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에 태어나고 사라지기까지
사실, 2017년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작년 말에 일본에서 권당 10엔씩에 집어온 닛케이 트렌디(NIKKEI TRENDY)를 읽다 보니 재미있는 기사가 나와서 번역해봤습니다.
내용인즉슨, 소니를 대표하는 히트상품인 <베타>가 생산 종료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여기까진 다 아는 사실인데 이 생산 종료 시점이 2016년 3월이라고 합니다. 무려 41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저도 그렇고 30대 이상에는 소니 팬이었던 분, 소니를 동경하던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가 될 듯합니다.
글 : 요시이 다에코
197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진행된 베타맥스와 VHS의 비디오 표준규격 전쟁이 벌어졌었다. 소니가 추진한 베타와 일본 빅터를 중심으로 한 VHS가 국내 가전 메이커를 둘러싼 산업사에 남을 격렬한 주도권 전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격렬한 전쟁은 VHS가 마츠시타전기산업을 본진으로 영역을 확대한, 80년대 중반에 승부가 나고 말았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녹화용 미디어는 HDD, DVD 그리고 블루레이 디스크로 진화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비디오카세트 자체가 추억 속의 유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베타는 죽지 않았다. 2016년 11월, 소니가 16년 3월, 베타 비디오카세트의 출하 종료를 발표했다. 그때까지 판매가 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니는 PC 부문의 <VAIO>와 애완동물 로봇 부문의 <AIBO>등, 한 세대를 이끈 간판 상품이라도 채산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냉정한 경영을 해왔다. 그래서 오래전에 규격 전쟁에서 패배, 생산이 종료된 베타방식 비디오카세트가 현재까지 출하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작년의 베타 테이프 판매수는 약 400편으로 적다. 아날로그 방송 송출은 11년에 종료되었기에 언제 출하 종료되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베타의 무대를 내릴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소니만의 성역같이 느껴졌다.
15년 4월, 디지털 아날로그 변환 방송 서비스가 종료되자 현장 책임자는 히라이 카즈오 사장에게 판매중지를 제안했고, 이때 처음으로 안건이 검토되어 동시에 출하 종료를 일반 공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에 출하 종료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하는 일은 흔치 않다(역자 주 : 보통 보도자료, 인터넷 공지). 베타는 그만큼 소니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는 이야기다.
그 특별한 베타의 기원을 보려면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트리니트론 TV, 테이프 레코더와 그리고 소니의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나리타 아키오(成田昭夫)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니가 가정용 비디오카세트의 시조인 U매틱(U-Matic) 방식을 포기하고 베타맥스식 비디오 데크를 발매한 것은 1975년이었다. 당시 이부카 사장이 <가정용 비디오카세트는 적어도 이 정도 크기가 좋겠다>라며 문고본 사이즈의 소니사 사원 수첩을 내밀었다. 이 크기에 맞춰서 베타 카세트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다음 해인 1976년, 소니는 창업 30년을 맞았다, 그 기념행사에서 나리타 회장은 <비디오 원년>을 선언했다. 동사의 트리니트론과 같은 주력상품으로 베타맥스를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일본 빅터가 베타와 호환되지 않는 VHS규격의 비디오 데크를 발매했다. 베타 VS VHS의 전면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나카시마 이쿠지(中島郁志)씨는 1978년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기록 미디어 개발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당시 사내는 가정용 비디오를 전 세계에 전파한다는 열기에 가득 차 있었다고 회상한다.
나카시마 : 신입사원은 전원, 자기 기록에 관해 배웠습니다. 그만큼 회사는 비디오에 전념하고 있었죠. 베타의 여명기에는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이 월 10만 엔인데 비디오 데크는 20만 엔 이상, 카세트는 1편에 4000엔에 판매되었어요.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죠. 다만 기술 향상으로 품질을 올려서 가격을 내린다면 보급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소니의 기술자들은 VHS와의 비디오 전쟁에서 단련되어갔다. 당초 베타 비디오카세트의 녹화시간은 표준 기준으로 1시간이었지만, 다음 해에 등장한 VHS는 2시간이었다. 소니가 여기 대항하여 테이프 속도를 1/2로 줄여 2시간 녹화가 가능한 <베타 II>를 개발했다. 그러나 테이프 속도를 늦춘 결과, 이번에는 음질의 열화가 현저해졌다. 이후 고음질의 베타 Hi-Fi가 개발되었다. 그만큼 양 진영의 경쟁은 치열했다.
화질도 경쟁을 통해 발전했다. 당시 베타, VHS의 수평해상도는 양쪽 모두 240으로 아날로그 TV 방송 기준인 330보다 낮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니는 Hi-Band베타를 개발, 270 해상도의 미디어를 개발했는데 이에 맞서듯 400 해상도의 S-VHS가 발매되더니 소니는 500 해상도의 ED베타를 출시했다. 이에 질세라 인덱스(역자 주 : 색인 기능) 기능, 리니어 타임 카운터 (역자 주 : 녹화시간을 표시하는 기능)등을 탑재, 비디오 데크의 기능도 VHS보다 앞서갔다. 나카시마 씨는 기술경쟁을 하던 80년대가 가장 두근거리던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나카시마 : VHS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제일 먼저 구매해서 분해했죠. 아 그렇구나 이렇게 나왔다 그거지? 자 그럼 이렇게 해주마. 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아지경으로 개발했죠.
