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리더십 (1)
요새 새로 준비하는 책 문제도 그렇고, 원래 일본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번 사태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어 따로 적어봅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불매운동에 적극적일까요?
임진왜란은 조선이라는 나라에겐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우선 전쟁의 양상은 이미 당시 통일(이 거의 된 상황의) 일본은 조선보다 더 강력한 나라였다는 사실이죠. 조선의 지도층은 자력으로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르지요.
이것이 조선 백성들이 일본을 환영한 계기가 됩니다. 매국노들이 많았냐고요? 그렇다기보다는 당시에 이어지던 권문세족의 갑질/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환영도 잠시, 조선 백성들은 의병이 되어 일본을 몰아내고자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들어온 놈들이 더 했던 겁니다. 당시 조선은 다른 절대군주제/봉건국가에 비해 조세율이 낮았습니다. 30~40% 정도로 알고 있어요. 사실 국가가 복지를 다 해주는 스웨덴, 핀란드 등이 이만큼을 세금으로 내야 하니 결코 낮은 비중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의 세금은 더 많았어요.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시대의 경우 조세 비중은 무려 70~80%였습니다. 일부 지역은 90%에 육박하기도 했다죠.
이런 조세제도가 충돌을 낳았습니다. 한 예로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를 지배하자 함경도 주민은 백성을 구하기는커녕 온갖 갑질에 민폐를 일삼던 임해군, 순화군을 가토에게 넘겨버립니다. 이런 지도자 따위는 필요 없다는 의사표시였지만, 가토는 약간 착각을 했나 봐요. 조선 백성이 자신을 환영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세금을 깎아줍니다.
50%로 말이죠. 게다가 일본은 별의별 사업한다고 추가로 부가하는 것도 많습니다.
이렇게 함경도의 세금은 더 올라가버리게 되었죠. 함경도에서 민란이 다발한 것, 이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토에게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의병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일본 코에이(KOEI) 사의 삼국지라는 게임에선 '일기토'라는 모드가 있습니다. 장수와 장수 간의 무용을 다투는 이 모드는 일본어 (一騎打ち)를 번역한 용어지요. 일본에서는 전투에서 장수와 장수가 만나서 서로의 자웅을 겨루고 대장이 진쪽은 패배를 인정하는 전투가 많았습니다. 이는 중국사에서도 간혹 기싸움의 형태로 나타나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이 일기토는 이해가 안 가는 개념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오면 스스로 들고 일어서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최대한 버티기야 하겠지만 물러설 데가 없다고 판단되면 계산을 버리고 떨쳐 일어나는 사람들이에요.
이게 일본의 위정자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한국인의 저력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사람들은 어떠한 구심점이 있어야 비로소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구심점은 바로 윗사람이에요. 윗사람에게 대항한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일례로써 잇키(一揆)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본 백성이 높은 세금으로 시달린다? 그럼 잇키라는 이름의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보통 봉기라면 혁명을 일으켜 위정자를 끌어내리는 걸 생각하잖아요? 일본 사람들의 잇키는 달라요. 자신들의 요구를 윗사람에게 상납합니다. 그리고 민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하죠.
사고, 행동의 틀이 윗사람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니 스스로 권리를 찾자며 떨쳐 일어나는 한국인이 이해가 안 갈 수밖에요. 임진왜란의 의병도 그렇습니다. 훗날 김성일이 규합하긴 했지만 그전까지 의병은 왜군 입장에선 실체가 없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냥 떨쳐 일어났다가 같은 의병임을 알고 뭉쳐서 달려드는 거죠.
이런 한반도 특유의 기질은 머리 좋은 일본인에겐 그야말로 공포였습니다.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일본을 만든 브레인 '이토 히로부미'는 지속적으로 '의병과 같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물론 그가 죽은 후 이걸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었지만요.
3.1 운동은 어땠나요? 원래 처음 참가할 때는 이렇게 하면 독립이 된다더라 하는 순진한 발상에서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시민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이해하고 행동한 것은 기획한 민족지도자, 학생들 뿐이었죠.
