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1. 한때 대한민국을 휘어잡은 유행어 중에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덕화 씨가 한명회 역을 맡은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인데, 이걸 광고에서 써먹은 게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이덕화 씨가 열연한 한명회는 제법 유명하다.
그런데 이 유명한 한명회 대감, 이미지가 결코 좋지 않다. 한 때 세조가 한명회를 자신의 장량(張良)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물론 유능한 책사를 나의 장량, 장자방이라고 하는 게 당시 유행하던 화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한명회는 유방 휘하의 인재 중에서 보면 장량보다는 모략가인 진평에 가까운 인물이다.
어쨌든 한명회 대감, 모략의 달인인 데다 후에 부정축재로 명성을 떨쳤으니 이쯤 되면 역사서를 읽는 후대인들에게까지 잔머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면모는 비난받아 마땅할지언정,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중에서 하나 주목할 것은 요즘 시대에 키워야 한다고 주목받는 덕목인 통찰력이다.
2. 조선왕조실록에 한명회의 이름이 언급된 횟수는 무려 726건이 검색됨을 확인할 수 있다(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성종 때도 권력을 위해 대활약을 했고,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중종 때 신원이 복권되는 등 조선 초기를 화려하게 수놓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나 그걸 감안해도 회수가 많다는 것은 그 만만치 않은 세조가 일을 할 때 지극히 가까이 두고 썼음을 추측할 수 있으며, 덕분에 한명회가 통찰력을 갖고 일을 하는 스타일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한명회에게 명나라 사신의 선위와 민간의 폐막을 살피게 하다’, ‘경은 나와 마음을 같이 하고 덕을 같이하는 일체의 사람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남아있다. 세조가 일을 할 때 가장 많이 가까이 한 사람은 한명회의 친구이자 정적인 신숙주였지만 판단을 내릴 때는 한명회의 판단력과 통찰력을 중용했다.
실제로, 여러 기록을 보면 한명회의 통찰력이 범상치 않음이 드러났다.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기 위한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막상 반정을 할 때가 되자 모인 사람들이 갈등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세조에게 <이미 돌아설 수 있는 단계를 넘었으니 결행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도 한명회였다.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위해 모였다가 반응이 서늘하자 '내일 다시 모여 결행하자'라고 하는 바람에 고변자가 나와 실패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대조적이다. 이 사육신의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하고 차단한 것도 한명회였다.
3. 그럼 왜 세조는 한명회를 중용했을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조가 좌익공신 중 1등 공신으로 책봉한 사람은 계유정난에 참여하지도 않은 신숙주였다. 한명회도 1등 공신이지만, 반정에 참여하지도 않은 신숙주가 공신에 올랐다는 것은 총애가 신숙주에게 쏠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신숙주는 지금 이미지가 워낙 나빠서 그렇지, 외교, 군사면에서는 당시에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그 세종이 아낀 인재였으니 오죽 뛰어났으랴. 좋은 상사 밑에서 좋은 부하가 만들어지는 법, 세조는 나라를 빼앗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아는 군주였고, 세종 밑에서 단련되었으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신숙주를 총애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한명회가 신숙주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가깝게 지냈다는 것이다. 굳이 죽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권력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순신이 총애를 받으면 원균이 시기, 모함했고 조광조가 세력을 떨치자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중종의 마음을 사고자 <주초위왕>을 만들었다.
이렇듯 잘 나가는 사람은 언제나 위협을 받는다. 회사에서 자리를 둘러보라. 잘 나가는 사람은 시샘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 프로젝트를 실패하면 나머지가 벌 떼처럼 합심해서 콕콕콕 그 사람을 쏜다. 하물며 정적, 승진이 겹치는 대상이 되면 나중은 생각치 않고 물어뜯기 마련.
하지만 한명회는 신숙주를 죽이지 않았다. 1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신숙주가 세조의 팔을 꺾은 사건은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고, 그 자리에는 당시 아버지의 팔을 꺾은 신숙주를 분노로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던 세자였던 예종도 있었으니 최고의 정적인 신숙주는 그 자리에서 한명회가 아무 말 안 해도 죽어나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종이 사위였고 자신이 실세였으니 나중에 죽을 소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회는 오히려 사람을 써서 신숙주를 살렸다(소문쇄록).
왜 정적을 살렸을까? 물론 권력과 주군의 총애가 누구에게 쏠렸는지 생각하면 죽이는 것이 흐름이다.
한명회는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숙주는 물론이고, 역사상의 모함 사건을 둘러봐도 정적을 죽이는 것보다는 살리는 게 더 나은 결과였던 적이 많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어설프게 죽이는 바람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신 삼두정치의 부흥을 위한 제물이 되었듯. 그리고 그 삼두정치가 어떻게 무너졌나? 하나를 쳐서 균형을 깬 사람이 제물이 되었고 그 과실을 얻은 사람이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아니었는가? 이렇듯 정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보호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신숙주가 한명회의 친구가 아니라면, 오히려 정적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상황을 보면 한명회의 전횡에 대한 고변이 줄을 이은 것을 알고 있는데 세조는 공신이 한 일은 어지간하면 봐주는 술 정치를 시행 중인지라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신숙주가 한명회를 감싸준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신숙주가 죽었다면, 한명회는 신숙주에게 갈 정치공세까지 다 받아야 한다. 친구가 되지 않으면 신숙주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는데 선봉에 섰을 수도 있다. 통찰력을 지닌 한명회는 이 점을 내다본 것이다. 오히려 강한 정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서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이자, 적을 물리치기 위한 원군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신숙주는 부귀영화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명회가 재산 축재를 하는 과정에서 걸릴 일이 없다. 자신이 신숙주 다음 순위라는 점만 참고 넘어가면 이해관계가 얽힐 일이 없다는 점, 둘이 같이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명회는 신숙주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에서 꾸준히 구해내고 신뢰를 구축했다.
