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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Apr 26. 2017

세조는 왜 술자리를 좋아했는가

조선 리더십 경영 


조카를 죽인 왕 세조, 술자리에 눈을 뜨다


1. 세조 世祖(1417~1468)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부왕인 세종의 가신을 (그것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1, 2위를 차지하는 분을 모신 가신들을) 조선사에 길이 남을 권력의 화신, 한명회와 함께 박살(撲殺)을 내놨으니 아무리 현대사회라도 효(孝), 육친간의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인에게 이쁨 받기는 애시당초 글렀을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세조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여러가지 난(亂)이 다발한 흉흉한 시대였음을 강조하는 판이니깐.


방식 자체가 이렇다 보니 세조에게는 항상 정통성 시비가 붙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운동을 일으킨 사건도 있으니 더욱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자신의 왕권이 불안하다는 것을 인지했으리라. 각지에서 다발한 난도 그렇고. 


2.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완성된 시스템을 위반한 인사(人事)는 잡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가 반장이 되면 잡음이 일기 때문에 선거를 하는 판이고, 회사에서도 능력 없고 실수만 남발하거나, 별 실적이 없는 사장 아들이 내려오면 직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다.


군대 같은 조직에선 새로 부임한 소위가 강경책을 쓰기도 한다. 성질 온순하고 주위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병을 이 잡듯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해자 자신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러면 조직을 통제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이 유전자는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에게 옮겨 붙어 사회생활로 번식하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조선의 왕은 연산군으로 김처선까지 죽이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조직을 이끄는데 당장 편한 공포보다는 오래 가는 친목이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 <왕의 남자>를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 그래서 이를 아는 사람은 술자리와 선물로 마음을 산다. 


3. 세조실록의 내용을 보면 특이한 내용 중 하나가 <술자리>라 할 수 있다. 무려 467건이나 나오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 술자리가 974건이 나오는 걸 감안하면, 조선왕조의 술자리를 거의 반이나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세조가 술을 좋아했을 수도 있으나, 실록의 기록을 볼 때 주색에 관심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술자리는 취향이라기 보다는 정통성이 없는 불안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유능한 동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정적이기도 하다. 자신을 따랐던 신숙주 등의 인재들은 한 때는 부왕의 왕권을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인재였다. 그리고 자신을 왕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공신들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후에 또 다른 반정, 역성혁명을 일으켜 자신을 몰아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란 한 번 경험한 일은 다음에는 쉽게 이룰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느끼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조는 술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세조의 양팔인 신숙주, 한명회는 명석한 머리를 통해 이를 감지, 직접 춤을 추며 분위기를 따랐다. 어느 회사, 조직이든 잘 나가는 사람은 사장이 멍석을 깔면 튀어나와서 액션을 취하는 사람이다. 



4. 주도자인 세조는 더욱 용의주도했다. 평상시에는 육조직계제를 부활시키는 등 정책의 중심을 왕권의 강화에 두는 군주였지만 술자리에선 한없이 부드러웠다. 원래 성공한 기업의 CEO는 일에 엄격하고 술자리에선 격이 없는 법(그리고 무너지는 기업은 그 반대), 그는 공신들을 위한 잔치에서 어상에서 내려와 이계전에게 술을 따라주었고, 탄핵을 받은 홍윤성을 벌주를 내리며 반성시키기도 했다. 이는 술자리를 화합의 장으로 만들고, 친근감을 심어주는 장치로 활용했다는 증거이며, 이는 세조가 단순한 찬탈자를 넘어 군주의 자질을 갖췄음을 반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메시지를 부여하는데도 확실했다. 이 주연(酒宴)의 근본적인 목적은 왕권강화에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왕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확실한 메시지도 주어야 한다. 세조는 이 역시 일관되게 확실했다.


신숙주와 술자리를 가질 때 일이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세조가 신숙주의 팔을 세게 잡아 비틀었다. 자신의 팔도 비틀어 보라고 했다. 태조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유난히 강골인 세조가 힘껏 비틀었으니 얼마나 아팠으랴, 신숙주도 세조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왕권에 관한 한 깐깐한 남자 세조, 이것이 그 자리에서 해결되었으면 모르겠는데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문제는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물며 군신관계가 확실한 그 시대엔 오죽했으랴. 아니나 다를까, 세조가 이불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화가 났던 듯 하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신숙주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이때 술을 잘 하지 못했던 한명회는 이 광경을 멀쩡한 정신으로 볼 수 있었고 당연히 신숙주가 걱정이 되었다. 왕의 메시지는 다른 건 다 봐줘도 군신관계를 넘어서는 것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숙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가면 꼭 책을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한명회는 종에게 일러 그날은 일찍 잠에 들라고 했다.


이 충고를 들은 신숙주는 바로 잠이 들었고, 세조가 보낸 사람은 이를 그대로 보고했다. 그제서야 세조는 신숙주가 정말 취해서 자신의 팔을 비틀었다고 생각해서 신숙주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왕권에 대해 가타부타 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벌을 내렸다. 양정이 왕의 퇴위를 권하는 발언을 하자 세조는 봐주는 것도 없이 양정을 참영에 처했다. 이쯤되면 과거시험 붙어서 벼슬할 정도쯤 되는 양반들은 감이 딱 왔으리라.


왕권만 넘보지 않으면 그대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군주이니 나를 보위하라

배신하지도 마라, 반정은 꿈도 꾸지 마라, 이 세조님은 그대들이 선만 지키면 부귀영화를 지켜줄 터이니, 그는 술자리 정치의 공식을 알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대들이 거쳐온 술자리를 생각해봐라. 


후세 사람들 즉 이 시대의 월급쟁이이자 미래의 CEO인 우리들이 새겨봐도 좋은 메시지 전달법이리라. 




  

* 세조가 말해주는 술자리 정치의 핵심


1.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괜히 직원들 동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목적으로 술자리를 여는 상사들, 집에 가도 할 일이 없으니 부하직원 끌어다 놓고 술자리 펴는 상사들이 많은데 이는 요즘 시대에 맞는 방법이 아니다. 당신을 꼰대로 부르는 회수만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꼰대가 리더로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다.


특정 직원의 생일, 목표 달성 축하, 송년모임 등으로 확실한 목적을 준다면 이에 집중한다면 업무의 연장인 술자리 회식에 나온 직원들의 부담이 줄어들게 되고,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2. 격을 깨야 한다

술자리에서는 사람간의 격을 만들면 안 된다. 본래의 목적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이후에도 계속 물고 늘어지는 사람, 술자리에서 비틀대서 술주정했다고 다음날 놀려대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술자리 이후에 언급해야 할 사항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폭력, 성추행 등 인간 대 인간으로써의 기본 예의를 상실한 행위, 또 하나는 술자리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 이슈의 대응 (예를 들어 기분이 좋아진 거래처가 신규 거래를 제안했다던가) 뿐이다.


3. 일관되게 행하라

어느날 술 자리에선 해도 되는 일이 어느 날 술자리에선 해선 안되는 경우가 있다. 예전 회사에 있을때 상사 중 한 명은 바이어가 왔을 때 통역을 시키곤 했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말만 통역하라고 지시했지만 술이 들어가면 어떤 때는 모든 말을 통역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어떤 때는 통역을 하려고 하면 화를 냈다. 


적어도 술자리에서 일관된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이성이 풀어지는 술자리 특성상 고욕이 더 늘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랫사람이 상사의 심중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정도를 넘어가면 변덕쟁이가 될 뿐.


업무상 술자리는 회식이든 접대든 사업이 일환이다. 전략적으로 일관적인 메시지를 알아들을때까지 일관되게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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