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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Oct 12. 2017

말 싸움만 하다 세월 가다

조선 리더십 경영

1. 최근에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했다. 원전은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으로 병자호란에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이어지는 47일간의 갈등을 그렸다. 


추석 연휴에 영화를 본 '역사 컨설팅'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주는 영화다. 


단, 이들의 대화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래서 그런지 영화평이 들쭉날쭉이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극이 나와줘서 기쁜 마당에, 이 갈등을 읽지 못해서 수작을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원래 코끼리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 알려면 직접 전체를 봐야 안다. 그림만 보거나 상아만 보면 그 위험성을 절대 알 수 없다.


영화 <남한산성>은 엄밀히 말하면 산성에 고립된 사람들의 절망에 빠진 분투기다. 그렇다면 그 절망이 어떤 것인지 직접 전체적으로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내용을 적어본다.


2. 세종대왕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에게 보내는 최고의 칭호다. 그럼 인조대왕은 뭘까? 역사상 전무후무한 바보 같은 정치를 펼쳐서 구제할 길이 없는 왕에게 부여된 비꼬기 칭호다. 능양군(훗날의 인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유는 무슨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동생의 복수를 하고 자기도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껏 왕이 된 사람의 비전이 '복수', '생존'이어서야 이 나라의 미래가 밝을 리가 없다. 이 왕은 그저 바로 앞에 불을 끌 능력만 있었을 뿐,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도, 보스가 될 수 있는 역량도, 사람을 보는 눈마저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조선사 최악의 군주로 기록, 선조와 고종을 구해줬다.


그의 리더십은 정말 눈부시다(?). 예를 들어 원래 반정군을 이끄는 대장은 김류였다(이 이름을 잘 기억해두자). 하지만 마지막에 꼬리를 말고 도망가자 부득이하게 이괄이 반정군을 이끈다. 문제는 김류가 나중에 들어와서 이 감투를 슬쩍 쓴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왕이라면, 이괄을 더 높게 쳐주고, 도망갔던 김류는 멀리했어야 옳지만 이 왕은 김류를 이괄보다 높은 공신으로 올리고, 이괄은 원하지도 않는 평안도의 병마절도사로 밀어보낸다. 이괄은 파벌이 없어서 이괄의 소망을 왕에게 전달할 라인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파벌싸움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단 이 경우 제대로 된 왕이라면 논공행상으로 인한 비극을 인지했다면 이괄을 이런 식으로 대우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인조의 리더십은 1등 공신이 되었어야 할 이괄을 2등 공신으로 만들고, 변방으로 내치는 것도 모자라 1만 대군의 지휘권을 준 주고 만다. 이괄은 그의 리더십을 '이괄의 난'으로 갚아준다. 


이 이괄의 난은 여러 의미에서 비극이었다. 우선 인조는 도성에서 피난 가느라 체면을 구겼고, 이 이괄의 난을 막기 위해 조선군이 서로 죽이는 비극이 연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군의 방위시설이 파괴되고 만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비극, <남한산성>에서의 고난
그리고 삼전도의 굴욕의 시발점이 되고 만다.


3. 많이들 모르시는데 보통 사람들은 중국 규모만 생각해서 청나라는 엄청나게 센 슈퍼 국가라서 조선이 진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당시 청나라는 우리하고 국력이 차이 나지 않았다. 조선보다 인구도 적고 몇 년에 걸친 기근으로 휘청이던, 조선이 버티기만 했으면 알아서 멸망했을 나라였다. 문제는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는 점.


병자호란의 원인은 엄밀히 말하면 내부의 '말싸움'이 원인이었다. 문제는 이 말싸움의 뒷수습을 현실이 해주지 못했고, 말싸움이 현실을 극복할 수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우선 이괄의 난으로 인해서 조선군이 서로 죽이고 싸우는 바람에 방위체제가 무너졌다. 이는 청나라 군이 산성을 무시하고 바로 진격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무너진 방위망을 뚫고 들어온 청나라의 빛나는 10만 대군.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산성에 있는 정예부대가 출격하면 이들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여기는 조선군의 홈그라운드 인 데다 청나라는 보급을 현지 조달해야 할 정도로 상황도 좋지 않았다. 막아낸다면 보급이 떨어진 청나라는 물러날 수밖에 없다. 조정도 바보가 아니라서 산성에서 나와 요격할 것을 명했다.


문제는 이 북도 방위를 맡던 도원수가 인조의 총애만으로 자리에 오른 '김자점'이었던 것이다. 김자점은 한 번 청군과 교전하고 깨지고는 그대로 산성에 틀어박혀서 청나라 군대가 수도를 향해 진격하는 것을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4. 이렇게 조선순은 청군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고, 한성은 개전 1주일 만에 함락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여담이지만 글쓴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국력이 비슷한 나라 간의 전쟁에선 잉카제국과 스페인 정도의 전력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한 나라의 수도가 꼴랑 1주일 만에 함락당한 적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도 비록 행군하느라 다 쓰긴 했지만 20일이 걸려서 체면치레를 했으니 말이다.


