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비극을 피하는 방법에 대하여
1. 최근 모 일간지에 <중국 사드 보복 버티기 한계, 한국 기업들 속속 철수>라는 기사가 났다.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영향을 줬고, 이게 실적 악화에 영향을 줬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가져야 할 것, 중국에서 한국기업이 고전하는 이유가 오로지 사드 때문일까?
2. 2012년 중국에서 반일시위가 일어났다. 일본제 자동차가 불타고 기업들에 불을 질렀다. 이에 일본도 반중국 시위를 펼쳤다. 이런 분쟁의 원인이 된 것은 다오위다오(钓鱼岛),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분쟁.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그중에 특기할만한 것은 일본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동남아로 이전했다는 것, 그리고 이 와중에서 청산된 일부 자산을 중국이 사들였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사장인 스가로부터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파나소닉은 자사의 생활가전 브랜드 아쿠아(AQUA)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하이얼에게 넘겼다. 칭다오에 있는 현지 자산을 처분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하이얼은 전 세계 생활가전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3. 일본에 이어 중국 시장에 눈독을 들인 것은 한국 기업이다. 중국에 가면 우선 부동산을 공짜로 빌려준다. 인건비는 싸고 환경에 대한 규제도 전무하다시피 해서 생산시설을 싸게 구축할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노다지에 홀린 기업들은 중국에 앞다투어 공장을 짓곤 했다.
그런데 이게 오래가지 않았다. 시진핑 정부는 농민공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시작했다. 모든 농민공을 도시 근교로 모으고, 이들이 내수 시장에서 쓸 수 있는 급여를 주도록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동산 혜택을 없애고 환경기준을 강화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은 상관없지만, 겨우겨우 살아가는 소기업들은 갑자기 치솟은 비용에 고통받았다. 예전 모 공중파 방송에서 야반도주한 한국인 CEO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딱하다. 중국의 공안은 우리나라처럼 온건하지 않다. 일단 압수수색에 들어가면 중무장한 경찰이 경비견을 사살하고 문을 폭파하고 시설을 부순다. 이 과정에서 생산과정을 잃고 공안에 구금된다. 빚은 늘어간다. 차라리 도망가는 게 낫다.
적어도 중국이라는 나라의 환경을 한국과 동일 선상에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4. 팔을 벌리고 내 품에 안기라고 미소 짓던 자애로운 중국은 어느 기점으로 변화했다. 2012년을 기점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선 중국기업과 합자를 해야 했다. 외국기업은 단독으로 외환거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외환거래가 있어 스마일게이트 같은 회사는 중국에서 발생한 매출을 온건히 한국으로 들여올 수가 없었다. 이젠 아예 중국 회사와 연합하라는 이야기다.
의도는 명확하다. 주도권을 중국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중국에서 밀리는 기업들은 엄밀히 말하면 주도권을 온전히 쥘 수 있는 기업이 아니다. 롯데와 이마트는 중국에 유통망 인프라를 만들라고 허가한 기업이다. 중국에서 알리바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류 인프라가 적고, 상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체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유통 거대기업들은 자비로 유통망을 구축하고, 고용을 해결했으며 믿을만한 한국상품을 팔아서 소비자들에게 유통에 대한 신뢰도를 줬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유통, 소비시장이 자리 잡힌 지금 그들의 몫은 없다. 딱 잘라 말해 중국이 대체할 수 있다.
비슷한 논리로 현대자동차는 비슷한 가격대에 고품질 일본차와 파워트레인 등의 세부는 부족하지만 저가격에 굴러는 가는 중국차 그리고 중국 공장에서 세워지는 완성차로 대체할 수 있고, 그들이 제공하는 부품도 중국에서 대부분 생산할 수 있다. 이미 쌍용의 기술이 흘러들어갔고 볼보는 중국회사의 산하기업이다. 다른 산업도 비슷하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도 고급폰은 애플이, 저가폰은 화웨이, 샤오미가 대체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중국에 진출한, 아니 한국의 대기업 중 주요 시장에서 대체제가 없는 독자적인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중국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상당수가 중국이 육성하는 중공업분야다.
