일본의 언론자유도는 세계 76위 수준입니다. 그런 일본 언론이 정부에 항변합니다.
이게 보복 아니면 뭐가 보복이냐?
일본 기업에 더 피해가 오는 걸 알고는 있느냐?
도대체 일본, 아니 아베 총리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이 야욕은 적어도 제 입장에선 일본 국민에게도 일본 국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가미가제의 이유는 그의 정치적 야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가 일본 경제를 위기에 빠뜨려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목표는 한국정부라고 생각합니다.
2. 저는 80년대부터 일본 뉴스를 공부한 사람이며 2002년부터 지금까지는 한국 주요 도서관에 배치되는 경제지, 일간지는 물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뉴스도 빠짐없이 챙겨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 최순실 탄핵을 위해 촛불을 들고 나섰을 때 다음 뉴스가 눈에 들었습니다.
일본 외무성, 대한민국을 우방국에서 배제
당시 한국 언론은 이를 아베 수상의 극우행보의 일환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정치가가 극우행보를 하는 이유가 선거 때문임을 감안하면 (극우행보로 유명한 고이즈미, 아베는 정치인 시절에는 친한파로 유명했습니다) 이 분석은 이상합니다. 하지만 다음 행보를 보면 아베의 정치적 노선을 보면 감이 잡힐 겁니다.
이는 일본 경제산업성에 고지된 내용입니다. 지금 이슈가 된 반도체 소재 규제의 근거이기도 하죠.
밑줄 친 내용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1. 2019년 7월 1일부터 대한민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기 위해 의견 모집을 한다
2. 불화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 (반도체 소재)의 유출, 제조기술의 이전을 금한다
는 내용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화이트 리스트입니다.
화이트리스트란 일부 개체의 특정 권한, 서비스, 이동, 접근, 인식에 대해 명시적으로 허가하는 목록을 말합니다. 즉 여기 포함되는 국가에는 특정 재화의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한데 한국을 이 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보통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어떤 경우에 문제가 되느냐, 바로 군사문제입니다. 2000년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하자 일본 정부는 이란 등의 국가에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립니다. 이유인 즉 기기 안에 들어있는 특수칩이 미사일의 연산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좀 바보 같고 소니는 마케팅 효과를 얻었습니다만 군사규제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적성국에게 이득이 될만한 것이라면 철저히 막죠.
그런데 저는 예전에 우방국 배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의 조치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지 않나요?
3. 아베 총리는 그 유명한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입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A급 전범이죠. 그런 그를 연합군이 살려준 이유는 당시 고위 관료 중에 그만한 경제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그는 제국주의 일본의 시스템을 그대로 현대 일본에 이식시킬 수 있었죠. 하지만 그는 숙원사업인 '전쟁이 가능한 일본'의 부활은 결국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아베 신조 총리. 그가 정말 할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연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아베 신조'는 할아버지와 정치적 취지는 물론 정치인으로서 활용한 취미, 수사까지 똑같습니다. 둘 다 B급 영화광이거든요.
그는 2005년에 총리가 되었다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낙마합니다. 이후 2012년 재집권한 후 그는 '일본의 부활'을 제안합니다다. 이건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한 후 일본 경제는 한없이 주저앉았습니다. 이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갖 부양책이 실시되지만 IMF 외환위기로 두들겨 맞은 직후의 한국보다 미미한 수준의 경제성장에 그쳐버리죠. 물론 그래도 2~3%대의 성장률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지만 버블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는 없으니만 못한 수치였습니다. 만날 캐비어만 먹던 사람이 땅콩만 먹을 수 있나요.
이런 버블경제 붕괴, 무능한 정부의 부양책은 일본의 저출산, 만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라의 경제력 대비 제일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에게 일본의 부활은 정치가가 써먹기 가장 좋은 수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실시합니다. 예전에 일본과 같은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를 위해 재무상 아소 다로, 일본은행 총재 구로다와 연계한 경제정책을 펴고 있지요. 하지만 통계 조작까지 하는 걸 보면 생각대로 일은 잘 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문제는 이 아베노믹스가 아베 수상의 골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부활입니다. 일본의 부활. 부활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과거의 일본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미국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슈퍼 국가, 미국의 금싸라기 땅을 개인이 턱턱 사들이던 황금기, 전 세계가 일본을 우러러보던 황금기를 유권자들은 원하는 겁니다. 안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요.