조선에게 남은 희망은 항전이었다. 다행히 남한산성은 충분한 방어력이 있었고 명나라도 원군을 보내고 있었다. 전략만 잘 세우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극복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략을 겁나게 못 세웠다. 


말싸움하느라. 


우선 인조가 피난 가는 결단이 늦었다. 차라리 빨리 도망갔으면 모를까, 어영부영하는 바람에 청군에게 길목이 막혀 원래 목적지인 강화도가 아닌 남한 산성으로 피난을 갔다. 이 때문에 남한 산성은 물자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시기는 겨울인데 먹을 것도 먹을 것이지만 추위를 막을 옷도 없었다. 


먼저 움직인 인평대군과 봉림대군(효종)은 무사히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 강화도를 공격하는 임무는 도르곤이 맡았는데 사실 명나라의 원군이 바로 산둥까지 와있던지라, 충분히 버틸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기억하라고 했던 김류가 추천해서 강도 검찰사(강화도 수비 사령관)가 된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청군이 건너오자 가족이 포로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어머니와 처를 자결시킨 후 본인은 뗏목을 타고 도망가고 말았다. 결국 왕세자와 왕족들이 고스란히 청군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면 자 왕통이 청나라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남한산성에 남은 인조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힘내라 인조?


5.... 는 힘내기는커녕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애초에 한성이 최단기간으로 함락되고, 도망가는 타이밍도 늦어서 물자가 충분하고, 수전에 약한 청군을 막아낼 수 있던 강화도가 아니라 남한산성으로 간 것이다. 


청나라 군대는 당연히 피난이 늦은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이를 구하기 위해 근왕 군이 지속적인 기습을 했고 실제로 전과를 올렸다. 문제는 이를 지휘할 수 있는 수뇌부인 김류가 산성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는 서로 싸움질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영화로 보시게 될 부분이다) 근왕 군은 통합적인 전과를 낼 수가 없었다.

남은 희망은 외부의 병력이었다. 청나라는 그렇게 보급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던 반면 조선의 속오군은 9만이었고 보급에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이 속오군을 집결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 문제가 있었다. 예전에 도망갔다가 말발이 좋아서 1등 공신이 된 김류는 남한산성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집결시켜야 하는데 이 권한을 가진 도원수 김자점은 처음에 청군에게 깨진 공포가 남아있었던 탓인지 청군이 산성을 포위하고 왕을 위협하는데도 이를 감상만 하고 있었다. 즉 김자점은 속오군을 모으기는커녕, 북방병 2만을 데리고 남한산성을 둘러싼 청군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왕과 참 어울리는 인재라 할 수 있다. 


근왕병은 결정타를 못 먹이고, 북방병은 구경만 하고 있다. 도원수는 속오군을 모으기는커녕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더가 무능했을 뿐 남한산성의 부대는 정말 훌륭하게 싸웠다. 40일간의 교전에서 진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홍이포를 끌고 온 부대를 격퇴하고 홍이포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애초에 피난 예정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병량도 물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남한산성의 부대가 용감하게 싸우고 승리를 거둘 능력이 있어도 먹지도 못하고, 한겨울에 입을 옷도 없다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청나라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에 패했다


결국 먹을게 다 떨어지고 왕세자와 왕족들도 다 잡혔다. 조선은 비슷한 국력, 오히려 인구와 경제도 열악했던 청에게 완패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맛봤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을 옷도 없어 벌벌떨면서도 남한산성의 조선군은 청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6. 영화 <남한산성>은 이렇게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일은 안 하고 입 배틀만 벌이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과정이 주제다. 명분과 실리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다투고 이를 인조가 제대로 컨트롤하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해서 벌어진 비극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새롭게 보인다. 여러분은 회사에 일 잘하는 사람이 윗선의 삽질에 막혀서 바보가 되는 경우를 본 일이 있는가? 조직이라는 게 그렇다 리더가 바보면 직원이 아무리 똑똑해도 같은 급으로 떨어지게 된다. 


내부에서 그들은 명분과 실리를 갖고 싸웠다. 물론 그들의 말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단  우선 외적부터 막아놓고 싸웠어야 한다는 점이다.


명분, 실리만 따지다가 홍타이지가 침략할 구실을 만들고, 화평할 시기는 놓치고 피난은 늦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제대로 된 자리에 앉히지도 않아서 나라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패망으로 치달았다. 이 영화는 산성에서 고행하는 사람의 입장을 경험하게 해주는 영화다. 이런 전체적인 배경을 안다면 이 영화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7. 영화에 대해서 평가해본다면, 아주 훌륭한 영화다. 이 정도 글만 읽고 간다면 전체가 보인다면 즐겁게 즐길 수 있다. 고증도 거의 완벽하고 인물 간의 갈등 묘사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리고 지금 개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 나아가 우리 한국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이만한 영화가 없다. 적극 추천한다.


아, 이 글을 읽고 애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면 유식함을 한 껏 뽐낼 수 있다. 단 애인이 이 글을 안 봤다면.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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