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1. 최근 급여잘주고 복지 빵빵하기로 유명한 모 공공기관의 100%가 빵빵한 연줄을 활용한 부정채용이라는 열이 빵빵터지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고, 이후 고수입으로 유명해서 재직자들의 주머니가 빵빵한 각종 공기업의 부정채용이 줄을 잇고 있다.
저자는 최근 대학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취업을 고민한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기득권들의 세상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단다.
하지만 그게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야, 반드시 틈은 있어
그런데 저 기사를 보니 틈은 없는 것 같다. 100%라고 한다. 미안하구나 제자야.
2. 한반도의 부정채용 역사는 의외로 길고 꾸준하다. 이땅에 정식채용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의 4대왕 광종때부터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여러 세력을 규합할 역량은 있었지만, 무력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호족의 힘을 빌어 신라를 무너뜨리고 고려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힘을 빌려준 호족들에게서 몸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딸과 결혼해서 할렘...이 아니라 혼맥망을 구축했고, 호족들의 투자에 보답하기 위해 각종 이권을 나눠줬다.
왕건이 죽자 고려는 호족들의 투전판이 되었다. 서로 자기편에게 감투를 줘서 세력을 만드는데 골몰했다. 광종은 이런 악순환을 만들기 위해 '과거제'를 도입한다. 즉 호족이라고 벼슬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3. 하지만 이렇게된다고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다. 과거에는 수많은 부정행위가 이뤄졌는데 이를 과거 팔폐(科擧八弊)라고 한다. 과거의 8대 폐단이라는 것인데 인간의 창의성은 무한한 것인지, 이상한 곳으로만 성장하는 것인지 나중에는 수도 없이 불어났다.
고개돌리기, 다른 사람 이름 대신 쓰기, 속옷에 커닝페이퍼 적기부터 시작해서 시험관 매수를 하더니 조선 숙종때는 아예 과거장밖에까지 사발통을 연결해서 부정행위를 했다. 밖에서 시험문제를 듣고, 답안지를 작성한 후 이를 안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숙종이 노발대발해서 이를 찾아내려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결국 그 시험은 파방(罷榜)하고 말았다. 파방이란 시험을 취소시키는 것으로 덕분에 정상적으로 시험지를 내고 급제한 사람들도 무효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과거에는 온갖 인간의 부정이 판쳤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의 서막에 불과했다.
4. 아버지 선조의 질투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 왕이 된 광해군.
선조 : 너말고 동생인 영창대군이 있는데 굳이 네가 세자가 될 일이 있겠느냐, 너 명나라가 책봉도 안해주잖아?
아버지 선조가 저모양이라 어머니도 영창대군에게 입혀서 안될 세자옷을 입히고 데리고 다니는 지라 광해군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세자의 덕이 없네, 그냥 내 왕위 가져라하고 죄다 흔들다가 30넘어 왕이 되었으니 광해군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여버린다.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세력은 소수의 소북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밟아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반대세력이 걸렸다. 그래서 광해군은 반대세력을 기축옥사 등으로 무너뜨린다. 이 옥사는 드물게 직접 나서서 친국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옥사를 옆에서 거들고 부추긴 것이 이의첨이 장악한 대북이었다.
이렇게 광해군 덕분에 반대파를 정리한 대북은 나중에는 인재채용에도 손을 뻗친다. 아무리 글씨가 엉망이고 내용이 동문서답이라도 대북쪽에 연줄이 있으면 채용되었고, 소북이나 서인 출신이면 저 세상에서 선조가 뛰쳐나올만큼 명필이어도, 세종이 감동해서 눈물흘릴 정도의 명문이어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렇게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가 만든 유능한 인재풀을 스스로 망가뜨렸다.
한번 균형이 무너지면 그 이후는 바로 세우려고 해도 힘들다.
균열은 커지고 질서는 무너진다.
