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Q: 얼마 전에 꼰대 김 차장에게 끌려가서 엄청 깨졌다.
과장쯤 되는 사람이 주인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보고를 하는 식으로 업무 방식을 변경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사의 영역을 넘본다는 이유로 혼이 나고 말았다.
도저히 비위를 맞출 수 없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1. 요즘 산업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뀐다고 한다. 130여 년이나 된 장수기업 코카콜라가 적자로 인해 대규모 감원을 하고 탄산음료가 아닌 건강음료로 사업모델을 전면 개편할 가능성이 CEO입에서 나온 것이다. 신기한 체험을 해주는 탄산이 아닌 웰빙시대에 맞춰 모델을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 콜라를 안 마심에도 코카콜라는 영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본인들에게도 꽤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를 돌파할 방법을 찾기 마련. 다만 개혁과 추진력이라는 게 기존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람에게선 잘 안 나오다 보니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개혁적인, 참신한 인물 스티브 잡스같이 다른 패러다임을 경험한 인재를 모셔오고 싶어 난리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인재를 그냥 앉혀놓으면 기존의 조직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2. 조선시대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물을 꼽자면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들 수 있다. 조광조는 성리학 이념으로 한 왕도정치와 도덕정치의 실현을 위한 개혁에 도전하고 중종의 개혁을 충실히 이행하지만, 1519년 그의 최대 정치적 지원자이자 개혁의 수혜자 중 하나였던 중종에게 사약을 받는다.
이해가 안 간다, 상사의 명령을 받들어 개혁을 수행했더니 사약을 마시게 되었다. 본인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지 사약을 마시기 전까지 밖을 두어 번 내다보았다고 한다. 사약을 취소한다는 교지를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중종은 반정으로 집권한 왕이다. 이는 태종, 세조에 이어 세 번째인데 중종은 앞의 두 사람과는 양상이 틀리다. 태종, 세조의 경우 자신이 주도하고 주축이 되어 반정을 실행한 사령관이었던 반면, 중종은 이복 형인 연산군에게 언제 죽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다가 신료들에 의해 왕이 된, 수동적인 입장이라는 게 차이점이겠다.
현대 사회에서도 일의 핵심에 들어서지 못하면 주도권을 얻지 못한다. 중종도 마찬가지인지라 그는 즉위 초기 몇 년간 반정공신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왕비마저 책봉 7일 만에 바꿔야 할 판이었고, 왕이 참가한 회의에서도 자신이 아니라 반정공신인 박원종, 성희한, 유순종 등이 회의를 끝낸다고 해야 중종이 회의를 마치고 일어날 수 있는 지경이었다.
이 반정세력은 공신마저 자기 맘대로 주물렀다. 당시 공신 책봉 기준은 지금은 물론 당시 시점에서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이라 반정 때 반면 격문을 돌리고 병사를 모집해서 정비시킨, 누가 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과는 사람은 보조적인 인사에게 주어지는 원종공신을 받는데 그쳤다.
반면, 심지어 반정 때 서울밖에 있던 윤탕노는 반정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이유로 정국공신 3등에 임명되었다. 줄을 잘 댄 덕분, 이렇게 중종반정 공신은 실권을 잡은 사람의 나눠먹기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공신 책봉마저 이 지경이니 다른 건 오죽했으랴.
3. 하지만 세월 앞엔 장사 없는 법, 반정공신들이 하나둘씩 죽자, 중종은 직접 정적을 정국을 주도할 카드를 찾았다.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시장이 무너지자 시스템이 아닌 외부에서 희망을 찾는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림이다. 이 그림의 화룡점정이 된 사람이 사림파의 선두주자인 조광조였다. 기존의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능한 인재, 과연 그는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조광조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답지 않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한 번 입에서 낸 말은 철저히 지키는 원칙주의, FM의 화신이었다. 초시에 장원급제, 알성시에 2등 급제하면서 중종의 주목을 받았고, 중종은 조광조가 능력과 성향 면에서 자신을 떠받칠 인재임을 간파, 힘을 몰아주게 된다.
중종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사건원 정언 등 언론 관련 요직을 두루 섭렵하더니 1518년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개혁을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힘을 얻은 조광조는 자신의 군주 중종을 경연 활성화를 통해 이상적인 군주로 만들고자 했고, 이를 위해 성리학적 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소학과 향약(鄕約) 보급에 힘을 쏟았다.
민생개혁에도 힘을 쏟아 공물의 폐단을 시정하고 균전제를 통해 부유층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았으며 추천제 시험인 현량과를 실시하여 개혁을 위한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다.
그리고 급기야 <위훈삭제(僞勳削除 = 가짜 공신 훈작을 색출하여 박탈하는 것)>를 추진한다. 스스로 목에 칼을 들이댔다는 것도 모른 채.
4.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는 사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다름없었다. 둘 사이가 매우 긴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 편으로는 서로가 견제하는 위치이기도 했다. 중종은 조광조를 등용함으로써 상당히 얻은 것이 많다. 폐비 신씨 복위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쥐고 흔들던 반정세력을 눌러, 왕권을 강화시키고 안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점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왕이었으며 본능적으로 왕권 추구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선 배가 부르고 말았다.
개혁은 좋았다. 그러나 성리학적인 원칙하의 정치는 군주에게 많은 의무를 지우고 제약을 주기 마련, 실질적으로 일련의 조치는 왕권의 제한을 가져오게 되고 이는 두 세력이 부딪히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항상 비극을 불러온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아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배가 따스해진 중종, 이제 왕권강화라는 목적은 이루었고, 그렇기에 조광조를 정리할 적당한 시점을 찾고 있었다.