이 보복조치는 중국이 주도권을 주기 위해 계획된 전략이다.
우리는 예전 일본이 겪었던 조치를 이어서 겪는 것뿐이다. 다만 그 계기가 사드 배치였을 뿐. 원래 삥 뜯는 깡패는 옷차림으로 시비 걸다가 말발로 밀리면 생긴 걸로 시비 건다. 어떻게든 걸릴 시비였다.
5. 문제는 한국의 기업 상당수의 비즈니스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삼성은 이 배경을 파악한 것인지 시진핑의 세력권인 시안과 보시라이의 세력권인 충칭 등에 공장을 나눠 짓는 등, 한 정치세력에 집중해서 터지는 위험이라도 막으려고 했지 나머지 기업들은 참 안쓰럽다.
특히 게임, 영상 콘텐츠 쪽은 눈물이 나는 수준이다. 규제때문에 반드시 합자해야 하는 중국현지기업은 검열을 핑계로 게임의 모든 기획 데이터, 영상물의 모든 제작 대본을 요구한다. 그런데 냉정히 말하면 중국은 세부 노하우가 없을 뿐, 다른 부분은 전부 대처할 수 있다. 게임 기획자료에는 그 게임의 세계관을 만들고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자룍, 대본에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카메라, 조명 등의 촬영스탭이 작품을 이해하고 만들기 위해서 할 일이 모두 적혀있다. 이는 단순한 서류가 아니라 노하우의 결정체다.
그런데 이를 중국시장에서 들어오는 돈에 눈이 멀어서 그냥 넘겨준다. 이에 대한 업보는 게임회사가 먼저 겪고 있다. 2013년도만 해도 자기 게임을 사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던 중국 퍼블리서는 요즘엔 특급대우를 받는다. 상당수의 게임회사가 리스크가 큰 게임 개발에서 손을 떼고, 싸고 흥행하기 쉬운 중국 게임을 들여온다. 그렇게 퍼블리싱에만 집착하다가 무너진 회사들이 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 개발팀을 정리하고 몇 년 치 사업기획을 중국 게임 수입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도시전설이 아니다.
다만 대만의 드라마 시장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어떻게 독창적인 역량이 사라지고 중국의 하청으로 전락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게임의 그것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면 지금 그들의 <오로지 중국> 행보는 제살 깎아먹기다. 이미 중국은 한국 게임의 판호를 내주지 않는다. 2014년 중국을 믿고 들어간 콘솔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 광전총국은 일본 게임에 판호를 안 내주는 안을 전격 검토 중이다.
6.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중국에 올인하는 정책을 벌이고, 이미 소비력이 검증된 동남아로 진출해야 한다. 많이들 모르지만 일본 기업에게 베트남의 노동자는 고학력에 성실하기로 소문났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의 한국 내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도 감을 못 잡고 있다. 일본 오사카의 경우, 중국, 대만 관광객이 급증하자 문화체험, 관광자원을 집중 개발해서 2014년에 관광객이 20만에서 70만으로 늘어나는 기적을 맛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면세점을 쓰는 중국의 큰손의 이미지를 못 벗어나서 아직도 쇼핑에만 집중한다. 관광자원을 개발하자는 말을 해도 수익성이 없다는 말에 묵살될 뿐이다.
이게 중국 관광객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몰려가는 원인이다. 기업체 여행이라면 모를까 개별여행객이 점점 일본으로 쏠리는데도 아직까지 모든 책임을 사드에게 지운다. 이런 태만한 책임전가가 중소기업들이 다 무너지거나 발을 빼고 대기업들이 고전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버려지는 걸 눈치채는게 늦었다.
이미 중국에겐 충분한 대체재가 있다.
중국기업에 밀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옆 나라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봤어도 다음 타자는 우리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드는 핑계다. 원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