5. 정조 24년, 감독관들의 머릿속은 하얀 백사장과 같았다. 2일에 걸쳐 진행된 정시(庭試) 초시(初試)의 답안지가 첫날엔 3만8614장, 이튿날엔 3만2884장으로 약 7만장이 몰린 것이다. 게다가 이 시험은 정조가 직접 그 날 결과를 발표하는 즉일방방(卽日放榜) – 그래서 왕의 눈에 들려는 사람들이 더 몰린 것이다 -- 이었다. 감독관들은 7만장의 시험지를 하루만에 채점해서 왕에게 보고해야 운명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조선 최대의 막장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날 시험 결과는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우선 시간이 부족해서 채점이 부실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급제된 답안지를 보면 첫 페이지만 멋있게 쓰고 뒤는 적지도 않은 답안지까지 있었다. 명문가 자제의 암묵적인 선발은 이미 오래된 관행이었다.
하지만 관행이 문제가 아니었다. 7만장이나 되는 답안지를 왕이 발표하기 전까지 채점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왕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할까? 오늘날에도 하면 내 목이 날아갈 짓인데 그럴리는 없다. 시험관들은 알아서 기었다. 먼저 제출한 답안지 중에서 첫페이지만 보고 합격여부를 고른 것이다.
이렇게 과거시험은 배틀로얄이 되었다.
과거시험의 룰이 제대로 된 답을 적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빨리 내는 걸로 바뀐다. 아무리 잘써도 나중에 내면 급제는 물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반자제들은 먼저 내기 위해 갑질을 했다. 세도가의 자제는 시험장에 자기 하인들을 잔뜩 들였다. 그들의 역할은 주인이 답안지를 내러갈 때 편히 가시도록 다른 사람을 끌어내고, 몸으로 길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집도 절도 빽도 없는 흙수저들은 감독관의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일도 있었다.
돈의 힘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과거에는 원칙적으로 평민도 응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선접꾼이라는 사람들을 고용했다. 선접꾼이란 말 그대로 고용주의 시험 도우미. 그들의 역할은 다양했다.
요즘이야 자격증 시험을 치러가면, 낭랑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지만 그때는 사람의 목소리가 전부인 시절이라 뒷자리에 앉으면 그 말소리가 잘 안들렸다. 그래서 선접꾼들은 앞자리를 미리 맡은 후 고용주에게 양보하거나, 간혹 미리 온 사람 = 집도 빽도 없는게 확실한 사람이 있다면 힘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여기서 더 황당한 것은 이 선접꾼들이 급제하는 일이 나왔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답안지를 내야한다. 하지만 그들이 글을 쓸 역량은 없으니 자기의 고용주가 쓰다 만 답안지를 받아서 낸다. 그런데 고용주가 답안지를 쓰다가 오타가 나거나 잘못 써서 버린 답안지를 받아서 이름만 적어냈는데 급제를 한 것이다.
정조는 인재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이런 과거제도의 운영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친히 급제자를 발표할 정도로 온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왕이 몸소 가서 관리하는 시험도 상태가 저지경이었다.
6. 정조 사후, 나중에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본격화되자 이런 작태는 본격화되어 철종대쯤 가면 왕을 입안에 넣고 굴리는 수준이 되었다. 1982년에 치뤄진 마지막 시험에 참가한 김구 선생님은 백범일지에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버지가 벼슬못한게 한이 되어서 나왔다고 하니 감독관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이름으로 답안지를 내도록 허락했다.
채용부정을 당당히 감독관에게 청하고, 감독관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는 동방예의지국, 조선은 이렇게 망국이 되고, 나라를 자랑스럽게 팔아먹는 사람들이 판치는 국가로 전락했다.
7. 사람들이 은연중에 있을지도 모른다던 '채용비리'는 실제로 존재했다. 그것도 무려 100% 수준으로 진행될정도고 상위권 공기업이 모두 의혹에 휘말릴정도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 정말 자격있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기회를 잃고 신분상승의 기회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분노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랬으니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절대 멈추지 마라
아마 부정행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가만히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권력을 활용해서 시스템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고 '그럼 그렇지'하고 넘어가면 그들은 더욱 기세등등하게 자기 아이들을 좋은 자리에 돌려넣을 것이고, 빽없는 사람은 후진 직장에서 골골대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기득권들의 세상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틈은 있으니 포기하지 마라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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