즉위 14년 차인 안정된 기반을 잡은 왕이 되자, 개혁은 귀찮은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광조는 위훈삭제의 카드를 빼 들었다. 사실 가짜 공신을 책봉하는 것은 왕권의 권위를 바로잡는데 필요한 조치이긴 했으나 문제는 위에서 서술했듯 가짜 공신을 만드는데 중종도 한몫을 했다는 점이다. 중종의 주변 인들이 가짜 공신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이었는데 조광조는 여기에 칼을 댄 것이다.
게다가 대간들이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모든 공신을 개정하자는 의견을 보였고 이는 위훈삭제로 인해 권력을 잃게 될 위협에 놓인 세력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 점에서 중종과 기존 기득권(훈구파)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정치세력에서 폐단을 없애고 물갈이를 하려는 조광조, 왕권을 제약하는 조광조는 눈의 가시가 된 것이다. 도와주고 뭐고 자신의 권력에 칼을 대는 방해물로 밖에 안 보인 것이다. 이후 기묘사화가 일어나고 조광조는 유배 후 사약을 마시게 된다.
5. 왜 중종은 자신이 원한 개혁을 실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을 갖게 되었나? 조광조의 정책이 옳고 그른지, 반정공신의 위훈이 적절한지를 떠나서 조광조의 개혁은 너무 급했다. 또한 기존 구성원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이 설령 옳을지라도 그 판을 휙 뒤집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기득권들이 옳은 일을 하니 우리 권력을 잡아 잡수라고 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대상에는 중종도 끼어있다.
위에서 이야기 한 회사 이야기에서 차장이 화를 버럭 낸 이유는, 그 주도적인 업무처리가 차장에게 위협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을 지시해야 움직이는 부하는 답답하다. 하지만 알아서 다 잘하는 부하직원은 자신의 가치를 흔든다. 그래서 상사가 바라는 부하직원은 모든 일을 다 알아서 잘하지만, 상사에게 의지하는 형태를 유지하는 사원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시점에서 과장이 차장의 업무영역까지 컨트롤하는 상황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양쪽 모두 실책이 있다. 우선 차장, 상사가 부하에게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는 주문은 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자율적으로 업무를 하라고 지시했다면 중간중간 피드백, 대화를 통해 한계를 인식시켜줘야 한다. 예를 들어 타 부서와의 협력은 나를 통하라던가, 외부 진행 상황은 수시로 보고하라던가 하는 식으로.
그게 안되니 아래 직원은 차장이 뭘 잘못 먹었는지 뜬금없이 폭발했다고 여긴 것이다. 오히려 반감이 컸으리라 자기는 나름대로 일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카운터가 날아온 셈이니. 이래서야 리더십 실종 수준이다.
다만 과장에게도 면죄부를 주기는 힘들다. 사원급이라면 모를까 관리자쯤 되면 조직 내의 힘의 역학을 알았으니 어떻게든 차장의 체면을 세워주는 행동, 과정을 취했어야 한다. 억울하다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된다. 대리가 자기 빼놓고 외부 미팅을 진행하고 슥슥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대리가 내일의 자기 자리에 올 거라는 불안감이 등골을 살살 어루만져줄 것이다.
6. 조광조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 원칙에 입각한 업무처리를 했다. 위훈도 성리학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사 중종이 위훈 사건의 공범자라는 사실이다. 청렴한 사람이 이래서 힘들다. 원리원칙대로 일하다 보면 언젠가 장벽을 만나게 되니까.
중종은 위협을 느꼈다. 조광조의 기세를 불안하게 여긴 것이다. 정치적으로 위축된 중종은, 심지어 자기가 올린 가짜 공신까지 공격당하게 된 중종은 이제 권력기반이 잡혀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조광조를 삶아먹은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사내/조직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될지언정 무시하고는 살 수 없는 법. 조광조는 중종의 마지막 울타리는 그냥 둬야 했다. 그러면 성공한 정도전으로 역사에 남았으리라.
만약 여러분이 충분한 역량을 갖고 새로운 업무를 수행한다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기득권이다. 특히 이게 기업체의 신규사업이라면 더 그렇다. 신규사업은 기존 사업이 번 돈으로 수행되는데, 이로 인해 반목이 생기게 되고, 새 사업이 잘되면 기존 사업의 구성원들의 박탈감이 커진다. 신규사업이 잘되면 인센티브가 지급될 테니 박탈감이 커질 테고, 인센티브를 아예 안 줘버리면 이 불합리에 역시 박탈감이 커진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는 폭탄이 뒤에서 웃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일을 진행할 때는 천천히 접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미인에게 데이트를 청할 때 왜 커피 한잔을 하자고 하는지 아는가? 부담이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거리감을 줄이고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야 할 동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놀러가자거나 대뜸 사귀자고 하는 건 장난치는 거 아니면 바보짓이다. 본인이 조광조처럼 잘생기지 않았다면.
큰 것을 얻으려면 상대에게 작은 것을 내주는 훈련을 시켜라, 협상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벼랑이라는 걸 갖고 있다. 이 벼랑은 글쓴이가 자주 대화에서 쓰는 용어인데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지점을 이야기한다. 중종에게는 반정세력에 떠밀려서 왕이 되었다는 부담과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가짜 공신으로 만들었다는 약점이 존재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주도자가 아닌 중종이 반정세력에 자기 사람을 심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진짜 반정을 주도한 충신에게 힘을 몰아줄 역량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조광조는 위훈을 너무 1차원적인 문제로 다룬 듯하다. 이건 상사가 부정을 저지른다고 그 상사를 건너뛰고 부서장에게 직접 결재받는 꼴이다. 도덕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그 순간 그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윗사람의 영역을 지켜줘야 한다. 그게 못 지켜줄 수준이면 눈을 감던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현실이 말하는 불문율이 아닐까?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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