세조: (신숙주가 자신의 팔을 꺾은 것을 예종이 노려보자)
난 이렇게 정치하지만 넌 그러지 마라.
술자리 정치가 본연의 취향이 아니라 불안한 왕권 수호를 위한 하나의 장치이나, 너는 적장자, 세자이니 자신과 같이 욕보면서 정치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이 한 마디를 듣고 까딱 잘못하면 상처입은 왕권을 곱씹다가 분노가 터질 것을 알 정도의 인재가 바로 한명회였다. 그래서 그는 신숙주를 살렸다. 수직적 관계보다는 쌍방의 수평적 관계에서 얻는 것은 더 크다. 역시 통찰력의 발로이다.
4. 이 통찰력과 혜안은 어디서 왔을까? 사실 한명회의 이후 행보를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머리 회전이 빠르고 예측하는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 과거에 40세까지 합격하지 못해 음봉(음서)을 통해 경덕궁 지기에 겨우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한명회는 제도권의 인재 선발 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걸러지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말 시험에 합격할만한 역량이 안 되는 사람 그리고 또 하나는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힘과 논리에 집중하는 타입의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즉 제도권의 표준형 시험이 파악하지 못하는 걸출한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우리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대성공을 거둔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제도권의 가치엔 좀 심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언제나 핵심에 집중한 협상을 통해 이익을 거머쥐어왔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 계유정난 때 그는 거사를 위해 현금과 병장기 부터 철저하게 준비해놓았다.
바로 전의 성공자인 태조가 반은 운에 가깝게, 코미디처럼 반정에 성공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나이가 40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과거제를 통해 형식에 자신을 틀어 맞추는 것보다는 자신의 꼬인 인생을 풀어나갈 비정상적인 활로에 집중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정상적인 활로에 주목한 이유는 본인 자체의 환경, 입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거에 쉽게 붙었으면 집안도 좋겠다 그가 자신의 출로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붙지 못한다면 조선 시대에 사대부집 자제 입장에서 체면치레조차 할 수 없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관점, 시점, 경험이 필요하고 이를 키우려면 자연히 관심 영역을 넓힐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통찰력이 길러졌을 것이다.
그가 권람을 통해 세조를 소개받았을 때, 그의 속을 꿰뚫어 본 것은 비정상적인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출로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인 통찰력이 우울한 인생을 화려하게 개화시킨 열쇠가 되어준 것이다.
사람이라는 건 원래 복잡한 걸 싫어하고 간단한 걸 좋아한다. 그리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까지 더해지면 선입견이 생기기가 쉽다. 이런 익숙해진 자리에서 익숙해진 패턴만을 활용해 움직이면 숨겨진 무언가를 이끌어내야 하는 통찰력이 자라기가 어렵다.
관심 영역을 넓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블로그 주인장은 이것을 추천한다. 우선 당신에게 급한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그것을 논지가 정해진 글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의외로 어렵다.
그리고 이를 해결해야 할 키워드를 또 정리하고 파고들어봐라. 장정일 씨가 쓴 <공부>라는 책을 보면 이 과정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남이 만든 사고의 틀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사고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많은 것을 얻는다.
한명회가 왜 신숙주를 구했을까? 물론 없어지면 1등 공신이니 권력은 가까워지겠지만 떡고물을 좋아하는 그는 타격을 받을 거다. 하지만 신숙주가 있으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숙주도 같이 공격해야 하고 그의 부담이 줄어들며 때로는 같이 힘을 합쳐 싸워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신숙주가 살아있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다.
이렇게 근원적인 이유에 집중하다 보면 논리적인 사고와 직관적인 사고가 조화를 이뤄 움직이게 된다. 쓸데없는데 힘 안 쓰고 해야 할 일이 뭔지 파악하게 된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통찰력이다.
한결같이 안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통찰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한결같이 하란 이야기다. 신숙주가 죽을 때 사위인 성종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 부지런하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게을러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나중을 삼가기를 항상 처음처럼 하십시오.
한명회가 이 말을 이유가 보인다. 한명회의 삶을 볼 때 그가 궁할 때, 젊어서 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할 때는 통찰력을 발휘해서 난관을 여러 번 극복해왔다. 하지만 세조, 신숙주도 죽고 내가 천하의 권력을 다 잡은 상황에선 난관을 잡기 위해 사고의 흐름을 잡아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안주하는 과정에서 오만해졌고, 급기야 왕의 권세에 덤비는 무모한 짓까지 저지르는 패착을 두고야 말았다. 오죽 거만했으면 연산군이 그를 부관참시했을까.
통찰력을 얻고 싶다는 건 좋은 미래를 얻고 싶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실은 미래를 얻은 뒤가 진짜다. 게을러지지 마라, 나중을 항상 처음처럼 행하라. 그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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