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경영학의 가치는 영원할 것인가?
1. 저는 유명한 경영학 구루도 아니고, 박사나 교수도 아니라 단순히 MBA타이틀을 가진, 소시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경영학의 전망이 심상치가 않아요. 그래서 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박사도, 유명인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일도 잘했고 거의 10년간 국내, 해외에서 경영학 관련 서적, 논문은 다 읽어봤고 이걸로 글 써서 상까지 받아봤으니 '논평'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비해 자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많은 분들은 이런 나라들을 보고 부러워하시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기득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던가 지식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청렴성도 그렇고 공중도덕을 봐도 말이죠.
이렇게 멀리 갈 것 없이 지자체에서 공공시설로 정한 해수욕장에서 자릿세를 받는데 공무원들은 뇌물 받고 단속도 안 하는 걸 보면 에휴, 이놈의 나라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전 이게 익숙함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나오는 여러 부족한 모습은 해외 국가들이 1900년대 초중반에, 즉 오래전에 겪었던 성장통이거든요. 미국에선 제약회사가 유해성분을 넣어서 의약품을 만들고 규제를 로비로 막아오기도 했고, 유럽에선 야근은 물론 주말출근까지 시키고도 급여도 안 주고 당당하게 소리 지르는 CEO도 있었죠. FDA라는 기구를 가진 미국, 성숙한 국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복지천국인 유럽을 떠올리면 상상이 잘 안 갈 겁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받아들인 시기가 비교적 짧습니다. 다른 나라는 70~100년은 되는데, 일본만 하더라도 50년은 되는데 우리는 고작해야 30년이고, 제대로 민주주의가 꽃핀 건 90년대 초였어요. 신분제에서 제도적으로 벗어난 것도 불과 100년 남짓합니다. 이렇게 보니 오히려 익숙해지는 게 어려울 것 같네요.
2. 그래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축적을 가볍게 보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일본 사회나 서구사회에선 오랫동안 무언가를 할 여유가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존중받는 문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발전 속도가 사람의 의식, 정신의 성장 속도 이로 인해 사회가 성숙해지는 속도보다 빨랐죠.
그래서 다른 선진국이 겪은 축적의 시간을 겪어보지 못했어요. 이 문제는 일본도 어느 정도 끌어안고, 중국은 더 심각하게 끌어안은 문제기도 합니다.
한국은 축적의 시간이 적은데, 발전으로 인한 과실은 빨리 얻은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그때 영광을 잊지 못했고 '빨리빨리' 문화가 생겨났죠. 신기술이 1년 뒤면 구기술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무언가 축적될 기회가 없었던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라요.
축적보다는 다음 단계에 옮겨 타는 것이 미덕인 나라, 그러나 기초기술은 부족한데 응용기술만 선진국을 넘어가는 나라, 게임 서비스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기획력은 어정쩡한 나라가 되어버렸죠. 노하우의 축적이 부족한 사회라는 게 드러난 겁니다.
이런 사회에서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 나아갈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경영학이 필요했던 건 당연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은 시점에선 이미 그 가치가 바래버리고 말았습니다.
3. 저는 MBA 졸업자 중 한 명으로써 MBA는 공부가 아닌 팔기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요? 기업입니다. 축적의 시간이 없는 한국, 이래서야 미래예측을 위한 데이터가 부족할 수밖에 없죠. 이런 환경에서 MBA라는 과거의 데이터로 현재의 방향을 찾는 교육은 성장하는 기업에게 필요한 학문이 되었습니다. IMF, 금융위기는 이런 현상을 부채질했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요.
혹시 서점에 가판대에서 책 보는 취미를 가지신 분 계신가요? 2010년도까지만 해도 경영학 그루의 얼굴이 새겨진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미래를 예측하는 선구자다!!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새겨진 책들이 미래 사회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런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나온 책들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저자의 얼굴은 띠지에 넣어 보조 마케팅의 수단을 활용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점을 기반으로 많은 분들이, 과거의 데이터로 예측을 했던 분들이 잘못된 예측을 해버리셨거든요. 데이터 환경까지 바뀌는 사회에서 과거의 지식을 통찰력으로 조합해서 미래를 제시하는 구루가 활약할 길이 없었습니다. 한 예로 당시엔 모바일 게임은 주류가 되지 못한다고 강연하는 전 게임회사 임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바일 게임에 모든 매출을 의존하는 회사가 있을 정도예요.
이런 흐름이 바뀌어서, 이제는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미래예측이 아닌, 이를 위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식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경영학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4. 경영학은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의 방향을 정하는 학문이고, 기존에는 이것이 잘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요즘 어긋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을 들 수 있습니다. 카니발라이제이션이란 식인을 뜻하는 것인데, 이게 마케팅에서 언급될 때는 자기가 자기 상품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상품을 내서 망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애플이 처음 아이패드를 낼 때, 많은 사람들이 애플이 제살 깎아먹기를 한다고 비난했죠.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용도가 겹치기 때문에 서로의 시장을 빼앗을 거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또한 맥북의 수요도 빼앗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죠. 해외의 여러 컨설턴트, 애널리슽, 교수들이 애플의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요?
