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의 대화방식
1. 일본과의 업무를 한 입장에서, 일본계 글로벌 기업 출신인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인과 일본인의 가장 큰 차이는 <화술>입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말하는 방식이 거의 정 반대입니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일하기라도 하면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은 산으로 가다 못해 달로 날아가 버리고 말지요. 이렇게 되면 서로서로 노력을 해서 이야기가 통하도록 노력을 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80~90년대엔 일본이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잘 살던 나라였기에 그런지 일본 쪽의 커뮤니케이션이 떨어집니다.
한국인은 꾸준히 일본인을 연구하고 맞춰왔지만
일본인은 그런 노력을 안 했다고 볼 수도 있죠.
이런 측면이 일본인 특유의 상대방을 직접 공격하지 않는 화법인 '도오마와시(遠回し)'와 겹쳐져서 더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A. 고노 외무대신: 한국에 후쿠시마산 수출 안 해도 750만 명이 와서 먹어준다 (링크)
아마 이 사람은 자기 딴에는 이런 외교적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걸 겁니다.
For 한국인: 어차피 와서 다 먹고 가잖아. 규제가 무슨 소용이야, 그냥 사줘!!
For 일본인: 정부는 이렇게 농산물을 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참의원 선거 땐 자민당을 뽑아줘!!
하지만 외교관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도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서 한국 사람들은 '아니 그동안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관광객에게 먹이고 있었단 말이야?'라고 생각해버렸죠. 이후 고발 방송에서 후쿠시마 산 식자재가 관광객 전용 식당/호텔 그리고 외식 프랜차이즈에 납품되고 있었다는 것이 터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저 말은 한국인에 대한 훌륭한 도발이 되었습니다.
B. 일본 경제단체 : 한국 불매운동 오래 안가, 좋은 건 사고 싶을 것. (링크)
이전에 유니클로 본사의 임원이 한 말과 궤를 같이 해요. 이후에 '정치적 문제로 인한 불매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첨언하긴 했지만요. 이 말은
For 한국인: 우리 일본 제품 좋잖아, 어차피 살 거 지금 사.
For 일본인: 아베의 정치놀음 때문에 우리가 피를 본다.
즉 저 사람들은 불매는 당장 그만두고, 일본 정부도 정치놀음으로 기업에 피해를 주지 말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단어 선택이 엉망이라 한국인의 투지에 네이팜탄을 쏟아붓는 꼴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를 많이 봤어요. 이번에 아베의 무역규제 이후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니까 저 말이 부각되는 거지 원래 일본이 저런 망언했다가 일 엎어버린 적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한테는 일본 기업이 저런 사례가 15년간 무려 수백여 건이 수집되어 있을 정도예요. 개중에는 한국지사 철수하고 간 적도 있습니다.
CSR컨설턴트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기업의 사과는 최대한 강하게, 딱 한번!!
그런데 유니클로는 이렇게 못했습니다.
우선 일본 임원인 오카자키 켄씨가 한 말 입니다만 이거 일본인에 대해 이해하고 들으면 딱 이 소리 기는 합니다.
For 일본인: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불매기는 한데, 투자자 앞에서 오래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짧게 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저건 그냥 내부적으로 하면 이렇게 커질 멘트가 아닙니다. 그런데 저걸 언론에 흘린다? 저건 근본적으로 한국인들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에요.
특히 일본인이라면
저 임원이야 한국의 매출 비중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투자자를 달래고 싶었겠습니다만, 유니클로의 한국 매출 비중은 17~18%로 결코 낮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니클로/패스트리테일링이 버텨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시장에 가까워요. (링크) 보통 매출에서 1~2%만 빠져도 CEO 교체론이 나옵니다. 현재 유니클로의 매출이 약 40% 빠졌다니까 매출이 3~4% 빠졌다는 이야기인데 이쯤 되면 전문경영인과 임원진 싹 날아갈 상황이에요.
그래서 사과를 잘해야 해요. 이런 경우,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이란
- 해당 사고를 친 사람에 대한 징계/처벌
- 재발방지대책
이 포함된 사과를 말합니다. 방법을 알면 빨리 실천하면 되겠죠? 하지만 유니클로는 못했습니다.
첫 유니클로의 사과는 언론사의 보도자료를 통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상한 사과였죠. 사고 친 건 본사의 임원인데 사과한 건 지사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아랫사람 시켜서 하는 사과를 갑질로 봅니다. 문화적으로 경멸하죠.
물론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패스트리테일링 + 롯데의 합작법인)는 본사 임원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지사의 CEO는 본사에서는 잘해야 부장, 못하면 차장급이에요. 일반적으로 차장급 인사를 부장으로 승진시키되 본사에서 자리를 안 주고 지사로 보내는 겁니다. 2년 정도 일하면서 성과를 쌓으면 본사 임원으로 영전, 아니면 그대로 퇴직하는 거죠. 에프알엘코리아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런 구조라면 지사의 사장이 본사 임원보고 직접 사과하라고는 말 못 할 겁니다.
문제는 이런 미온적인 대응이 불매운동에 불을 붙여버렸다는 겁니다. 이에 유니클로는 놀란 듯 본인 표현대로 <강도 높은 사과>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이게 역풍을 불어버렸습니다. 우선 <강도 높은 사과를 준비>에 대한 해석이 달라요.