그래서 아베는 정치적 카드로 일본군 부활, 혐한 정책을 쓰는 겁니다.
4. 맨 위의 글에서 적었으니 짧게 정리하죠. 80년대 일본은 한국이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OECD Top 10의 말석에 서고, G20에서 주목받는 국가가 되었죠. 아베는 이런 상황을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하지 않는 것으로 넘어갔습니다만.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불편합니다. 90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 기업에서 부품 조달해서 비디오도 만들고 TV도 만들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도요타 바로 다음이고, TV는 삼성, LG가 프리미엄 시장까지 다 잡아먹은 상황입니다. 일본 80년대 전성기를 이끈 1등 공신인 반도체는 삼성, SK하이닉스가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 잡았죠.
결국 아베는 한국을 어떻게 든 잡아 앉혀서 일본 국민을 만족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한국이 아직 일본 영향권에 있고, 일본은 한국 위에 있다는 선거용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당장은 2019년 7월 21일에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상원) 그리고 2020년 예정으로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하원)를 위해서.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장기적인 국익에 무익한 정치인이지만 결코 바보는 아니거든요.
그의 목적은 바로 현재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2020년 4월 총선입니다.
5. 2016년 위안부 합의 때만 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아베 총리가 먼저 합의를 깼다는 점을 지적, 합의 불이행을 선언합니다. 이렇게 피해자들이 무시된 강제합의는 제동이 걸리게 되죠.
아베 총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현재의 한국 정부입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은 B2 폭격기를 원산에 띄우면서 북한을 날려버리겠다는 퍼포먼스를 취했죠.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미국의 요망을 받아들여 헌법 개정을 하고 재무장하여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베에겐 이상적인 시나리 오였을 겁니다. 자 전쟁이 가능한 일본이 탄생했다. 이제 일본은 더 성장할 것이다. 4선 총리를 꿈꾸는 그에게 이것만큼 달콤한 시나리오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차저차 하더니 대한민국의 중재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시작했습니다. G20에서 주목받으려고 했더니 깜짝 이벤트가 터져서 한국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이 자유무역을 천명한 지 불과 2일 만에 반도체 규제를 취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맹국에서 제외,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재하는 것은 적성국에게 하는 행동입니다. 이는 뒤집 어말 하면 한국을 일본 안보에 위협을 주는 국가임을 나타내는 메시지이죠. 이런 메시지가 아베의 의도대로 된다면 이후 선거에서 국민들이 헌법 개정이 가능하게 자민당을 밀어주는 효과가 나올 겁니다.
현재 자민당의 의석은 284석, 사실상 자민당 2지부인 공명당의 의석을 포함하면 개헌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자민당 말을 잘 듣는 공명당이 이것만큼은 거부, 개헌은 실패했지요. 결국 아베에겐 자민당만으로 310석 이상을 얻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치는 한국을 제재하는데도 효과적입니다.
적어도 아베 정부에게 있어 지금 문재인 정부는 결코 우호적인 정부가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인해 한치도 물러서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올바른 결과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만)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정권유지 + 재무장에 유리하게 쓰던 카드인 북핵문제까지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베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의 기를 꺾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뭘까요? 바로 경제입니다. 현대 정치사를 보면
아무리 정부가 잘해도, 실제로 잘했어도
국민들이 경제가 위험하다고 인지해버리면 그 정권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아베는 반도체 규제를 꺼낸 겁니다. 원래 추진하던 한국 적성 국화 플랜의 일환임과 동시에 한국의 정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아베의 의도대로 된다면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에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오고 운이 좋으면 일본에게 우호적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노리는 것은 현 정부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본이 입는 타격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데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본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적과 싸울 때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아마 아베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밀어붙일거에요. 그 동안 경제가 무너지든 알바 아닙니다.
사무라이의 대명사 미야모도 무사시가 살을 내어주고 뼈를 친다고 했죠? 이 육참골단(肉斬骨斷)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본의 전략과 정신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이 베이든 뼈가 베이든 둘 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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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