하지만 일단 불이 붙으니 전국 250만이 참여하는 운동이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인구의 1/4가 되는 대규모였는데요 일본 입장에선 참 난감한 운동이었어요. 주모자 급을 아무리 잡아들여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불길이 더 거세지는 겁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난 거예요. 결국 일본인들은 반 정신이 나가서 무차별 발포/도륙을 서슴지 않았죠.
일본인들은 한반도 사람들도 찍어 누르면 고분고분해질 줄 알았습니다. 1대 총독 데라우치가 무력 통치를 한 이유도 그거죠. 하지만 무력 통치를 9년이나 했음에도 한반도의 정신은 꺾어지긴커녕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결국 2대 총독 하세가와가 무력 통치를 이어나가겠다고 하자, 이를 기획한 장본인인 데라우치는 반대합니다.
한국인은 찍어 누르면 더 일어나는 민족이라면서요.
결국 일본인은 무력 제압의 꿈(?)을 버리고 내선일체라는 것을 기획하게 되지요.
이번 사태를 보면, 일본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 이해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아요. 얕보는 느낌이 강한데, 뭐 그러다 다치면 본인들 손해겠죠?
우선 양 민족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투쟁심이 강해요. 한 예로 한국 사람들이 1987년 6월 항쟁 때 어떻게 했나요? 무장한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나오니까 어마 뜨거라 하고 도망갔나요? 오히려 직장인들이 분노해서 일도 중단하고 나오고 상인들은 음료수를 무료로 풀어가며 응원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4.19가 있었죠. 이승만 정권이 학생들을 무차별 발포, 폭행하자 스승인 교수들이 어디 한번 나도 때려잡아봐라 하면서 시위에 나섰어요.
반면 일본은 투쟁심이 강하긴 한데 좀 방향성이 다릅니다. 일본의 경우 2차 대전 때 미군이 상륙하려 하자 '옥쇄'를 감행합니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겠다는 것인데요, 이 기세가 너무 거세서 미군이 곤혹을 치렀죠. 자폭공격인 가미가제, 무기 없이 돌진하는 반자이 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투쟁심이 강한 게 일본인입니다.
그런데 이 투쟁심은 우리가 좀 이해하기 어려운 투쟁심입니다.
일본에 상륙하기 어렵다고 깨달은 미국은 폭격 전에 들어갔고, 결국 이는 원폭 투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항복을 받아내지요. 하지만 미국은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0만 대군을 완전무장해서 상륙시키죠.
문제는 이게 기우였다는 겁니다. 천황의 항복 명령을 받은 일본인은 항쟁은커녕 저항을 딱 멈추고 상륙하는 미국군을 환영한 겁니다. 진압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미국군은 오후에는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일본 여성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었죠.
일본인들은 어떠한 힘에 굴복하면 저항을 멈춥니다. 물론 그 울분을 절대 잊지 않고 갚아줄 날만을 기다려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런 거 없습니다.
처음 사람들이 의병에 뛰어들 때 계산하고 뛰어들었나요? 열악한 장비에 하루에 쌀 한 줌 먹으면 다행인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십 년을 버틴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단순히 버티기만 한 게 아니죠. 결국 청산리전투, 봉오동 전추를 승리로 이끌어낸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불매운동이 일어날 때 언론에서는 무용론이 일어났어요. 한 일본 기업의 임원은 '오래가지 않는다'라고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죠. 사실 저도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건 제 주변에 일본인,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인맥이 워낙 많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의 반응을 보고 자세히 보니 이게 지표로 나타날 정도로 강한 불매운동이더군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건 무슨 기세가...
수준이에요.
일본 입장에서 이건 제3의 의병, 제2의 독립운동 수준입니다. 만약 이게 국가/기관/단체/기업이 주도하는 거라면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WTO에 걸어버리던가 공정무역을 빌미로 항의를 하면 돼요.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실체도 없어요. 더 놀라운 건 주도하는 사람/법인격/단체도 없습니다.