일본: 여러분이 납득하는 사과의 형태를 준비하겠다. 시간을 달라.
한국: 간 좀 보고 아니다 싶으면 사과한다
분명히 에프알엘코리아 대표가 한국인인 걸로 아는데 이상할 정도로 이런 감을 캐치 못한 모양입니다. 결국 이것이 한국인의 화를 돋우고, 결국 유니클로는 재차 사과문을 내놓습니다.
그럼 이 사과문은 통했을까요? 일단 인터넷 반응으로는 아니라고 봅니다 (매출로는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왜냐하면 사과문에서 필수적인
- 해당 사고를 친 사람에 대한 징계/처벌
- 재발방지대책
가 없거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사가 본사 임원을 꿇어앉힌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기 다다시가 직접 그 CEO를 꿇어 앉히는 것뿐이겠지만요.
유니클로 입장에선 이 방법이 안 먹히면 사실 대책이 없습니다. 일본인의 입장에선 나름 최선을 다했거든요. 하지만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어요.
사과는 자신의 언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로 하는 겁니다.
앞에서 일본인은 한국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씀드렸죠?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니클로는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겁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사과방식 자체가 실수 투성이었어요. CSR컨설턴트들이 알면 기가 막혀할 겁니다. 요즘은 구멍가게도 이런 식으로 사과는 안 하거든요. 이렇게 실수투성이 사과를 연발해서야 다음 사과가 정말 모범적이어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악재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대신이에요. 참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잃었지만 중의원 해산이라는 카드가 있기 때문에 당장 총리에서 물러날 일은 없습니다. 적어도 내년 올림픽까지는 붙어있을 가능성이 커요.
또 하나는 인증입니다. 유니클로가 여러 번의 실수를 번복하자 이에 더욱 분노한 사람들이 유니클로 불매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식이란 인증샷입니다.
이런 인증샷은 처음에는 그냥 이렇다더라~ 하는 분위기 전달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유니클로 한국지사의 실수가 이어지자 분노로 이어졌어요. 정말 어지간한 커뮤니티에 수십 개씩 올라오는 단골 게시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게시물들의 히트수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거세지고 있고요.
게다가 여기 초를 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그냥 호사가의 장난인지, 유니클로 홍보팀의 행위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누가 우리 동네 유니클로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고 올린 겁니다.
하지만 이에 네티즌들이 몰려가서 직접 해당 매장을 확인, 그 글이 거짓말임을 알았고 이게 기폭제가 되어 유니클로 빈 매장 찍기 인증 열풍은 더욱 거세져버렸습니다. (관련기사)
앞으로 유니클로가 이 위기를 벗어나고 싶다면
1. 해당 임원이 직접 육성으로 사과하게 해야 합니다.
아니 이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한지를 떠나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터진 도요타 결함 사건 기억하시죠? 도요타가 결함부품으로 차를 만드는 바람에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아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에 강렬한 도요타 불매운동 열풍이 터져버렸어요. 그러자 토요타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미국 의회에 직접 나서서 눈물 어린 사죄를 합니다.
이번 불매의 포인트가 어디 있느냐 하면, 일본의 무역규제에 있습니다. 그것도 그 규제의 이유라는 게 사법부의 판결을 일본을 위해 뒤집어 엎지 않아서, 근거 없이 북한에 금지품목 밀반출한다는 트집이에요.
한국인들은 말이죠, 일본인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약자로 본다는 걸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학습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저런 난리가 나면 일본인은 회장이 눈물 흘려가며 직접 사과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련의 발단은 한국 고객이 얕보였다고 생각한데 있습니다.
그럼 그 화를 풀어줘야죠. 그럴려면 일부러 찾아봐야 하는 홈페이지에 올리면 안됩니다.
2. 아니면 참으세요
도저히 본사 임원을 꿇어앉힐 수 없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 같은 눈물쇼는 못 시키겠다면 그냥 감내하세요. 그런 어설픈 사과는 최근 SNS 환경에선 안 먹힙니다.
그리고 혹시 커뮤니티에서 <유니클로 실은 사람 많다>고 한 게 본인이면 멈추세요. 컨설턴트의 제안이면 그 사람하고 계약 해지하세요. 이런 전략은 수년 전엔 먹혔지만 지금은 역효과를 내는 전략입니다.
참고로 모 사처럼 네티즌을 무차별 고소하는 것도 권하지 않습니다. B2C 비즈니스에선 득 보다 실이 더 많아요.
그렇게 하라고 컨설팅 비 받고 꼬드기는 컨설턴트를 많이 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화끈하잖아요? 하지만 최근 소비환경에선 해선 안될 전략입니다.
3. 시간이 없습니다
유니클로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요. 의류는 절기 상품 재고 처리 못하면 끝입니다. 7~8월은 원래 옷 비수기라 쳐도 (그래서 의류 할인을 하는 겁니다) 슬슬 추워지는 9월까지 가면 정말 힘들어질 거예요. 가을 장사를 마치면 이 타격은 회수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겁니다.
4.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정비
전문가를 영입하던 전문가와 계약하던 대외채널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소통방식은 요즘에는 구멍가게 레스토랑도 안 합니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대로는 힘들겁니다. 너무 먼 길을 돌아온데다... 기본적으로 전략미스가 너무 많아서...
이메일: inswrite@gmail.com
브런치: https://brunch.co.kr/@hdyoon
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