하지만 이 기술력이 베타 시장의 목을 죄고 말았다. 베타 신기종이 차례차례 발매되는 과정에서 기종 간의 호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비디오 데크의 구조가 복잡해지는 바람에 원래 베타 진영에 있던 도시바, 산요전기, NEC 등이 VHS진영으로 옮겨가 버리고 만 것이다.
소니의 독무대가 된 베타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1984년 1월, 4일간 걸쳐 진행된 신문광고였다고 한다. 열세에 몰린 베타는 기사회생의 수단으로 <베타맥스는 사리지는 거야?> <베타맥스를 사면 손해 보는 거야?>라는 자극적인 광고를 전면광고로 게재했다. <답은 물론 NO!>, <물론 계속 발매됩니다>는 멘트로 마무리지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소비자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말았다. 역으로 유저 이탈을 가속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VHS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베타지만, 애용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동경 하치오지에 있는 AV기기 수리점인 <A&V테크니컬>의 타케야마 만가메오 사장은 지금도 월 100대의 수리 의뢰를 받는다고 한다
타케야마 : 나이 드신 분이 대부분이지만, 베타는 화질이 좋았기 때문에 마니아가 많습니다. 몇 번이고 수리해서 사용하는 듯합니다. 95세의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시니 고쳐달라는 의뢰도 있었습니다.
비디오 데크의 생산이 종료된 후 14년이 지나고, 수리가 가능한 사람이 줄어든 지금도 A&V테크니컬은 약 30 기종의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타케야마 씨는 매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출장을 가서 베타에 사용된 부품을 직접 구매한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는 오래된 AV기가가 남아있기에 일본에는 없는 부품을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타 1호기부터 수리한 경험이 있기에 어느 기종도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타케야마 : 지금까지 수리해온 기기는 약 20만 대 이상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베타를 많이 수리했다는 자부심이 있죠. 그래서 베타 출하 종료는 솔직히 슬프네요.
1985년, 소니는 VHS 규격 비디오카세트를 발매, 88년에는 비디오 데크의 생산을 개시했다. VHS의 진영에 굽히고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 사내에선 비관론은 적었다고 마케팅의 후쿠다 도모히토(福田知仁) 총괄부장은 말한다.
후쿠다 : 우리가 입사한 건 87년입니다. 비디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시장에서 소니제 VHS가 필요하다는 고객의 신호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객의 요망에 부응하는 것이 소니의 방식입니다. 판매점에서도 여러 포맷에 대응하는 카세트를 발매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서 베타는 VHS에 패배했지만 높은 기술력을 원하던 방송, 업무용 시장에서는 소니의 <베타 캠> 방식이 표준이 되었다. 옵티컬&테이프 미디어부의 가토 아츠시(加藤篤) 총괄부장은 이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가토 : 97년에 출시된 고화질 TV를 위한 HD캠은 약 20년간 TV 방송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3편의 촬영에도 사용되었죠.
HD캠의 점유율은 전성기 기준으로 방송, 업무용 테이프 시장의 95%를 장악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록 미디어가 메모리카드, 광디스크로 바뀌게 된 지금, 3월 기점으로 카메라와 녹화, 재생기기의 출하가 종료된다.
가정용 녹화 기록 미디어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 비디오카세트에서 하드디스크, 블루레이로 진화해나갔다. 그리고 소니는 베타의 원수를 갚으려는 듯, 타사에 앞서서 대응 레코더를 발매했다.
카토 : 소니의 원점인 소리와 영상 부문에서 항상 1위로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TV 시장이 4K로 옮겨가는 지금, 소니의 존재감이 계속될지, 베타로 단련된 기술자의 혼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원문 : 닛케이 트렌디 2016년 4월호
사실 위에서 말했든 애완견 로봇인 아이 보도 그렇고, PSP Go도 그렇고 소니는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면 바로 철수해버리기에 베타도 오래전에 사업을 접은 줄 알았는데 2016년 3월까지 사업이 진행되었다니 놀랍네요. 그 마음 담아서 번역해봤습니다. 당시 소니의 분위기라던가,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을 엿볼 수 있어 나름 재미있는 기사네요.
많은 분들께서 소니가 표준전쟁에서 진 이유가 VHS는 허용한 포르노를 허용하지 않았다, 기록시간이 짧았다고 알고 계시는데 이 것도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실제로 VHS는 최대 6 기간 기록이 가능합니다) 경쟁 과정에서 호환 문제 및 마케팅 전략으로 인한 소비자 이탈이 원인이기도 했죠. 이게 언급되는 것도 재미있네요.
어찌 되었든 베타는 41년이 지난 후에 막을 내렸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살았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저뿐만은 아니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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