이 불매운동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겁니다.
보통 이러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갑니다. 하지만 일본 쪽의 반응은 이를 조롱하고 비웃는 반응이에요.
일본인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뭐냐면요...
자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어, 네가 하는 행위는 무리니까 그냥 포기해.
입니다. 즉 무리한 행위에서 발을 뺄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자비지요? 체면을 세워주려는 거죠. 하지만 한국 사람은 그런 거 모릅니다. 저런 건 100% 도발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저같이 딱히 불매 의지가 없던 사람도 일본 상표 뭐뭐가 있나... 하고 연구하게 만듭니다.
이러니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요.
일본: 위에서 지시하면 투쟁을 멈추고 따른다.
한국: 위고 나발이고 내 방식대로 싸워나간다.
꼭 한국인 일본인까지 안 가도 됩니다. 우리 일상사를 생각해보세요.
<네가 하는 일은 소용없는 일이야, 생각이 잘못됐어>라고 했을 때 <응 그래~ 그렇구나> 하는 사람 본적 있어요?
본인의 주관하에 내린 판단은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그냥 밀어붙이는 게 사람입니다. 하물며 이 불매운동처럼 사회분위기가 <옳은 일>로 흘러간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강압적인 불매는 자제하고 스스로 불매하는 성숙한 시민운동, 이상적인 시민운동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쪽이 하는 행동은 이를 깔보듯 무시하고 있으니 더 불탈 수밖에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놔두면 그냥 잊어버리지만 저렇게 도발하면 더 불타오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그동안 우리를 무시하고, 친일 망언, 독도, 초계기 위협으로 시비 거는 일본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어!
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여행이 타깃이 되었습니다. 여행은 서민 경기에 바로 영향을 주는 산업입니다. 관광객이 일주일만 안 가도 생활에 위협이 가는 그런 업종이에요.
생활에 위협이 가면 일본 국민들은 이런 사태를 야기한 아베를 반드시 압박합니다.
그러자 한국인들도 목표를 여행으로 잡았습니다. 그 결과...
무려 80%의 여행객이 일본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지방도시 노선은 취소되고, 7월 8월을 노린 특수 여행상품은 판매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사실 이게 촛불 혁명을 일으킨 한국인의 의지인데, 아마 일본은 직접 겪어보는 건 처음일 겁니다. 특히 그런 역사 자체가 없던 일본에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거예요.
자 그럼 이 싸움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이 사건은 금방 꺼질 사안이 아닙니다. 애초에 일본이 시작한 계기, 아베의 규제 자체가 납득이 안 가는 형태고, 이 과정에서 싸움을 너무 유치하게 걸고 있어요. 게다가 불매운동은 금방 꺼질 거라는...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롱까지 하고 있어요. 본인들이 조롱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이거 조롱이예요.
위에 일본인들은 갚아줄 기회가 올 때까지 조용히 참는다고 했죠? 그런데 실은 한국사람들도 그래요. 이번 기회는 그래서 절호의 기회입니다. 피해자는 무시한 위안부 합의를 해놓고 아베 본인이 어겨놓으면서 어깃장을 놓을 때부터, 대놓고 초계기로 위협하더니 급기야 자기들 밀수출은 뒤로 돌려놓고 남보고 의혹이라고 우기는 일본에게 한방 먹일 찬스를 한국인들이 놓칠 것 같습니까?
아마 일본이 제대로 굽히고 들어오지 않는 한 이 불매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최악의 형태>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기, 카메라 외에는 국산으로 대체가 가능하거든요.
다만 한 가지 주목할 것,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20세기에 들어선 정권이 바뀐 나라는 단 한 곳뿐입니다. 러시아, 중국, 일본은 정부 1900여 년대에 들어선 정권이 지금도 키를 잡고 있죠. 하지만 아닌 나라가 있습니다. 어딘지는 아시겠죠? 2017년에 정권이 바뀐 그 나라예요. 되게 끈질긴, 무시하고 밟으면 더 드세게 일어나는 국민들이 사는 그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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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