2011년 4분기 매출을 보면 전문가의 예측대로 아이패드가 아이폰의 판매를 억누른 효과가 보입니다. 전문가가 옳지 않았냐고요? 옳았죠. 하지만 문제는 애플의 매출입니다. 기존에 아이폰만 팔 때 이상의 수익을 벌었거든요. 맥북 판매가 줄었냐고요? 아뇨 전년대비 23%가 늘었다네요.
카니말 라이제이션이 이익을 가져다주는 생뚱맞은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래서야 카니발라이제이션을 경고하는 기존 경영학 이론이 설 자리가 없어요! 카니발라이제이션이 결과적으로는 애플의 생태계를 완전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아이폰의 판매량이 살짝 줄었을 뿐, 나머지 제품의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죠. 그래서 애플 제품의 앱 생태계가 힘을 받았고, 사용자가 이 편리함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매출이 올랐죠.
이런 현상이 애플에게만 일어났다면 모를까, 이제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2010년도에 예전에 여러 사람에게서 아이폰의 진출을 막는 법에 대해 유/무료 컨설팅 (혹은 간단한 자문)을 의뢰받았었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요. 다 거절했죠.
그분들의 걱정은 아이폰이 들어오면 자기가 하는 통신, 보안, 콘텐츠, 게임 산업의 매출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죠? 이쪽 산업의 성장률은 더 높아졌어요. 이 걱정하던 회사 중엔 해당분야 1위로 올라선 회사들도 있습니다. '들'입니다. 한두 회사가 아니에요.
이케아가 들어올 때는 어땠을까요? 많은 애널리스트, 컨설턴트들이 국산 가구 시장의 파이가 줄어들고, 영세 가구 시장이 무너진다고 우려했죠. 가구 회사 주식은 서서히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케아가 들어오자 가구로 집을 꾸미는 문화가 본격적으로 태어났습니다. 기존 가구 대기업군은 물론, 영세 상인들의 매출까지 덩달아 올라버렸죠. 주식 한번 보세요, 이케아 들어오기 전까지 답 보상 태더 니 지금은 쑥쑥 올라가고 있어요. 가구가 생활용품에서 문화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교육은 어떤가요? 상당수의 교육산업의 매출이 출판에서 나옵니다. 거의 50%나 되는데요. 그래서 해외에서 이미 활성화된 디지털 교육은 시도도 안되거나, 자회사를 내서 출판을 방해 안 하게 조촐하게 시도하고 있죠. 하지만 스마트스터디같이 미디어교육을 통해 성공하는 회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도 기존에 디지털 미디어 교육의 효과는 미비하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고요.
지금 과거를 분석하는 공식이 깨져가고 있습니다.
5. 이제 과거의 축적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냐고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사실 이런 현상들은 경영학에서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는 것은
과거의 데이터가 변하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이 바뀐 흐름을 보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기존 경영학은 카니발라이제이션으로 판매량이 줄어들거나 시장 한계 수요가 늘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기존 업체의 마진이 줄어들 것이라고만 보죠. 예전에는 그래 왔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새로운 세계가 구축되어 매출이 올라가고,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서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저는 이런 현상을 보려면 새로운 시도를 찾는 오지랖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경영학 case study는 서양권의 사례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상황은 동양권인 일본을 답습하고 있거든요. 오히려 일본 경영 사례에서 위의 내용을 해결할 단서가 있다고 전 생각해요. 하지만 서적이든 논문이든 수업에 쓰이는 내용이든 서양권 사례가 압도적입니다.
저는 서양권, 동양권 사례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둘을 같이 배우지 않는 한계가 있었고, 그 외에 한계도 있었고 그것이 경영학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학문을 벗어나서 실제적인 무언가와 통섭을 하지 않은 게 위기를 불러온 것이죠.
이렇게 파생된 다른 흐름을 보려면 천상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의 태반은 실패하고, 그래서 이를 시도하긴 쉽지 않아요.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로 맛본 과실이 너무 달아서 이를 방해하는 실패에 인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글의 찬란한 신화만 보지만 안드로이드던 검색이던 그전에 이를 위해 여러 업체를 인수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보지 않아요.
한국은 급하게 성장했고,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하면 그대로 죽는 문화에 익숙해요. 문제는 이렇게 시스템이 굳어져서, 사회 곳곳에 실패를 막는 장치들이 생겼습니다. 졸업 후 몇 년 동안 취업을 못하면 대기업은 쳐다도 못 보고, 휴학도 너무 오래 하면 마찬가지가 된다던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가면 서류통과가 안된다던가? 사업 실패 경험이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만 넘어도 대출은 불가능해집니다.
한국에서 경영학의 가장 큰 위기를 불러올 이유라면
이제는 여러 가지 시도, 그 실패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실패하면 죽는 상황
일 겁니다.
다만 확실한 건 앞으로는 경영학이라던가 이런 학문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거예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 경험을 도입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할 겁니다. 이는 기업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참 얄궂은 일입니다. 경영학은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학문과의 통섭을 시도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되자 다른 학문과의 차별성이 옅어졌습니다. 그래서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 제시를 하려고 했지만 인식의 벽을 넘기 힘든 상황입니다.
채용시장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경영학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는 경영학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이유기도 합니다. 팔기 위해서요? 아뇨, 그 이전에 살아남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